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는 19세기 북카프카즈의 전설적인 인물인 ‘하지 무라트’에 관한 실제적 사건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하지 무라트’는 북카프카즈를 공격한 러시아에 대항해 성전을 선포하고 투쟁한 19세기 다게스탄의 아바르계인 또 다른 전설적 인물인 이맘 ‘샤밀’의 친구요, 동료였다. 그는 ‘샤밀’을 배신하고 러시아에 투항하였다가 또 다시 러시아를 탈출하고 체첸 전사로 돌아갔으나, 러시아와 체첸의 양쪽 그룹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결국 러시아에 투항한 또 다른 체첸 군인들에 의해 죽었던 비극적인 영웅 서사시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20세기말 러시아연방 내에서 있었던 체첸 전쟁은 역사, 민족, 개인의 운명에 특별한 흔적을 남긴 사건이었다. 이 전쟁은 독립전쟁인가 혹은 단순한 테러인가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촉발했다. 체첸 전쟁은 또 19세기 반세기 동안 펼쳐졌던 카프카즈 전쟁의 연속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 세계의 갈등의 정점에 있던 분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은 독립적 개체인 인간의 삶에도 비극적 결말로 종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은 러시아 무슬림들의 역사적 운명과도 직결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사회 내에서는 체첸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04년에는 친러시아인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이 그로즈니에서 체첸 분리주의 세력들로부터 암살당하였다. 2006년 10월 7일에는 러시아와 체첸 정부군이 체첸에서 자행한 일련의 강압적인 정책을 비판하던 안나 폴리콥스까야가 본인이 살고 있던 아파트 자택 현관에서 저격당해 사망하였다. 그녀는 친러시아파인 아흐마드 카디로프 대통령의 아들이었던 ‘람잔 까디로프’ 당시 체첸공화국의 수상이 지휘하는 체첸 정부군의 잔학상을 여러 차례 보도한 기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2월 러시아당국의 보도에 따르면 폴리콥스까야를 암살한 용의자들은 체첸 출신이라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전쟁, 혹은 분쟁,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은 체첸 민족 내부의 잔혹한 내부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지적이 될 수도 있다. 폴리콥스카야가 사망한 그해 2006년 12월에는 러시아 연방보안부 (FSB) 전직 요원이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영국 런던에서 일종의 독극물에 전염되어 암살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안나 폴리꼽스까야의 피살 배후를 추적 중이었으며, 러시아정부 혹은 체첸 정부가 개입하여 암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09년 1월13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현 러시아연방의 체첸공화국의 ‘람잔 까디로프’ 대통령의 보좌관이던 ‘우마르 이스라일로프’가 저격당해 사망하였다. 과거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의 경호원이었던 이스라일로프는 카디로프가 부총리 시절 반정부 무장 세력과 그 가족들에게 납치와 고문을 일삼았다며, 2006년 유럽인권법원에 제소했던 인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150년전 그의 선조였던 ‘하지 무라트’처럼 전쟁 속에서 독립된 개체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보여준 전형적인 체첸형의 인간이었다.
 
  독특하게도 람잔 카디로프 현 대통령은 체첸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친러시아계 인물이며, 푸틴 총리와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전방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카디로프는 모든 면에서 체첸 반군과 대칭적인 위치에 서 있으며, 체첸 반군을 강력히 탄압하고 있는 인물이다. 카디로프는 이스라일로프가 암살되고 난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는데, 다만 이스라일로프라는 성을 가진 인물은 대통령의 경호실에서 근무조차 한 적이 없다는 입장만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카디로프는 스위스 일간지인 ‘Die Presse'와의 회견에서 이스라일로프는 과거 경호원으로 자신을 헌신적으로 경호하였다고 인정하였다. 다만 그의 죽음에 자신이 개입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하였다.

   이스마일로프는 2차 체첸 전쟁 기간(1999년 이후)이 진행되던 시기에 체첸 전사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체첸 정부군에 체포당한 후에 그는 소송에서 밝히고 있듯이 고문에 의해 정부군으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기회를 엿보아 그는 스위스로 망명의 길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난민 신청을 하였다. 2009년 1월13일 빈의 번화한 거리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카디로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그가 아스라일로프를 특별히 대접해주었고, 체첸에 집도 마련해주었다고 밝혔다. 카디로프는 이스라일로프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의 유럽인권법원에 카디로프를 제소한 이후에 그와 전화 통화를 하였으며, 그가 다시 체첸으로 돌아올 것에 대해 의논하였다고 말했다. 이스라일로프도 이 제안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일포르가 자신을 제소한 이유는 정치적 난민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고 카디로프는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일로프가 전화로 모든 사항을 의논하기 어렵다고 했으며, 자신을 도울 사람을 그에게 요청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디로프의 주장에 따르면 그 직후 이스라일로프가 사망, 자신은 그를 도울 사람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 인터뷰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이스라일로프의 아버지인 ‘알리 이스라일로프’는 자신의 아들이 경호원으로 일할 때에 특사 대접을 받은 적이 없으며, 집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구나 금시초문이라고 반박하였다. 아버지에 따르면 ‘아르비 쿠르마카예프’라는 인물이 빈으로 와서 이스라일로프에게 체첸으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였고, 아들이 거절하자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전언에 따르면, 쿠르마카예프는 아들에게 카디로프가 제거하기로 한 300명의 명단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면서 위협하였다는 것이다. 사실상 2006년에는 전 체첸 특별친위대장인 ‘모블라디 바이사로프’, 2008년에 전 국가 두마의원이던 ‘루스랄 야마다예프’ 등 체첸공화국과 관련된 주요 인사들이 암살당한 사건이 있었다.

   체첸전쟁과 관련, 발생한 이러한 개인의 운명은 그 역사적 기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18세기 이래로 북카프카즈 지역에서 일어난 러시아 민족과 북카프카즈 민족 간의 전쟁의 역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적어도 이에 관련된 개인의 운명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비극적 연속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 전쟁, 그리고 개인의 운명은 역사의 전통성과 더불어 아직도 러시아 사회 내에서 끊이지 않은 정치적 대립의 총체적 사건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