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

  이사했습니다.고생? 무지하게 했지요.아직도 몸이 말이 아닙니다.여기저기 쿡쿡 쑤시고 저리고.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솔직히 이사하는 것 무섭습니다.소위 포장이사라는 걸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주부가 해야 하는 일은 고스란히 남는데. 똑같은 평수, 똑같은 구조의 집으로 이사하는 게 아니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수납공간이 다 다르니까요.

  이사하는 게 겁나니 당연히 이사 안하고 살았습니다.전셋집을 전전하다 겨우 장만한 집,그것도 단독주택에서 자그마치 13년, 다음에 난생 처음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8년 반... 이런 식이었죠. 결과는 뻔했지요. 월급쟁이가 돈 버는 건 부동산밖에 없다는데 이런 식으로,그것도 강북에 눌러살았으니 요즘 웬만하면 다 내야 한다는 종부세도 못내고...흑흑. 다 제 불찰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집 얘기만 나오면 열불이 터집니다.

  그런 제가 한 달 사이에 두번이나 이사를 했습니다.왜 그랬는지 묻지 마세요.생각하는 것도 힘드니까요. 아무튼 저는 이번에 이사하면서 정말 느낀 게 많았습니다. 포장이사라는 것에 대해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한 건 두 말할 것도 없고,유명배우 나와서 요란뻑적지근하게 하는 유명브랜드 아파트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새삼 알고 놀라고.....

  정말 속 많이 상했습니다.저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브랜드중 한 곳에서 지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발 뒤꿈치를 들고 걷습니다. 윗집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거든요.그 건설회사는 여전히 예쁜 여배우를 내세워 열심히 광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이 사는 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자기들은 단독주택에 살까요,아니면 자기네 윗집엔 콘크리트를 듬뿍 부어 소리가 안날까요??? 간장 공장 오너는 자기네 간장 안먹는다지요. 

  이사한지 한달 반, 아직도 정리 다 못했습니다.시간이 없으니까요. 퇴근 후와 주말에 짬짬이 하고 있는데 번번이 놀랍니다.언젠간 읽어야지 하고 쌓아둔 책,있는데 또 사들인 샴푸와 클렌징크림,입지 않으면서 버리지 못한 옷,종이 한 장도 귀하던 옛날 생각만 하고 아까워서 못버린 달력과 수첩 등등. 어쩌면 이럴 수가 싶었습니다. 더 심각한 건 그러면서도 아직 못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다시 결심했습니다. 버리자,정리하자,있는 건 열심히 쓰자. 비싼 돈 주고 사서 한두 번 쓰고 내버려둔 것들, 머리카락 난다는 화장품,나이들어 생긴 울퉁불퉁한 살 없애준다는 크림 등등. 그리고 또 결심했습니다. 뭐든 아깝고 고맙던 결혼 초기의 심정으로 돌아가보자. 

  잘 살자면,실패하지 않으려면 가끔씩 인생이란 가방을 풀고 괜히 들고 있는 게 없는지 살펴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가뿐하게 다시 싸야 한다지요. 저는 이번 이사를 계기로 제 삶의 가방을 완전히 풀어헤쳐 다시 싸볼 생각입니다. 온갖 어리석은 미련 때문에 괜스레 무겁게 지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 되새겨 보구요. 쉽지 않을 겁니다. 뭐든 끔찍히 아깝고 세상에 대한 복수심도 만만치 않던 젊은 시절을 보낸 까닭에 버리기도 마음을 비우기도 어렵거든요.

  그래도 해볼 참입니다. 안그러니 너무 힘들거든요. 얼굴도 자꾸 어두워지려고 하구요. 살림은 물론 마음속의 어지럽고 무거운 짐과 욕망을 얼마나 많이 버리고 가벼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격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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