작년 가을 세계 인구가 70억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많은 숫자다. 하지만 수의 논리가 언제나 그렇듯이 더 큰 숫자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의 70억은 지구 위에 현생인류가 등장한 뒤 지구를 거쳐 간 사람들의 7%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지구상에는 대략 1,000억 명의 인류가 각자의 시대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 갔다.



21세기의 7%에게 유난히 특출한 부분은 물론 있다. 과학기술은 그 첫 번째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기아와 빈곤문제가 거의 해결되었다. 상당수의 인류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심지어 산업혁명 이후에는 관절의 접합구조까지 변화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오히려 이제는 비만을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우리들 7%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누구보다 거시적이다. 더 이상 우리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뜨고 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천동설을 포기하고 지동설로 넘어올 때 비록 엄청난 아픔이 있었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은 진보한 이성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제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지구 반대편 국가의 골목길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엄청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는 우리를 제외한 93%중에서 어느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것이다.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이렇게 잘난 우리 7%가 희한하게도 정신적인 측면에서만큼은 과거지향적인 경향을 띤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고 할 때 우리는 최신 정보가 업데이트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을 선택한다. 이 패턴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에는 완전히 뒤집힌다. 최신의 것이 아니라 최고(最古)의 것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정신의 미궁을 돌파한다는 측면에서만큼은 우리 7%는 여전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찾는다.



이것은 물질적 측면이 발달한 것과는 별개로 인류의 사고방식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여전히 우리는 비슷한 실수를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가운데에서 표류하고, 오판하고, 착각한다. 뒤늦게 후회하거나 스스로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도 많다. 주변 환경을 그렇게 많이 바꿀 수 있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뇌구조는 그다지 많이 바꾸지 못한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15배 가까이 되는 인류 표본들이 우리 이전에 했던 실수를 면밀하게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달랐을지언정 어차피 93%와 7%의 뇌구조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짐짓 모르는 척 93%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해 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역사공부의 묘미다.



요즘 한국인들은 한 달에 책을 사는 데에 20,570원 정도 밖에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도 참고서나 문제집 가격이 전부 들어간 값이다.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는 아예 안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고루하고 딱딱하게만 서술된 책들이 너무 많다는 '공급자 귀착사유'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법이고, 책에 대한 소비자의 호감도가 낮아지면 좋은 책이 나올 확률도 낮아진다.



고전(古典)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실수의 보고(寶庫)인 역사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7%로서의 특화된 입지를 포기하고 93%의 전철(前轍)로 굴종해 들어가는 문명의 포기선언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은 우리 이전의 누군가가 이미 했던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생각과 말을 했던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사람의 사례를 추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필요 없는 실수를 줄이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비슷한 상황에 놓였으나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갈 때 사람들은 그것을 ‘창의력’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역사야말로 창의력의 단초가 된다는 강력한 사인을 읽어낼 수 있다. 우리들 7%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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