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목욕하며 욕실 벽에 붙여놓은 알파벳. 혼자 목욕을 하며 색깔별로 맞춰놓았다.

 

“밥 먹고, 공부하고, 자고, 밥 먹고, 공부하고, 자고... 엄마는 나랑 안 놀아주잖아!”

유치원 방학을 맞은 아들래미는 늦잠을 자는 호사를 누린 뒤에는 심심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언뜻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구적인 엄마인가 싶어서 혼자 기분 좋아하다 정신이 번쩍 났다. 지오의 눈높이에 비친 나는 결국 세 가지 모습 뿐인가 싶어서였다. 무엇인가를 먹고 있거나,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요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가고 싶어하는 곳에 함께 가거나... 지오와 눈을 맞춘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이런 기억은 없는 것일까?

알고보니 “밥 먹고, 공부하고, 자고”라는 말은 지오가 최근 본 MCN 채널 중 ‘뽀로로’와 관련되어 나왔던 대사란다. 거기에서는 “밥 먹고, 놀고, 자고, 밥 먹고, 놀고, 자고...”라고 나왔던 것을 나름대로 응용한 것이었다. 항상 머리 속에 아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여겼는데 정작 아들은 엄마가 자신과 안 놀아준다고 생각하다니. 물론, 투정도 섞여 있겠지만, 나의 뇌구조를 들여다볼 수 없는 아들의 눈에는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싶다.

돌이켜보니, 내가 똑같이 아이처럼 천진한 마음으로 함께 놀기 보다는, 언제나 ‘학습’적인 ‘놀이’를 하지 않았나 반성이 되었다.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목욕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간혹 물감을 풀어주거나, 목욕용으로 쓰일 수 있는 찰흙으로 목욕과 놀이를 겸하게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서 놀게 두었던 듯 하다. 지인이 선물해준 영어 알파벳도 지오가 좋아하는 목욕탕 놀이 중 하나. 욕실벽에 알파벳으로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퀴즈를 하기도 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조차도 ‘학습’이었던가?

 

색깔별로 맞추다 지치면 기차길처럼 구불구불하게 붙여보기도 했다.

 

‘놀이’와 ‘학습’을 겸하기 시작했던 것은, 실은 공부하기를 쉽게 지루해하는 나 자신의 특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최대한 즐겁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놀며 배우기를 좋아하기에, 아이에게도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된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정작 ‘놀이’다운 ‘놀이’는 하지 못한 게 아닐까.

‘터닝메카드’ 조차도, 친구들과 대화를 잘 나누고 또래다움을 갖기를 바라는 어떤 목적을 갖고 소개해줬으니. 늘 아이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여겼던 나의 자만심에 여지없이 꺾인 것은 “엄마는 나랑 잘 안 놀아줘. 아빠는 잘 놀아주지”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보다 훨씬 바쁘고, 아이와 시간을 덜 보내는 아빠가 이렇게 후한 점수를 받다니. 생각해보니, 아빠는 아이와 ‘터닝메카드’ 배틀을 벌이곤 했다. “엄마는 캐릭터 이름이 헛갈려. 모르겠어”라고 늘 발을 빼는 나와 달리, 남편은 캐릭터를 핸드폰 메모장에 메모해놓고, “공격하겠다! 볼트 스파이크!!”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마루에 모래를 펼쳐놓고 놀 때 함께 손을 넣어 장난을 치지는 않고, 발에 밟히는 모래알들이 신경 쓰여 정리를 잘 해야 한다는 취지의 훈육을 빙자한 잔소리를 해 댔던 것 같다. 블록놀이도 설명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도망가기 일쑤였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집 안을 난장판을 만들며 실컷 놀아봐야겠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