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대학 서클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나이가 55, 56세 정도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치킨집을 하는 친구, 아는 회사에 출근하는 친구, 몇몇이 모여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친구 등 오늘을 사는 평범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술이 어느 정도 취했을 때, 한 친구가 갑작스런 제안을 하였다.
“야!, 우리 자기 소개 한번 해보자. 서로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좋지 않겠어? “

그래서 시작된 자기소개는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나는 눈 뜨면 갈 곳이 없어, 가족들 보기도 미안하고…. 이제 내 인생은 여기까지 인가…”
“나는 새벽3시에 일어나서 5시에 아침 해장국 장사를 해, 잠시 쉬고 점심 장사, 잠시 쉬고 저녁 장사, 그리고 10시에 집에 가서 쉬고 2시에 일어나서 가게로 나와…. 매일 똑 같아”
“나는 하루에 닭을 100마리 튀기는 게 소원이야, 그런데, 벌써 2년째 이루지 못하고 있어…”

어느덧, 자기소개의 시간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를 소개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55세의 나이는 먹고 살기 위해 자기가 하는 것 외에 소개할 것이 없는 나이인가 보다. 하긴, 지난 세월 동안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 취직하고, 열심히 근무하라는 어른들의 말에 충실했을 뿐, 자기의 인생을 위해 고민해 보지 않던 세대였으니,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제, 아이들을 대충 성장시킨 동년배 친구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지금부터 가족에 대한 앞선 걱정 말고,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고…. 그래서 자기 소개가 가족과 일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소개가 되도록 해보자고….

조민호를 소개합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컴퓨터에 반해서, 30년째 컴퓨터 관련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살리고 있습니다. 모은 돈은 없고, 아파트도 대출받아 산 것이지만, 온 가족이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사랑합니다. 반면, 혼자 등산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유는 왠지 자유로운 느낌을 만끽할 수 있어서 입니다. 여행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계속 되어온 취미인데, 돈이 없어서 해외는 못 가보고 국내 여행을 다닙니다. 지난 주에 아르바이트로 받은 20만원으로 지난 5년간 벼르던 17년된 차의 내부 세차를 했습니다. 지난 달부터 기타 연습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 못 이룬 꿈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괴산에 우리농장이라는 음식점에서 소고기를 싸게 팝니다. 요즘은 거기에서 지난 20년간 못 먹은 소고기를 자주 먹습니다 (3명이 5만원이면 됨. 소주포함).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있는데, 돈도 여의치 않고, 혹여 와이프나 아이들에게 들키면 챙피할까봐 참고 삽니다. 영어 공부를 40년째 하는데, 정말 지독히도 늘지 않습니다. 중국어 공부를 7월부터 시작합니다(등록 완료). 중국어는 잘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을 위해 살지 말고 이순간을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아! 내 소개가 쉽지 않네요. 나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이었네요. 다음에는 좀 더 멋지게 소개할 수 있는 조민호를 만들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하고, 나이를 먹었다고 다른 사람이 봐주거나 이해해 주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