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비서실 직원이 취임 석달도 안된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 국민 사과'를 하게 만들다니요. 그것도 부끄럽고 민망한 일로 말입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은 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건의 진실은 조만간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밝혀지겠지요. 누가 거짓말을 얼마나 했는지도 멀지 않아 드러나리라 봅니다. 글쎄요.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 적당히 묻어버리게 될까요.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는 듯합니다만.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요.
 
어쨌거나 윤 전 대변인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공식행사 이후에 사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것, 이유가 무엇이든 젊은 여성 인턴을 공식 스케줄 이후 술자리에 붙들어뒀다는 것, 해당 인턴과 주미한국문화원 직원이 경찰에 신고할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고 여긴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다 피해 당사자와의 직접적인 인터뷰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 보도는 시시각각 온갖 내용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윤 전 대변인의 평소 행동부터 방미 기간 중 태도,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위계질서, 심지어 음모론 운운하면서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주장까지. 

보도되는 내용 가운데엔 '이게 우리 사회 지도층과 언론의 내면인가'  싶은 것도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대목만 해도 그렇습니다.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이라는 표현은 뒤집어 들여다보면 '고위 공직자만 아니면 괜찮은'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여성 인턴을 공식행사가 끝난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에 붙들어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부적절한 처신임에 틀림 없습니다. 피곤하고 힘들었을 텐데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곁에 있어야 했던 그 인턴이 자신의 딸이거나 여동생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건 고위 공직자 여부에 상관 없는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관존민비'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언론 보도엔 또 한가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해당 인턴과 문화원 직원이 '호텔 방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는 표현입니다.

'울면서 항의를 했다' 내지 '울면서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정도는 모르되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니요. 이게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예순이 다 된' 남성에게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 나머지 경찰에 신고할 결심을 한 피해여성에 대한 보도 태도로 적절한 것인지요?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갑을 관계'입니다. '을들의 반란'이란 얘기가 나올 만큼 갑을관계를 둘러싼 오랜 폐해가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하루 아침에 달라지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할 수 있겠지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구요.  

이번 사건 또한 대표적인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 내내 여성인턴을 '가이드'라고 지칭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붙들어둔 것 또한 이른바 갑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사정이나 형편,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 그만큼 그가 '뼛 속까지 갑'이었다는 얘기지요.

갑과 을은 무엇일까요. '라면상무 사건'으로 불거진 '갑을 파문'을 계기로 어느 유통업체에선가 계약서 상의 갑을을 뒤바꾸겠다고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쓴웃음이 났습니다. 갑을 파문의 핵심은 '을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갑의 일방적인 주장 내지 횡포'인데 단어를 바꾼다니!  누가 그런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갑이 을에 대해 '아랫사람이니 함부로 대해도 된다'거나 '내가 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갑을 관계는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해선 안될 행동을 한 걸 놓고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 운운하거나 피해자를 향해 '울고 불고 난리'식으로 표현하는 건 혹시 스스로 갑인 지조차 모르는 이들의 사고에서 비롯된 게 아닐른지요?   

한번도 을의 입장에 서보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매사에 당연하다는 듯 갑으로 행동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갑처럼 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일부 공직자와 언론인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들 하지요. 그렇게 본다면 이번 사고는 언론에서 흔히 쓰는 표현처럼 '예고된 인재'였던 셈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혹시 갑처럼 굴다 남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날들입니다. 지난 일을 어쩔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매사에 내 입장과 주장만 펼 게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형편을 고려해서 말하고 행동해야겠지요. 누구누구처럼 하루아침에 패가망신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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