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들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들 중에 하나는 환갑이 되거나, 칠순이 되었을 때 ,참 잘 살았다고 진심어린 축하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 축하를 해 주는 사람이 그래도 누구나 인정해 줄만한 사람이라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전에 필자가 불로그를 만들고 포스팅을 하는데, 고향이 단양이라 옛 선비들의 글 중에 단양에 관한 글이 있으면 모아 보겠다고 해서, 수 십 편의 글을 모아 블로그에 올렸었다. 그러던 중, 다산 정약용이 단양에 은거하는 어떤 사람에게 71세를 향수하여 축하 하는 글을 읽었다. 거기에 두 가지 복이 나온다. 다산이 말하는 두 가지 복이란 이렇다.

“세상에서 이른바 복이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외직으로 나가서는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고 풍악을 잡히고 미녀를 끼고 놀며,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초헌(軺軒 종2품 이상이 타던 수레)을 타고 비단옷을 입고, 대궐에 출입하고 묘당(廟堂)에 앉아서 사방의 정책을 듣는 것, 이것을 두고 ‘열복(熱福)’이라 하고,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老松)에 기대어 시가(詩歌)를 읊으며, 당(堂)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石磬 악기의 일종), 바둑 한 판[枰],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당 앞에는 백학(白鶴)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花草)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돋구는 약초(藥草)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승(山僧)이나 선인(仙人)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서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朝野)의 치란(治亂)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 한다. 사람이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하는 것은 오직 각기 성품대로 하되, 하늘이 매우 아끼고 주려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淸福)인 것이다. 그러므로 열복을 얻은 이는 세상에 흔하나 청복을 얻은 이는 얼마 없는 것이다.”

위 글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다산시문집 제13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은『병조참판(兵曹參判)오공대익(吳公大益)의 71세 향수를 축하 하는 서』이다. 다산이 한창 잘 나갈 때인 1799년에 쓴 글이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보니, 복이란 단어가 가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오복을 말한다. 또 종교인들은 복을 저마다 다르게 인식하기도 한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오복(五福)이란, 오래 사는 복인 수(壽),불편하지 않을 만큼 풍요로운 복인 부(富),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사는 복인 강령(康寧),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인 유호덕(攸好德),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평안하게 생일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인 고종명(考終命)이다. 또 다른 오복은 ,치아가 좋은 것, 자손이 많은 것, 부부가 해로 하는 것, 손님을 대접 할 만 한 재산이 있는 것, 명당에 묻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산이 말하는 복은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으로 간단하다.

어떻게 살다보니 열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남은 인생 작은 바람이 있다면 청복을 누리다가 생을 마쳤으면 한다. 다산이 말하는 청복을 나는 요즘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옛 선비들이 당호를 짓고, 서재 삼면을 책으로 벽을 가리듯,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천여 권 넘는 책을 두고 ,읽고 싶은 책을 열심히 읽다가, 가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기기를 두고, 생각의 편린들을 기록하는 글을 쓰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을 가끔 만나면서, 세속에 묻혀 살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신이 부를 때, 잘 살았다고 한마디 들을 수 있다면, 열복과 같은 화려한 생애는 아닐지라도, 맡은 소임 잘 감당하면서, 혼탁한 세속에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지조 지키고 살아간다면, 이것이 청복이 아닐까 싶다.

이런 청복을 누리는 자가 많아야,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정약용이 말하는 복, 청복(淸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