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진영은 “대학생 시절 프로이트를 읽는 순간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박진영만큼 성(性)을 전면에 내세운 가수는 없었지만, “섹스는 게임”이라고 말해서 큰 논란을 낳았던 그에 대한 견해는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엇갈린다. 21세기에도 상황이 이러하니 20세기 초반에는 오죽했을까.



1910년대의 미국 사회는 정숙 그 자체였다. 여성들은 소용돌이치는 듯한 천과 거품이 이는 듯한 레이스로 감싸진 의상 속에 파묻혀 있었다. 술과 성이 모두 죄악으로 간주되던 시대. 신에 대한 청교도적 애정만이 선으로 간주됐던 날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1920년을 전후로 상황은 일거에 반전된다.



변혁의 정점에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프로이트였다. 알음알음 전파되던 그의 성 이론은 20년대 들어 엄청난 파괴력을 획득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파격적으로 변화된 것은 물론이고 그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술과 담배를 즐기게 되었다. 마침 사회의 조류도 여성들의 투표권, 직업의 자유 등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이행하면서 변화에 속도를 붙였다.



1925년쯤 되자 프로이트는 거리마다 만연하는 존재가 됐다. 리비도가 어떻고 구강기가 어떻고 하는 얘기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왔다. 한국으로 말하면 홍대의 클럽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성적 에너지의 역동성에 대한 견해를 위화감 없이 주고받는 모양새다. 당시 미국의 한 신문편집인은 “오늘날의 순진한 여학생들이 1885년의 산파만큼이나 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의 이 분위기가 자동차의 역사로 연결되는 것은 일면 엉뚱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경영학과나 행정학과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성공사례 중 하나인 포드(Ford) ‘모델-T’의 성공이 프로이트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헨리 포드는 회사를 차리자마자 성공을 한 것은 아니었다. 30km/h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는 문제가 거론됐을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안감은 엄청났다. 1910년에 접어들어서도 미국 전체를 통틀어서 등록된 차량의 숫자는 고작 50만 대에 불과했다.



1914년에 최초로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해서 모델-T를 하루에 100대씩 생산할 수 있게 됐지만, 문제는 도대체 컨베이어 벨트를 개발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냐는 점이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을 늘릴 이유가 있었을까? 포드에게는 조금씩 변화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통찰력이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프로이트 유행 안에 숨어있는 변화의 단초를 이미 읽어냈던 건지도 모른다.



성에 개방적인 의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동차가 ‘바퀴 달린 침실’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동수단으로서의 자동차보다 더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일지도 모르는 이 통찰력은 결국 시대를 바꿔놓는다. 1924년이 되자 미국 내에 등록된 자동차의 숫자는 1,550만대로 치솟았던 것이다. 50만대에서 1,550만대로의 이행은 자동차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변화다.



이 사례는 똑같은 사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와 결과가 완벽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통찰력(insight)의 힘이다.



한국의 성공한 기업가들에게서도 통찰력은 흔히 발견된다. 아직 만들지도 않은 배를 팔 수 있었던 故정주영 회장의 배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삼성이 유일하게 실패한 자동차 사업도 그 근간에는 “자동차는 곧 전자제품이 될 것”이라고 봤던 이건희 회장의 무시 못 할 통찰력이 숨어 있었다. 닌텐도의 라이벌을 나이키로 규정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 책의 라이벌이 음악과 영화가 되는 새로운 시대. 당신의 자동차에도 프로이트가 타고 있는가?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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