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전자화 속도는 빠르다. 사실 빠르다기보다는 이제 전자부품과 자동차는 빼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돼 버렸고, 전자부품이 사용되지 않은 자동차는 상상할 수 없는 때가 돼 버렸다. 1990년대만 해도 한 대의 자동차를 놓고 볼 때 가장 많은 전자부품이 사용된 곳은 라디오가 전부였다. 그 밖의 부품들은 전자가 아닌 전기부품이었다. 헤드램프와 테일 램프, 그리고 실내 등을 비롯한 조명을 켜고 와이퍼를 작동시키는 것은 모두 전기회로와 전기부품들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전자제어 엔진이 쓰이기 시작하는가 하면, ABS와 같은 장비가 장착되면서 전자 부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디지털 기술의 전자부품이 쓰이지 않은 자동차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최근의 차들은 대체로 전체 부품의 25% 내외의 전자 부품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차량들은 디스플레이의 비중이 높다

 

차량의 여러 부분에서 디지털, 또는 전자기술 적용에 의한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운전석을 중심으로 하는 계기판 주변일 것이다. 이곳은 많은 조작장치들이 몰려있는 것은 물론이고, 내비게이션을 비롯해서 운전에 필요한 다양한 기기와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그야말로 인터페이스(interface)의 메카(?)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독성(可讀性) 높은 계기판이나 조작장치의 디자인과 이들의 적절한 배치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곳이다. 즉 다양한 정보와 조작장치를 최적의 장소에 배치하면서도 디자인의 심미성을 높여야 하는 곳이므로 디자이너와 설계자 모두에게 고민투성이의 장소이다.

 

과거의 디지털 계기는 오늘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정보와 조작장치를 한정된 공간에 몰아 넣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큰 고민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차량에서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얻고 조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운전석 인터페이스 설계의 가장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운전자와 차량 간의 정보 소통 문제로 압축된다. 사람과 자동차가 어떻게 적절히 의사소통을 하느냐는 안전운전을 통한 차량의 적절한 사용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운전자에 대해 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디스플레이 기술 발전을 요구하게 된다.

 

곡면형 와이드 LCD 패널이 쓰인 인스트루먼트 패널

 

아날로그적 표시방식 이지만 디지털 기술로 구동된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장치는 초기에는 LED나 LCD를 이용한 디지털 계기판 형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디스플레이장치 자체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구동되지만, 표시 방식은 보다 직관적 인지가 가능한 아날로그 형식,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형식으로 변화됐다. 이러한 발전의 배경에는 LCD(Liquid Crystal Display), 즉 액정(液晶) 표시장치의 발전으로 해상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형태와 색상 표현의 자유도가 늘어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LCD 자체도 구부러진 패널의 출현 등으로 몰입도 향상과 디자인 적용성도 높아졌다.

 

지도 등 다양한 콘텐츠도 표시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 이외에도 운전자가 표시장치를 읽을 때의 직관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념의 GUI(Graphic User Interface)의 소프트웨어적 디자인 개발 역시 디지털 디스플레이 발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운전 모드에 따른 정보의 우선 순위에 의한 속도계가 표시하는 숫자의 배열과 크기는 물론이고, 아날로그 형식의 가동지침형(可動指針形) 표시와 물리적 양을 표시하는 바(bar) 형식의 표시방법과, 색상까지 다양하게 변환시키는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의해 표시장치의 가독성이 크게 높아졌다. 또한 계기판 형태의 그래픽에 국한되지 않고 초정밀 지도, 혹은 3차원 이미지의 영상을 동시에 표시하는 방식으로까지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표시 장치는 장치 자체의 하드웨어적 발전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지도 데이터와 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의 축적과 구성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미지 표시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인지와 인식의 개념, 나아가서는 존재와 인식의 개념에까지 연관돼 있다. 즉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실존하는 것이 아닌 가상의 대상 인식을 통해 실존의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과, 이것은 실제의 이미지에 데이터를 결합하는 증강현실 기술로 이어진다. 차량의 표시장치에 증강현실의 개념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으며, 특히 차량 주행 보조장치 내비게이션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동작 인식 기술은 예방안전에 기여한다

 

디스플레이 장치가 단지 정보의 표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의 주요 조작 행위를 센서에 의해 감지해서 그 조작의 결과를 표시하는 개념으로도 발전되고 있다. 액정 창에 표시되는 터치식 조작버튼이 차량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의 물리적 버튼의 숫자를 줄이는 역할을 했으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패널을 직접 터치하지 않고도 조작이 가능한 단계로도 발전하였다. BMW에서 선보인 모션 인식 기술은 운전자가 미리 약속된 동작을 하면 센서로 이를 감지하여 작동시키는 것으로, 운전 중 조작 패널을 직접 터치하지 않고도 기능이 수행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조작과 디스플레이가 결합된 통합 인터페이스는 특히 높은 주의력이 요구되는 고속주행 운전에서 예방안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자동차의 디스플레이는 기본적으로 탑승자를 위한 표시장치이지만, 근본적으로 본다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과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정보 교환 수단이다. 따라서 효율적 정보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디스플레이의 디자인은 하드웨어적 기술과 소프트웨어적 기술이 결합되어 자동차의 기능과 사람의 운전 개념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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