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공장은 늘 '봉'인가?
창을 통해 거실 깊숙이 들어온 따스한 햇살이 마루바닥에 한참을 머물고 있는 토요일 오후, TV 화면 속은 또다시 시끌시끌하다. 주말마다 세상은 양분되어 날선 대립각을 세우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주말이면 도망치듯 산으로 내뺐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마루바닥에 신문을 펼쳐 놓고 건성건성 기사 제목을 훑어 내리며 게으름을 만끽 중이다. 혼자 켜져 왕왕거리는 TV를 가리키며 아내는 “맨날 그 소리에 그 그림이구만. 리플레이 장면이 지겹지도 않냐”며 리모콘을 들고서 쇼파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더니 이내 채널을 홈쇼핑 모드로 돌려 놓았다.

“~울 하프 코트 하나에 59,900원, 여기에 밍크 브로치까지 얹어 드립니다. 오늘같은 추운날, 우선 가격대부터 보시자구요. 정말이지 착하지 않습니까? 이만한 가격에 제대로된 코트 하나씩 갖자구요. 원단 자체도 참 고급져요. 지금 주문 집중되고 있구요. 30분 간만 방송하니 빨리 들어오셔야 합니다.~”

쇼핑호스트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귓전을 마구마구 때린다. 듣고 있자니 고역이다. 차라리 조금 전 주말집회 뉴스 화면이 낫겠다 싶었으나 채널권은 내게 없다. 곰곰히 상품 설명을 듣던 아내가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어떻게 저런 가격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저러니 사 입는 소비자야 댕큐겠지만 생산자는 무얼 먹고 사나? 원단값도 안될 것 같은데…”

순간 직업병이 발동했다. 보던 신문을 밀쳐놓고 한참동안 이목을 방송 화면에 집중했다.

미모의 쇼핑호스트가 쏟아내는 사탕발림(?)급 말빨에 주문전화 게이지는 거침없이 급상승 중이다. 이처럼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제품을 보며 생뚱맞게도 봉제공장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얼마 전, 30년 넘게 가동해 온 봉제공장을 이젠 그만두고 싶다며 한숨을 토해낸 한 봉제인을 만나 들었던 하소연이 떠올랐다.

“홈쇼핑 의류 오더는 많이 돌아다니는데 대체적으로 엄청 싸다. 물량이 크다는 걸 내세워 공임을 터무니없이 박하게 책정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주로 열댓명이 일하는 소규모 공장에 나눠 넣는 오더인데 도무지 가격을 맞출 수가 없다. 6종 세트, 3종 세트니 하면서 판매하는 물량이라 단납기에 몇 만장씩 되기 때문에 그게 한 방 터졌다 하면 얼마간은 오더 걱정없이 공장이 돌아가지만 잘 하다가도 주문이 줄어들면 곧바로 접어버리는 게 홈쇼핑 물량의 특성이다. 공장 놀리기 뭐해 어쩔수 없이 받아 작업은 해봤으나 역시나 속빈 강정이었다. 방송에서 고객 반응이 떨어지면 작업물이 막 재단에 투입되었는데도 계약내용은 아랑곳않고 알짤없이 작업을 올스톱 시켜 버리는 통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홈쇼핑 오더를 콘트롤하는 벤더들은 대개 봉제공장의 비수기를 용의주도하게 이용한다. 내로라하는 유수 SPA브랜드들은 대량으로 생산해서 싸게 팔기 때문에 생산자들에게도 큰 폭의 가격 다운을 요구한다. 이런 업체들은 한 스타일 당 대개 크게는 10만장 가까이 오더하기도 한다. 마진이 박해도 장수가 많으면 매출이 크기 때문에 생산하려는 공장들이 줄을 서는 이유이다. 소규모 봉제공장들로선 비수기로 라인이 멈춰 있을때 뭐라도 받아 인건비라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보니 터무니 없는 가격임에도 냉큼 작업물량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제 발등 찍는 격이지만 말이다.

홈쇼핑은 시중가보다 싸게 팔아야 하는 특성때문에 이른바 기획상품이란 미명하에 홈쇼핑 판매만을 위한 ‘기획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원부자재 가격은 물론 생산단가까지 후려칠 수밖에 없는 못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렇듯 터무니없는 옷값에 소비자는 웃을지 몰라도 봉제공장은 늘 ‘봉’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