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리 고상하지 않다. ‘이성(理性)’으로 포장하지만 속내는 ‘이기(利己)’가 그득하다. 남의 약점에는 촉을 세우고, 자신의 약점에는 방패를 친다. 그러니 남의 눈 티끌은 들보만 하게 보이고, 자신의 눈 들보는 티끌만 하게 보인다. 그러니 세상에는 삿대질이 어지럽다. 입은 약이면서 독이다. 타인의 상처를 아물게도 하고, 상처를 헤집기도 한다. 누구는 입을 약으로 쓰고, 누구는 독으로 쓴다. 사람마다 격이 다른 이유다.

유가와 법가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은 사상가 한비는 ≪한비자≫ 세난(說難)과 난언(難言)에서 말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유세(遊說)가 어려운 것은 내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언변으로 내 뜻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감히 다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다. 유세가 진짜 어려운 건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 거기에 내 말을 맞추는 일이다.

상대가 군주라면 유세는 자칫 ‘목숨 건 도박’일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도 말하지 않았나. 세상에 환영받는 충고는 없다고. 한비의 말을 더 빌려오자. “유세가가 대신을 논하면 군주는 이간질로 여기고, 하급 관리를 논하면 권력을 팔아 사사로이 은혜를 베풀려는 것으로 여기고, 군주의 총애를 받는 자를 논하면 그의 힘을 빌리려는 것으로 여기고,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논하면 군주 자신을 떠보려는 것으로 여긴다.” 한마디로 군주에게 유세를 할 때는 이것도 조심, 저것도 조심하라는 얘기다. 아니, 유세 자체가 어리석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면서 한비는 용 얘기를 꺼냈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는데, 이걸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유세하는 자가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잃지 않고 유세도 절반쯤은 먹힌 셈이다.” 한비는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언변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임을 강조한다. 상대의 역린(逆鱗)은 들추지 말고 포근히 감싸라 한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용이 나왔으니 용에 관한 얘기 한두 개를 덧붙인다. 우리나라 사람은 돼지 꿈을 꾸면 운동화 신고 복권을 사러 달려간다. 용 꿈 꾸면 맨발로 뛰어간다. 옛날 중국의 어떤 사람이 천만금을 주고 용 잡는 기술을 완벽히 익혔다. 한데 세상에 나와 용을 잡으려니 용이 없었다. 겉은 그럴듯 해도 정작 쓰임새가 없는 것을 이르는 도룡술(屠龍術)의 배경이 된 얘기다. 대선 시즌의 단골 메뉴 잠룡(潛龍)은 ≪주역≫이 출처다. 잠룡은 물에 잠겨 아직 날 준비가 안 된 용이고, 현룡(見龍)은 물 속에서 내공을 갖춰 날 채비를 하는 용이다. 율곡 이이의 아호가 바로 현룡이다. 비룡(飛龍)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이다. 항룡(亢龍)은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데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 저항하고 머뭇거리는 용이다.

말로 돌아오자. 말은 어렵다. 매끄러우면 알맹이가 없고, 번잡하면 쓸모가 적다. 너무 크면 허황되고, 너무 잘면 너절하다. 꾸미면 거짓스럽고, 투박하면 촌스럽다. 말은 곧 당신이다. 아무리 욱해도 입으로 타인의 상처를 헤집지 마라. 손자는 “적을 포위해도 한쪽은 열어두라”고 했다. 입은 약으로 써라. 역린을 가려주는 붕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로 써라. 그럼 당신의 상처도 절로 치유된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 (4)역린(逆鱗)-남의 약점은 들추지 말고 감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