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메카드’ 포스터.

 

아이들 세계에도 트렌드라는 게 있다. 요즘 인기 콘텐츠는 단연 ‘터닝메카드’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터닝메카드’ 열풍은 아이들에게 가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평소 관심사가 달라 놀이를 하다보면 한 두 번씩 다투기도 하던 일곱 살 아이들도 ‘터닝메카드’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더없이 화기애애하다.

지오는 몇 년 동안 ‘뽀로로’를 한없이 애정했다. 만화 속 친구들이 갈등을 빚다가도 쉽게 화해하는 평화주의적 구성 때문이었을까. ‘뽀로로’ 애니메이션이나, ‘뽀로로’를 소재로 한 반댓말놀이, 숫자놀이 등의 교육물까지 늘 행복한 마음으로 접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워레인저’ 등 다른 캐릭터에 대해서는 큰 호감을 보이지 않고 오직 ‘뽀로로’만 좋아했다.

그런 지오가 ‘뽀로로’에 대해 가졌던 애정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여섯 살 때. 새로 시작한 ‘터닝메카드’라는 만화에 친구들이 빠지면서부터였다. 친구들은 “ ‘뽀로로’는 시시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너 터닝메카드 장난감 몇 개 있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는 다른 ‘너’, 그리고 그런 ‘나’와 ‘너’가 어우러지는 ‘사회’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여섯 살에게 더 이상 ‘뽀로로’는 좋아할 수 없는 금기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악당을 물리치고 어둠과 싸우는 ‘터닝메카드’는 조심성이 많은 지오에게는 무섭기도 했겠지만,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 강력한 공통분모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하철이나 지도와 같은 관심사를 나눌 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터닝메카드’로는 친구들이 금세 친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터닝메카드’ 만화책 한 권을 구매하여, 쓱 지오에게 전달했다.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겨보던 지오는 날마다 만화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메카니멀을 지키려는 류와 이용하려는 데미안, 그리고 30년전 과거 속 나찬과 친구들 등 복잡한 구성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전체 구성을 파악할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하철노선도를 보는 게 취미이던 아이는 ‘터닝메카드’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온갖 캐릭터와 캐릭터의 특징을 열심히 외워댔다.

사실 ‘터닝메카드’의 인기는 만화 속 캐릭터를 꼭 닮은 장난감이 판매되며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터였다. 자동차에 카드를 가져다대면 동물로 바뀌는 모습에,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는 듯 남자 어른들도 “와!”하고 한 번씩 감탄들을 해 대니,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에 충실히 호응해주며, 장난감은 사지 않고 물려 받는다는 나의 육아 철학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바자회에 줄을 서서 장난감을 사다 주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뿐이랴. 터닝메카드 그림이 들어간 도시락통을 너무나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다 못해, 도시락통을 선물로 주는 씨리얼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일까. 지오는 친구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보다 편안한 교우관계를 이어갔다. 외동이고 평소 어르신들과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처럼 ‘잔소리’를 하곤 했던 아이가 이제는 또래다움을 회복한 것 같아, 나 역시 주머니가 얇아지는데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과 대화 소재로 활용할 정도로만 만화를 봤으면 싶었는데, 지오의 머릿 속은 온통 만화로 가득차는 것만 같았다. 특정 주제에 관심을 가지면 끝없이 파고드는 ‘덕후스러움’ 때문일까. 지오는 IPTV에서 어느새 유튜브를 검색하여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갖고 노는 캐리 누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MCN 세계까지 진출하였다.

“저 누나가 혼자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보기만 해도 재미있어?”

“응.”

 

엄마의 점심을 위해 아들이 특별히 빌려준 터닝메카드 도시락통.

 

어느날 아침, 학교 연구소에 점심으로 먹을 요량으로 샐러드를 만들었는데, 마땅한 통이 보이지 않았다.

“지오야, 엄마 학교에 샐러드 가져가려는데, 혹시 터닝메카드 도시락통 빌려줄 수 있겠니?”

“선배랑, 후배랑 같이 먹으려고 해? 알겠어. 그 대신, 터닝메카드 도시락통은 꼭 가져와야 한다!”

걱정을 머금은 채 지오의 ‘터닝메카드’ ‘덕후질’을 바라봐야했지만, 그나마 지오가 ‘터닝메카드’보다는 엄마를 사랑하긴 하는가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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