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역사를 아시나요?

 

반드시 시장자료를 인용하지 않아도 국내 맥주시장은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입 맥주 브랜드들이 조금씩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두 기업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 기업은 국내 맥주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1990년대 후반 1, 2위가 바뀐 진실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국내 맥주시장의 역사를 통해 리딩 브랜드에 대한 오해를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국내 맥주의 시작

 

우리나라 맥주의 시작은 1876년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일본인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일본 맥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라고 합니다. 지금도 국내 매니아들이 즐겨 마시는 ‘삿포로’에 이어 ‘에비스’, ‘기린’ 등이 당시에 차례로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맥주 소비량은 보잘 것 없었지만, 1910년 일본 맥주회사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내면서 소비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는 수입 주류 가운데 소비량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1933년 8월 국내 최초로 맥주회사가 설립되었는데 일본의 대일본맥주 주식회사가 서울에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 해 12월에는 일본 기린맥주 주식회사가 서울에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하였죠. 두 회사는 해방 이후 1945년 적산관리 공장으로 지정된 후, 미군 군정에 의해 관리되어 오다가 1950년대 민간인에게 불하되었습니다. 이 때 설립된 것이 조선맥주 주식회사와 동양맥주 주식회사이고 이 두 회사가 현재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입니다.









본래 맥주시장의 1위는 크라운맥주!

 

조선맥주(현 하이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맥주회사로 1956년 동양맥주(현 오비맥주)가 설립되기 전까지 경쟁상대조차 없었습니다. 동양맥주가 맥주시장에 진출한 이후에도 시장은 동양맥주의 OB를 조선맥주의 크라운맥주의 모방품 정도로 생각하고 외면하였습니다. 게다가 조선맥주는 1962년에는 국내 최초로 맥주 국외수출을 시작하였고, 1968년에 국제 식품 심사 위원회(I.C.S.P)에서 3개 부문 최우수 금상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가히 독보적인 위치에 독보적인 품질 우수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대부분 국내 마케팅 사례집이나 교과서를 보면 이 앞선 역사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 맥주회사의 전신이 일본기업이라는 것은, 뭐, 숨기고 싶은 기업의 역사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본래 국내 맥주의 리딩 브랜드는 크라운 맥주였다는 이야기조차 잘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리딩 브랜드가 바뀌다. OB 주세요!

  

맥주 시장을 거의 독점 하던 조선맥주는 마케팅 대신에 품질경영에 주력하고 있었죠. 반면에 동양맥주는 거대한 경쟁자를 꺾기 위해 나름대로 다양한 각도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마케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당시에 가장 획기적인 마케팅 활동은 매체광고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맥주시장의 그 어떤 변화 보다도 TV수상기의 보급과 곧바로 이어진 컬러TV의 보급은 당시에 공격적 광고집행을 한 기업들에게 큰 효용을 되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동양맥주는 상당히 선진적인 광고컨셉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브랜드인 OB를 맥주 카테고리의 대표명사로 포지셔닝하는 것이었습니다. 광고뿐만 아니라 술집에서 맥주를 주문할 때는 ‘맥주 주세요.’ 대신 ‘OB 주세요!’를 외치도록 프로모션을 했다고 경험치로 들었는데, 이는 지금 마케팅 현장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30여 년 전 이런 방법을 실행했다는 것은 감탄할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크라운맥주의 실수도 연속되었죠. 계속해서 자신들이 맛에 있어 우위에 있다는 품질 지상주의적 광고와 과거 시장점유율에 의존한 뻣뻣한 영업행태로 인해 나중에는 소매점들이 크라운맥주의 입고를 꺼려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조선맥주에서는 크라운 열 박스에 한 두 박스씩은 끼워팔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죠(일종의 무자료 거래라고 볼 수 있는). 결국 이로 인해 1990년대 초에는 OB맥주와 크라운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8:2 정도로까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또 리딩 브랜드가 바뀌다. 100% 천연 암반수로 만든 하이트!

 

당시 조선맥주는 상당한 정도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거의 대부분 두 맥주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에서 5:5로 나타났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 조사로는 승부를 낼 수 없었죠.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는 크라운 맥주가 '쓰기만 한 강한 맥주'로 포지셔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조선맥주는 브랜드 이미지가 맥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기존 이미지로는 1위인 OB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수십 년간 유지해온 대표 브랜드를 버리기로 합니다. 조선맥주의 과감한 결정과 함께 크라운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993년 ‘하이트(Hite)’가 탄생하게 된다.

 

사실, 이 결정과 하이트의 탄생은 한국 마케팅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제조회사에서 객관적 품질이라는 실체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인식이라는 주관의 영역에 근거한 마케팅적 결정을 한 거의 최초의 일이니까요. 그것도 포지셔닝이라는 프레임에 기초해서. 

 





하여간 조선맥주는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서울에 있던 공장을 강원도로 옮기고 ‘지하 150m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라는 컨셉을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유통쪽에서는 그다지 하이트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양맥주가 맥주시장을 뒤흔들 때처럼 시장 외부요인이 하이트를 도왔습니다. 바로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가 발생한 것이죠. 당시 OB는 이에 대한 리스크 매니지먼트에서 실패했고, 이에 따라 '깨끗한 물'이라는 하이트의 컨셉이 언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맥주는 하이트를 통해 다시 맥주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하게 된다. 이에 감격해 1998년 조선맥주는 사명(社名)도 브랜드 네임이었던 하이트맥주로 바꾸죠.





