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한국 시간) 끝난 유로 2012 대회는 무적함대 스페인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 대회에서 비록 최우수선수(MVP)는 우승한 스페인의 이니에스타 선수에게 뺏겼지만, 가장 각광받은 선수로 준우승을 한 이태리를 이끌었던 피를로 선수를 꼽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피를로는 MVP경합에서 이니에스타를 줄곧 앞서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우승팀에서 MVP가 나와야지’하는 여론에 아깝게 밀렸다고 한다. 피를로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슬렁슬렁 동네 산책하는 듯이 경기장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래도 이태리 공격의 출발과 결정적인 기회가 그의 발끝에서 나온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그를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이 좋다’고 한다. 그는 힘을 뺄 줄 안다. 힘을 빼고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잔뜩 힘이 들어간 상대는 지레 지쳐버린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내지 못한다.힘을 빼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대표적인 장면을 그는 영국과의 승부차기에서 연출했다. ‘파넨카킥’이라고 하는 힘을 빼고 슬쩍 볼을 원래 골키퍼가 있는 곳으로 올려, 한쪽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골키퍼를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파넨카킥은 대담한 시도이다. 골키퍼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쉽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성공하면 상대방의 기를 제압하는 효과가 있다. 피를로에게 파넨카킥을 당한 영국은 다음 키커가 실축을 하고 결국 이태리에게 4강 자리를 내준다. 한국 축구에는 예전에 발발이 형 선수들이 많았다. 경기 내내 공이 있는 곳이면 그 선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부지런히 공을 쫓아다닌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공격을 맡았던 어느 선수 하나는 최전방 측면 끝에서 공을 뺏겼다가 결국 패스되는 공을 우리 진영의 구석까지 따라와서 공을 뺏는 투지를 보여 그 왕성한 체력을 과시함과 함께 투지의 화신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과연 그 선수들이 실제의 승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 유형의 플레이는 유럽이나 남미와 같은 선진국과의 국제경기에서는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선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완급을 조절하며 뛰는 선수를 우수한 기량을 갖춘 선수로 꼽는다.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본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 야구 투수로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박동희 선수를 꼽는다. 대학 시절 자신이 다닌 대학의 특성을 따라 ‘민족투수’라고도 불렸던 그는 불세출의 선동렬 투수보다 빠른 공을 마구 뿌려댔다. 그런데 선동렬 투수에게는 속도를 죽인 슬라이더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오직 엄청나게 빠른 직구만이 있었다. 체력마저 타고난 그는 9회 내내 거의 속도가 줄지 않는 불같은 속구를 뿌려댔다. 그렇지만 두어 번 타순이 돌고난 후, 속도에 익숙해진 타자들은 공을 커트하여 파울볼을 만들거나 안타를 때려대기 시작했다. 강속구의 위용을 자랑하며 타자들을 압도하다가 배트를 짧게 쥐고 나온 타자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점수를 내주고 나가는 그의 모습 자체가 익숙해지곤 했다. 같은 양상이 되풀이된 어느 날 함께 그의 경기를 시청한 친구가 혼잣말을 했다. “세상에 너처럼 공을 세게 던지고, 경기에 지는 투수는 없을 거다.” 그렉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야구 생애 최다승 부문에서 355승으로 역대 9위에 올라 있다. 1980년 이후 데뷔한 선수로 10위 안에 든 투수는 그를 제외하고는 로저 클레멘스 밖에 없다. 그는 불같은 강속구를 지닌 클레멘스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비교되었다. 클레멘스의 강속구와 비교하여 그는 자로 잰 듯한 제구력을 제외하면 내세울만한 무기가 없었다. 그의 투구 빠르기는 그저 그랬고, 변화구의 각도도 리그 평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의 장기는 타자들의 허를 찌르는 힘없는 공이었다. 그런 공이 교묘하게 타자들의 타이밍을 뺐었다. 별로 많이 던지지 않았지만, 몇 차례 던지는 힘없는 공이 그가 던지는 직구들이 타자들에게는 마치 클레멘스의 직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17년 연속으로 가장 수비를 잘하는 투수로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투구할 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투구 후에도 유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클레멘스는 힘도 좋았지만,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000년 가을 월드시리즈에서 뉴욕을 본거지로 하는 두 팀인 뉴욕양키즈와 뉴욕메츠가 맞붙었다. 소위 ‘지하철 시리즈’가 열렸다. 뉴욕메츠의 공격 선봉장은 포수를 맡고 있던 마이크 피아자였다. 피아자는 LA다저스 시절에 박찬호와 함께 뛰었던 선수로 한국 팬들에게도 낯익은 공격형 포수이다. 피아자는 특히 클레멘스에게 강한 모습을 보였다. 7월에 인터리그 경기에서 클레멘스가 피아자의 헬멧을 맞히는 공을 던졌는데, 자신이 피아자에게 당했던 것의 보복이라고들 했다. 실제 그랬는지 언론이나 팬들이 만들어낸 것인지 앙숙관계의 두 선수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났다. 클레멘스의 강속구를 피아자가 쳤는데 빗맞아서 배트가 부러지며 파울이 되었다. 동강난 배트가 투수 마운드 쪽으로 날아갔고 클레멘스는 그것을 집어서 반사적으로 1루로 뛰던 피아자에게 던졌다. 양쪽 벤치의 선수들이 나와서 말려 난투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클레멘스는 나중에 피아자를 맞히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클레멘스의 승부욕이 그런 행동을 불러 온 것이라고 봤다. 클레멘스의 그런 과도한 승부욕이 그의 강속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를 약물복용으로 이끌었다고 본다. 그는 힘을 빼고 투구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의 육체의 힘이 떨어졌을 때, 순리에 맞추어 던질 줄 몰랐다. 강약을 조절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는 거의 은둔 상태로 지내고 있다. 반면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팀에서 어린 투수들을 지도하며, 간간이 TV에 해설자로 등장하며 야구계의 신사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사람이 죽고 살만한 회사 일은 없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위의 상사에게 들은 말이다. 모든 회사 일에, 24/7의 모든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중요할 때 그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밖에 보일 게 없는 사람이다. 힘을 빼자. 그래야 힘이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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