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의 그리스신화] 여신의 알몸을 훔쳐본 악타이온의 죽음

개인의 행동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거스르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거나 스스로 떠나야 하는 운명을 맞을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깜짝 놀라 눈을 감을 때가 있습니다. 로드킬(roadkill)입니다. 로드킬이란 도로에서 죽은 동물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로드킬 현상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를 왜 가로지르는가 말입니다. 동물이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이유는 딱 두 가지 경우입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건너편으로 가려는 것과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건너편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로드킬은 어린 새끼 뿐 아니라, 어른이 된 동물도 당합니다. 개구리, 두꺼비 같은 작은 동물도 당하지만, 개, 고라니, 곰 같은 큰 동물도 당합니다. 두더쥐 같은 느린 동물 뿐 아니라, 외국에서는 말 같이 빠른 동물도 곧잘 로드킬을 당합니다. 로드킬은 새끼든 어른이든, 크든 작든, 느리든 빠른 것과 상관없이 당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동물이 부족한 먹이를 찾거나 안전한 보금자리를 얻으려는 것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문제는 도로의 규칙에 욕구가 가로 막혀 목숨까지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고속도로를 건너려는 동물은 거의 100% 목숨을 잃게 됩니다. 동물들이 로드킬 당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고속도로의 규칙은 직진입니다. 고속도로 어디에도 ‘이 길은 직진입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지도 않고 동물은 읽을 수도 없지만 고속도로의 규칙은 직진뿐입니다. 직진의 규칙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가로 지르기를 하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둘째, 로드킬 통계를 보면 밤 시간 로드킬이 대부분입니다. 고속도로의 규칙을 알 리가 없는 동물이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는 낮에는 고속도로를 건널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문제는 차가 뜸한 밤 시간 동물들은 먹이를 찾고 보금자리를 얻기 위해 도로를 건너다 로드킬을 당합니다. 저만치 뒤에 불빛이 보이지만 불빛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동물들이 걷거나 뛰는 속도에 비해 차가 달리는 속도는 무제한에 가깝습니다. 차가 적은 캄캄한 밤은 안전해 보이지만 빠른 속도 앞에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셋째, 로드킬을 당하는 순간 동물은 멈춰 차와 마주서는 상황이 됩니다. 차의 빠른 속도에 압도되어 멈춰서 바라보다가 목숨을 잃고 맙니다.
넷째, 동물이 요행히 차에 치이지 않고 길을 반쯤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거대한 가드레일이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어렵게 쌩쌩 달리는 차를 피해 반을 건넜지만 이젠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장애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넘어 보려하지만 포기하고 되돌아 가다가 동물들은 로드킬 당합니다.

로드킬 현상은 우리들에게 주는 사회적 교훈이 있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이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칙 즉,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연루된 축구 선수가 자살을 했습니다. 유망한 젊은 야구선수가 감옥에 갇혀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뇌물 비리에 연루된 사회지도층 인사도 자살을 택합니다. 명품에 빠진 여대생이 술집을 전전하다 자살한 사건도 있습니다. 왜 이들은 스스로 사회를 등지게 된 걸까요? 이유는 사회적 비난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아 사회적 비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현상을 사회적 로드킬(social roadkill)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스 어느 나라 왕의 손자인 젊은 사냥꾼 악타이온은 개들을 데리고 친구들과 사슴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슴이 보이면 개들이 달려들어 잡기도 하고 사냥팀의 리더인 악타이온이 화살을 쏴서 잡기도 했습니다.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악타이온은 숲 속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숲 속을 다니던 악타이온은 동굴을 발견하고는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동굴은 사냥과 달의 여신인 아름다운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진 공간이었습니다. 여신이 요정들과 목욕을 하는 성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순결한 처녀신으로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 난 딸이자, 아폴론의 여동생으로 서열이 높은 주요신입니다. 무심코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목욕하는 알몸을 보게 된 악타이온은 그 자리에 멈춰서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아르테미스는 넋을 잃고 자기의 벗은 몸을 보고 있는 악타이온을 향해 물을 한 움큼 집어 뿌립니다. 분노한 아르테미스는 악타이온을 말 못하는 사슴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악타이온은 숲 속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개울에 비친 사슴이 된 자기 모습을 봅니다. 그 때 악타이온의 친구들과 개들이 몰려옵니다. 도망치며 친구들에게 자기가 악타이온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가 기르던 개들에게 물려 죽고 맙니다.

악타이온은 참으로 억울한 상황입니다.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알몸을 보려고 일부러 동굴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연히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신에게 바쳐진 동굴에 들어간 것이 큰 잘못이고, 인간으로서 여신의 알몸을 본 죄는 그 자체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회규범과 어긋나는 가로지르기는 위험합니다. 알고 있었든 몰랐든 상관없이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은 사회적 로드킬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캄캄한 밤처럼 보는 사람이 적고 잘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통하는 빠른 속도는 숨을 공간과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가 통하지 않을 만큼 사회규범은 무제한의 속도를 자랑합니다. 요행히 사회규범을 거스르며 길을 건넜다 하더라도 그 앞에는 또다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사회규범이 가로 막게 됩니다. 반성하고 되돌아 가다가 사회적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로드킬은 유명 인사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사회적 로드킬을 맞을 수 있습니다. 사회규범은 알고 있든 모르든, 권력이 있든 없든, 돈이 많든 적든, 어리든 나이가 많든 상관없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욕설을 한 사람, 지하철에서 토악질을 한 대학생, 노래방에서 만난 여고생과 모텔에 들어간 40대 가장, 업체로부터 잘 봐달라는 청탁과 돈봉투를 받은 직장인, 영업정지 정보를 VIP 고객에게 미리 알려준 저축은행 직원 등 내가 될 수 있고, 내 가족이 될 수 있고, 동료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회적 로드킬을 당하지 않을까요? 사회 보편적 가치와 어긋난 가치를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 보편적 가치란 ‘상식’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입니다. 상식에 어긋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더불어 사회규범을 알아야 합니다.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소셜 네트워킹을 하고 대화를 통해 사회규범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로드킬은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음을 잊지 말고 유혹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자세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 JUNG JIN HO

정진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이사, <일개미의 반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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