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어이가 없다 싶으면 ‘헐’을 내뱉는다. 어이가 더 없다 싶으면 헐~~하고 길어진다. 며칠 전 헐이 한없이 길어져 헐~~~~~하는 일이 생겼다. 어쩌다 고사성어 얘기가 나왔는데 사이비(似而非)를 영어로 알았단다. 그것도 버젓이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이러다 ‘헐’을 아랍어로 아는 사람도 있겠다 싶었다.

중국 고전의 사서(四書) 중 하나인 ≪맹자≫ 마지막 페이지쯤 ‘진심’편에 맹자가 제자 만장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만장이 스승 맹자에게 묻는다. “공자께서는 자기 고장에서 행세하는 선비인 향원(鄕原)을 덕을 해치는 자라 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칭송받으면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터인데 어째서 그들이 덕을 해친다 하셨는지요?” 맹자가 답한다. “향원은 비난하려 해도 지적할 게 없는 듯하고, 꼬집으려 해도 꼬집을 게 없는 듯하고, 행동이 청렴결백한 것 같지만 속내를 감추고 세속에 영합한다. 그런 자와는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라 한 것이다. 공자께서는 비슷한 듯하지만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하셨다. 가라지를 미워하는 건 곡식의 싹을 어지럽힐까 염려하신 때문이다.”

사이비는 비슷하지만(似), 그러나(而), 같지는 않은 것(非)이다. 공자는 사이비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 사람을 현혹한다고 했다. 21세기는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이지만 2500년 전에도 여전히 사이비가 사람들을 속인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겉모양만 그럴듯한 사이비에 솔깃하는 건 인지상정인 듯하다. 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한다. 문체(文)와 바탕(質)이 어긋나지 않아야 빛이 난다(彬)고 했다. 문체는 언변, 외모, 포장, 디자인이다. 바탕은 인성, 자질, 콘텐츠다. 부실한 콘텐츠를 화려한 포장으로 가리는 것도 사이비고, 허접한 영혼을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가리는 것 역시 사이비다.

우리 사회는 유독 사이비가 판을 친다.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2013년을 뒤돌아보는 사자성어로 이가난진(以假亂眞)을 꼽았겠는가.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을 뒤흔드는 사회라는 말 아닌가. 하기야 아니라고 어길 염치도 없다. 우리나라 위증죄가 선진국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불행할 때만 종교적이 된다. 그때, 그들은 사이비다.” 인도 작가 오쇼 라즈니쉬의 말이다. 그의 말에 맞춰보면 믿음에도 사이비가 많지 않겠나 싶다.

맹자는 공자의 말을 빌려 네 형태로 사람을 분류했다. 중용의 도리에 부합해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람, 품은 뜻은 크나 실행이 이에 못미치는 사람, 나름 지조가 있어 악은 행하지 않되 소심한 인물, 위선적인 처세로 좋은 평판만을 구하는 향원 같은 사람이 네 부류다. 당신은 어느 부류인가? 혹시 향원 같다면 진짜 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아픔 많고 곡절 많은 시간도 역사가 됐다. 모든 걸 바로 세우자. 참이 거짓을 이기게 하고, 맑음이 탁함을 덮게 하고, 문(文)과 질(質)이 조화를 이루게 하자. 사이비라는 말이 우리 귀에 점점 낯설게 하자. 그래서 사이비가 영어인 줄 알았다 해도 ‘헐~~~’ 소리가 안 나오게 하자.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바람난 고사성어] (1) 사이비(似而非) -가짜가 진짜를 속이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