OB는 뭘 하고 있었나?

 

동양맥주는 하이트가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1994년 3월 ‘OB아이스(OB ICE)’를 출시하였습니다. 이거 참 재미납니다. 마케팅으로 승리한 OB맥주가 리딩 브랜드 위치에서는 마케팅을 벗어나 단순한 제품 확장으로 대응했다는 것이. OB아이스라? 얼어붙은 맥주는 무슨 맛이 날까요? 제품명이나 컨셉 모두 기존 포지셔닝과 거리가 먼 제품이었죠. 당연히 시장에서 고전하였습니다.

 

게다가 1994년 6월 진로는 자회사 진로쿠어스를 설립하면서 비열처리맥주 ‘카스(Cass)’를 출시합니다. 진로쿠어스의 진출은 진로의 유통력을 감안할 때 맥주시장에 상당히 위협적인 상황이었죠. 특히나 1위인 동양맥주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10월 ‘넥스(Nex)’를 출시합니다만 쯧쯧. 같은 이치입니다. Nex라니...이건 뭐지? 결국 Nex도 그렇게 사라집니다.

 

결국 동양맥주는 1995년 사명을 ‘OB맥주’로 변경하고(갑자기 왜? 하이트 따라하기일까요?) 멀티브랜드 전략을 내놓습니다. OB아이스와 넥스로 젊은 층을 공략하고 3040은 OB를 통해 공략한다는 것이죠. 이와 함께 이미 진부해진 OB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OB라거(OB Lager)’를 출시하고 하이트의 깨끗한 물 컨셉에 대항하여 ‘숙성’이라는 컨셉을 표방합니다. 

 

OB라거는 어느 정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OB아이스와 넥스는 시장에서 참패를 하고 있었죠. 결국 OB맥주는 전략을 수정해서 세대별 멀티 브랜드가 아니라 OB라거를 메인 브랜드로 내세우게 됩니다. 기존의 ‘숙성이 다른 맥주’라는 컨셉을 ‘잘 익은 맥주’로 재해석하고, 메인 모델을 이덕화에서 박중훈으로 교체하여 젊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하였죠. 이후 최종원의 가세와 함께 한국 광고사의 기념비적 광고인 "랄라라 시리즈"가 히트를 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OB맥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이트맥주 역시 OB맥주의 멀티 브랜드 전략에 대응하여 ‘프라임(Prime)’등 신제품 출시와 온도계시스템 같은 아이디어로 OB맥주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고 결국, 1998년 OB맥주는 벨기에의 글로벌 맥주그룹인 인터부르에 인수됩니다. 이와 함께 경쟁사인 카스도 합병하게 된다. (물론, 이때도 시장 외적인 변수인 외환위기가 한몫한 것이죠)





또 한번 리딩 브랜드가 바뀔 것인가? 톡! 쏘는 카스

 

OB맥주는 페트병 맥주 출시 등 많은 전략을 선보여보지만, 실패가 계속되고 하락세가 계속되자 주력브랜드를 OB에서 카스로 바꿉니다. 카스는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하이트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카스는 90년대부터 꾸준히 '젊음'과 '톡 쏘는 맛'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는 20대라는 주력시장에 대한 집중화 전략이면서 동시에 탄산에서 오는 독특한 느낌의 맛을 차별화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컨셉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나 최근에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섞여 있어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지만, 하이트의 실수도 큰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하이트는 지나치게 기존 포지셔닝을 우려먹은 사례일 것입니다. 중간에 프라임도 출시하고 했지만, 사실 광고모델이 빅뱅이 나온다고 어른들이 마시던 맥주가 세련되게 바뀌는 것은 아니죠.

 



이런 의미에서 '맛있는 맥주' 맥스를 출시한 것은 적절했다고 보여집니다. 맥스는 출시 2년 만에 OB를 따라잡으며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고 있죠. 물론, 최근 OB맥주는 골든 라거를 통해 '깊은 맛'의 반격을 가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수 십 년간 도전과 응전 속에서 만들어진 국내 맥주시장의 치열한 결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메인 스트림에서 벌어지는 하이트(하이트드라이피니쉬d)와 카스(카스 후레쉬)의 경쟁, 좀 더 고가의 '맛' 시장에서의 진검 승부인 맥스와 OB골든 라거. 두 시장 모두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치열한 결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최근 소식에 의하면 다소 하이트맥주가 밀린다고 하네요.









그 결과를 예측해 보는 것도 즐겁지만, 지난 역사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가장 마케팅적인 의사결정과 반마케팅적 행동들을 되돌아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마케팅의 성공은 기업의 내적 활동보다 외부 환경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국내 맥주시장에서 시장의 변동은 외부 요인의 영향력이 컸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떻신가요?



* 이종진 대표는 현재 브랜드/마케팅 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브랜드커리어닷컴을 (www.brandcareer.com) 운영하며, 브랜드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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