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2001년, 당시 미국의 미술계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미술가 중 하나였던 톰 프리드먼은 뉴욕 뉴뮤지엄의 전시회에서 자신의 대변을 벼룩만 하게 잘라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가장 적은 양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내는 재료를 찾고 싶었다.”는 해설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행여 냄새라도 밸까봐 그 작품(?) 주변으로 관객이 몰리지 않았던 탓인지 미술계에서 그의 입지는 이후 꾸준히 낮아졌다. 그가 말한 효과가 역효과라도 괜찮은 것이었다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제 와선 내가 싼 똥이 아니면 근처에 있는 것도 싫어진 게 21세기 우리의 자화상이지만, 인간이 생활 속의 악취에서 자유로워진 건 최근의 일이다. 정보와 자원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중세에만 해도 한쪽에는 농작물이 넘치는데 다른 한쪽에는 아사(餓死)한 시체들이 널브러져있는 풍경이 심심찮게 펼쳐졌다. 냉방장치도 없는 여름에 그 악취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문명이 인간을 망쳤다.”고 말한 프랑스의 루소도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기 전에 태어났다면 저 말을 하기 전에 조금쯤은 망설이지 않았을까.

변기야말로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수훈甲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수세식 변기가 처음 발명된 1596년 이전까지 서민과 귀족을 막론한 모든 사람들은 집에서 가까운 땅에 구멍을 파거나 나무 밑둥치, 혹은 강가(!)에서 용변을 보았다. 행여 요강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최종적인 뒤처리는 밖으로 갖다버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당시엔 모든 사람이 예술가 톰 프리드먼이었던 셈이다.

1596년에 수세식 변기를 발명한 사람은 영국인 존 해링턴(John Harington). 그런데 그의 발명 비화를 추적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존 해링턴은 변기 발명 5년 전에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시인 아리오스토의 대표적 서사시인 <광란의 오를란도>를 번역하여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등 당대의 지식인이자 문장가였다는 사실이다. 기사작위까지 받은 실력자였지만, 사생활이 좀 문란했던 모양이다. 상식과 비상식을 넘나드는 그의 기행(奇行) 속에 변기 발명의 통찰력은 숨어 있다.

존 해링턴의 아버지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 상대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헨리 8세의 사생아였다. 이는 그가 정통(正統)은 아닐지언정 왕가 주변 인물들과 접촉할 수 있는 ‘B급 VIP’정도는 됐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존을 낳은 것은 두 번째 아내였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니고 그 시녀였다고 한다. 부유했던 집안 형편에 힘입어 존은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대학 등에서 수학하며 궁정에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는 대모-대자의 관계로 묶여있었던 만큼 일정한 접촉을 지속했던 모양이지만, 문제는 왕실에 걸맞지 않는 존의 음탕한 취향이었다. 체질적으로 형식과 격식을 혐오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그는 세간에 떠도는 음담패설을 엮어서 유통시키다 법정에 서는 등 기행을 일삼아 대모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성에 (그야말로) 똥칠을 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글쓰기를 계속했다는 점은 별다른 유희가 없었을 당시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파악해야겠지만, 이런 그가 집필 도중에 수세식 변기를 발명했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앞면보다는 뒷면에 주목하는 존 해링턴의 눈에 거드름 피우는 귀족들이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었더라도 결국엔 똥으로 싸내야 하는 위선은 재미있는 대조군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발명한 수세식 변기는 센세이션을 일으켜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음까지 빼앗았다. 리치먼드 궁에 수세식 변기가 설치된 것이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좀처럼 앞으로 오는 법이 없다. 모두가 통찰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막상 통찰력 고수들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앞보다는 뒤, 겉보다는 속, 의식보다 무의식이 훨씬 본질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쉽게 ‘통찰’할 수 있다. 자기 대변을 작품이랍시고 내놓았다가 악평을 듣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안락한 환경 속에서 마음 편하게 듣고 웃을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괴짜들의 통찰력 덕택이다.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유튜브에 자신의 화장실을 생중계했을지도 모를 ‘변기의 아버지’ 존 해링턴의 통찰력은, 그가 처음으로 붙인 W.C(Water Closet)이라는 문패로 계승되어 지금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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