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부분 친구들은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 주잖아. 근데 왜 우리는 아빠가 데려다 줘?"

네 살 때부터 집에서 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닌 지오가 어느 날 물었다. 엄마 회사 앞 어린이집에 지원해 합격을 해 놓고도, 등원 전에 엄마가 이직을 하는 바람에 어린이집 등원은 오롯이 아빠의 몫이었다. 다섯 살에 들어간 유치원은 100년 전통의 유치원이었지만, 엄마가 아빠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오는 아빠의 손을 잡고 날마다 유치원에 갔다. 주변을 돌아보고, 다른 친구들의 보호자를 관찰하게 된 지오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만 왜 아빠이고 할머니냐고.

아빠가 아침에 유치원에 자주 데려다줬던 이유는, 엄마의 직장 문제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더 큰 이유는, 1998년 이후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나의 면허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위 ‘장롱면허’라 불리며, ‘무사고 모범운전자’라고도 불리는, 실용성 없는 자격증에 그친 나의 운전면허증.

운전면허학원에 가면 “어이, 못 하는 학생 왔어?”라는 소리를 들었고, 클러치(가 있던 시절) 상태에서 시동을 꺼트려 바퀴 한 번 못 굴려보고 실격 처리되거나, 감을 익히자며 오락실 같은 시뮬레이션 학원(당시로서는 아마도 꽤나 앞섰던)까지 거쳐 2종 오토로 겨우 취득한 소중한 면허. 어렵게 취득한 만큼, 나의 운전면허증은 실제로 차를 운전하기 위한 자격이 아니라,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시험의 합격에 불과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면허는 이력서에나 표기되는 자격증일 뿐이었다.

엄마가 되고 6년간은 버텼지만, 불편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지하철역을 외우고 순회하는 게 취미가 되어 버린 아이와 휴일이면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해야 했고, 아이와 함께 다니려면 하나둘씩 늘어나는 짐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있기 일쑤였다. 지오와 나의 지하철 투어는 취미라고 주장한다손 치더라도, 친구들이 늘어나고 함께 야외 활동을 하게 되면서 매번 이동을 할 때마다 친구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마음의 부담이 컸다.

하여,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상자 안에 넣고 봉해버렸던, 시내 운전이라는 미션을 수행해 보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함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후배가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줘 얼결에 바로 약속을 잡은 것도 나의 망설임을 덜어주었다.

첫날부터 북악스카이웨이를 다녀온 나는, 예상외로 잘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한껏 고무되었다. ‘아이를 낳고 겁이 없어진 것일까?’ ‘나는 분명히 운동신경이 없는데…’ 의아하면서도 내 인생에서 풀지 못 했던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었다. 연습을 거듭하며, 운전이랑 운동 신경과 관련이 되었다기보다는, 기계를 조작하는 일이며, 길을 외우는 것이 사실은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매번 손에 나던 촉촉한 식은땀을 줄어들었고, 어느새 앞차가 답답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문제는 예상외로 부닥친 지오의 반대였다. “엄마는 연습을 더 해야 해. 10번은 더 하자.”라며 단둘이 차를 갖고 외출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이다.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왜 그럴까?’라고 의아해하던 나는 어느 날 번뜩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 초보라 길을 익히고 상황을 판단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내가 운전한다는 의미는, 지오에게는 엄마와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지오가 그토록 좋아하는 퀴즈놀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사실 등굣길의 퀴즈는 지오가 너무나 행복해하는 시간이었다. 끝말잇기, OX, 4지 선다 등 다양한 형태로 한글, 영어, 지하철 노선, 우주의 특징, 터닝메카드 캐릭터 등 무궁한 관심사를 엄마 아빠와 나누었던 것이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일이 조금씩 늘고 있다. 같은 반 친구들과 모두 걸어가기에는 꽤나 먼 곳에서 모임이 있을 때 엄마와 차로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고, 유치원 근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을 때는 한밤중에 집에 올 때 지오를 차에서 재우게 할 수 있었다. “엄마 그런데 말이야… 화성이…”라는 말이라도 나올라치면, “지오야 미안해. 엄마가 아직은 운전하면서 두 가지 일을 못해. 그냥 이야기는 할 수 있는데, 우주 퀴즈처럼 머리를 쓰는 일을 하면서 운전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오의 입을 막게 된다.

평소에 잠드는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유치원 근처에서 친구와 헤어졌지만, 미리 이를 닦도록 한 뒤 차에서 재울 수 있어 나로서는 운전을 연습한 보람을 한껏 느끼고 있다.  지오도 엄마가 운전을 하게 된 것을 더 행복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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