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담의 삶삶한 글씨] 마음은 글씨요, 글씨는 마음이다.
중봉(中鋒)은 문자 그대로 붓을 곧게 세워서 필봉의 중심으로 쓰는 것이다.

글씨를 쓰면서 끊임없이 붓의 중봉을 유지해야하는 것은 마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中心)을 잡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고대 신화와 전설은 인간 삶의 중심으로 땅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자연과 나무의 에너지를 이야기하였다.

고대 인도의 철학 경전 우파니샤드(Upaniṣad)는 우주를 뿌리가 하늘을 향하고 가지는 땅속으로 뻗은 거꾸로 된 나무라고 말했다.

이는 자연이 가진 불멸의 가치를 나무에 비유한 것인데 요가에서 한발로 중심을 잡는 ‘나무자세’라는 동작이 있다.

그 대상이 물리적인 것이든 추상적인 것이든 하나의 대상을 상상하며 집중해야한다.

이를 에카그라타(Ekagrata)라고 하는데, 마음의 잡념을 없애고 대상을 향한 의식의 집중을 말한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마음은 글씨요, 글씨는 마음이다.
중봉을 위해서도 에카그라타 못지않은 의식집중이 필요하다.

잡념을 누르고 집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요가를 경험하듯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집중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좋은 글씨는 좋은 선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예외로 측봉(側鋒)을 쓰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봉을 유지했을 때의 선이 가장 좋고 선이 좋을 때 글씨는 더 아름답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마음은 글씨요, 글씨는 마음이다.
서예에서는 중봉을 하지 못하면 좋은 붓으로도 졸렬한 글씨를 쓰게 되니 글씨의 좋고 나쁨은 바로 중봉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라고 한다.

곧, 캘리그래피의 품격은 ‘선의 시작과 끝에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중봉을 유지하되 필압(筆力)과 완급(緩急)을 적절히 조절할 때 글씨에 강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중봉이 유지되지 않으면 글씨 두께의 통일성과 각도의 일관성이 없어 글씨에 힘이 없고 마치 중심을 잃은 사람의 마음과도 같다.

마음의 힘은 필력과 흡사해서 무겁게만 눌러쓰면 글씨가 둔탁해보이고 완급이 없이 빠른 시간 안에 많이 쓰려고 욕심을 내면 글씨가 가볍다.

마음이 글씨요. 글씨가 마음이고 캘리그래피는 또 하나의 작은 인생이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마음은 글씨요, 글씨는 마음이다.
나의 하루, 아니 우리의 하루는 어떤가.

다행히도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지만 어떤 날의 하루는 좀 더 마음의 중심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던 날도 있다.

이 또한 미리 써놓은 글씨를 멀리서도 보고, 작게도 보고 되돌아보아야함과 같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쉬이 흔들리지 않고 그 그늘이 더 깊은 이유는 비바람의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뿌리를 내려 중심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스담의 삶삶한 글씨] 마음은 글씨요, 글씨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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