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순성.

문명을 진화시킨 인간의 두뇌는 인지와 지령의 총본부다. 두뇌는 기억과 판단과 정서를 만드는 1.5킬로그램의 동굴이다. 수렵시대 인류는 맹수가 달려들면 남들이 뛰는 방향으로 뛰되 상대보다 한 발 빠르면 살았고, 현생 인류는 이겨야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유익해야 산다. 농경시대 인류는 밥을 해결하면 행복했고, 산업시대는 물질이 풍요로우면 행복하다고 착각했다. 두뇌의 저장 용량은 방대하지만 생각과 판단의 구조는 지금도 ‘없다’(0)와 ‘있다’(1)의 2진법 조합이다. 2진법의 수억의 조화로 인공지능도 흉내 낼 수 없는 미묘한 감각을 창조하기도 하고, 본능에 속으면 냉정한 판단을 잃기도 한다. 두뇌는 곧 자아다. 생각을 만드는 구조가 단순하기에 판단도 단순해야 행복하다. 너무 복잡하게 계산하고 걱정하면 자기 꾐에 빠진다. 지금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베지 마라. 언젠가는 당신이 오를 나무다. 앞으로 자아의 영원생존 본성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사이버 자아도 생길 것이다. 복잡한 관계와 불필요한 지배 구조를 만들지 말고, 서로 편하고 정직하게 협조하고 서로가 사는 환경을 만들자.

 

결심의 단순성.

결심을 못하면 갈등만 깊어지고 복잡해진다. 나쁜 결심이라도 일단 결심을 하면 결심 방향으로 지혜가 모이기 마련이다. 우유부단보다는 잘 못된 결심이 낫다. 국가 생존차원의 결심은 신중해야 하지만, 개인 이익 차원의 결심은 양심에 맡기면 단순하고 정확하다. 양심은 안이한 불의와 불안한 편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머리에서 양심(가슴)까지는 자기를 버리기 전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다. 대충 무엇을 해보려고 시도하면 양심은 찝찝한 기운을 발동시켜 행동을 막는다. 양심은 하늘 프로그램이기에 욕심으로 포섭하지 못하고 한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양심 없이 결심을 하려고 하는 것은 2차 방정식으로 4차원 문제를 풀려고 덤비는 격이다. 스마트 시대에 수동을 사용하는 것은 절약이 아니고 낭비다. 결심할 게 있으면 먼저 양심에게 물어보자. 양심이 허락하면 < 양심에서 행동으로 바로가기>를 설정해 두고, 양심이 좋다고 하면 그냥 따라가자.

 

행동의 신중성.

기계는 단순해야 고장이 적고, 행동은 신중해야 탈이 없다. 힘은 힘이 지향하는 방향을 따르고, 민심은 정성과 정직과 정도가 있고 다수를 이롭게 하는 편을 지지하고 따른다. 여론은 일시적인 힘의 방향이고 문화는 누적된 힘의 방향이다. 다수를 위한 노력과 정의는 목석도 감동하게 만들고, 소수의 권위와 권력을 위해 달콤한 인기정책으로 선동하면 눈 밝은 다수는 먼저 알아보고 돌아선다. 좋은 게 좋다는 2차원적 의사결정 집단은 필연적으로 오류와 오판과 착각으로 다수의 고통을 창조한다. 강 건너 세상이 추하고 냄새가 난다고 흉보지 마라. 당신도 언젠가는 경험을 해야 할 피안(彼岸)의 세계다. 양심이 아니라고 하면 기필코 중지하고, 몸이 유혹에 빠지면 단호하게 자기 몸을 벨 수 있어야 한다. 집을 떠나 행복과 성공을 찾는 게임은 쉽게 지친다. 마음의 집으로 돌아가 인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즐거운 행동으로 자기 행복을 소비하며, 베풀고 배려하는 기운으로 삶을 더 아름답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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