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중국 하이얼의 이유있는 반격
2014년 기준으로 세계 생활가전업체 1위는 미국의 월풀이다. 매출규모는 약 22조원에 달한다. 다음 2위로는 독일의 보쉬와 지멘스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3위로는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리고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이얼은 이번 GE 가전사업 부문을 인수하게 됨으로써 단숨에 선두권의 위치에 섰다.
이런 통 큰 인수하며 삼성과 LG를 긴장하게 하는 하이얼은 어떤 회사일까? 하이얼은 중국의 대표적 이미지인 싸구려, 짝퉁을 지양한다. ‘비용 대비 가치(Value for Money)’ 전략으로 무장한 하이얼은 에어컨이나 세탁기 같은 주류 소비재 시장 뿐 아니라, 와인 쿨러(wine cooler, 포도주 냉장고)같은 틈새시장까지도 흔들고 있다. 와인 쿨러는 704달러로 업계 선두주자인 라소믈리에르(La Sommeliere) 제품의 절반 가격에 불과하다. 이 제품을 출시한지 2년 만에 하이얼은 와인 쿨러 시장을 무려 10,000% 성장시켰고, 현재는 판매액 기준으로 미국 시장의 62%를 장악하고 있다. 1980년대 일본이 지향했던 고품질, 저가격 전략을 이제는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이얼의 성장 전략은 제품뿐만 아니라 유연한 조직구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이얼의 창업자인 장 루이민(Zhang Ruimin)은 인터넷 시대에 맞춰 가전 제품업체도 ‘대량생산’에서 ‘대량 맞춤 생산’으로 전환을 꿰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문화처럼 날렵하게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전략중 하나인 가격이나 비용 위주로 홍보하는 것을 지양하고 ‘고객 경험(UX ; User Experience)’에 중점을 둔 차별화 전략을 전사적으로 시행한다.
하이얼은 서비스 정신도 남다르다. 하이얼 고객 센터에 걸려온 전화는 전화벨이 3번 울리기 전에 응답을 한다. 심지어 일요일에도 3시간 안에 고객의 집으로 기술자를 파견한다. 한 번은 외딴 마을에 거주하는 농민으로부터 배수관이 계속 막힌다는 민원 전화를 받고 방문해서 원인을 살펴보니 농민이 막 수확한 감자의 흙을 씻어내는데 세탁기를 사용했고, 그 흙 때문에 배수관이 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의 기술자들은 농민을 혼내거나 이런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하이얼 기술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옷은 물론이고 감자까지도 세탁할 수 있는 그런 세탁기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마지막으로 하이얼의 기업가 정신이다. 중국 기업 경영자들에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1985년 칭다오 냉장고 공장의 지배인이었던 장 루이민은 적자를 내고 있는 회사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결함이 있는 냉장고 76대를 직원들이 직접 망치로 부수도록 함으로써 앞으로는 저 품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사건은 칭다오 냉장고 공장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30년 후 하이얼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백색가전 제조사가 됐다.
물론 이러한 정신은 삼성이나 LG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장 루이민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적 낙관주의’를 강조하며, 위험을 분명하게 인식하지만 이겨낼 수 있는 확신을 갖는데 집중한다. 즉, 먹구름이 처음 드리울 때 우산을 꺼내기보다는 구름 가장자리에 은빛으로 빛나는 희망적인 부분을 찾는 데 주력한다. 앞으로 백색가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아무튼 제대로 된 적수가 나타난 것 분명하다.
글.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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