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를 본적 있으신가요? 195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영화이지만 TV에서 많이 방영되었던 영화라 익숙하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남아의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일본군 포로가 된 영국군 장교가 철교 건설에 협조하라는 일본군의 집요한 요구를 계속해서 거부하다가 결국 고문 끝에 몇 가지 요구들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협조하게 되면서, 이 영국군 장교는 연합군 장교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철교 완성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군수물자 이동의 중요한 전략적 통로가 되는 이 철교의 완성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연합군은 이를 파괴하려 하고 이것을 이 영국군 장교가 필사적으로 막게되는데, 마지막 장면은 아이러니하게 격투끝에 쓰러지는 영국군 장교에 의해 폭탄의 뇌관 스위치가 눌러지고 결국 철교는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지게 됩니다.

  제가 영화평론가 아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각각의 캐릭터와 결말을 통해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어했던 주제는 감독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영화를 '몰입'과 '집착'이라는 관점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이 두 단어가 갖는 의미는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으로 매우 깊을 수 있으나, 저는 단순하게 몰입과 집착의 차이를 이렇게 보고자 합니다. 두 단어 모두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은 동일한데, 수단이 아니라 목적에 집중하는 것은 '몰입', 목적을 망각하고 어느 순간 그 수단적 요소 및 객체에 집중하는 것은 '집착'이라고요. 사랑을 예로 들면 상대방을 존중하며 그 또는 그녀가 원하는 방식대로 집중하는 것은 몰입, 나와 상대방을 동일시하며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하면 집착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집착을 우리는 스토커라고도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몰입은 하되 과도한 집착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도한 집착은 자신 뿐 아니라 관련된 다른 사람까지 황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영국군 장교는 연합군 승리라는 기본 목적을 철교를 만드는 과정에서 망각하게 되고 이 철교에 대해 이상스러운 집착을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속에서 보여진 것처럼 자신 뿐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죠. 게다가 그처럼 과도한 집착은 그 사람의 정체성 마저 흔들리게 할 수 있습니다.  영국군 장교는 처음에는 전형적인 군인기질을 가진 완고한 장교였으나, 철교에 집착하면서 그는 철교완성에 전력을 다하는 건축가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처음에 원칙을 중요시하는 군인정신을 보여주었다가 이를 자기 성취욕과 혼동하며 죽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한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도 때때로 경험하는 것이죠. 며칠을 고민하고 밤을 세워 기획서나 제안서를 만들다보면 어느 순간 그 기획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이 때부터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모두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지며 절대적인 방어자세를 취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내어 놓는 순간 이제 그 작품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다고 합니다. 즉, 그 작품은 그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것이지 자신이 그 해석과 가치까지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소통의 관점에서도 이 몰입과 집착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시각을 인정하려는 태도 이것은 몰입 수준에서는 가능하나 집착의 수준으로 흐르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직 차원에서도 이러한 경우는 흔히 보게 됩니다. 어떤 일이 기획되어 지속적으로 진행되다보면 초기의 목적은 잊혀지고 그 방법과 수단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죠. 예를 들어 왜 우리 기업에서 MBO가 잘 정착되기 어려운가 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중요한 이유는 피터 드러커가 강조했던 MBO의 기본철학들은 제쳐두고 툴에만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것에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목적중심경영, 가치중심경영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요. 조직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목적에서부터 비롯되지만 어느 순간 개별적 목표에만 집착하다보면 그것을 왜 하려고 했던가의 목적은 잊혀지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일을 하려했는가 하는 처음의 목적입니다. 잘 아는 얘기이지만, do things right가 아니라 do the right thing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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