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대에 갔다. 정문 근처 처음 보는 건물이 있었다. 제주도 섭지코지의 무지하게 음식값이 비싸다는 민트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건물이었다. 서울대 미술관이란다. 2006년에 문을 열었다는데 그동안 수십 차례 서울대를 드나들었는데, 그렇게도 모르고 지나쳤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상당히 신경 써서 멋을 부리며 지은 건물인데, 근처의 건물이나 산자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울대 전체가 그런 건물로 가득 차 있으니 어쩌면 나름대로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물 내부가 아주 맘에 들었다. 뉴욕의 구겐하임을 연상시키듯 중간이 뚫린 나선형 통로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압도하는 듯한 구겐하임과 달리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관련된 책들이 비치되어 자유롭게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하의 테이블이 있는 쉼터와 같은 공간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자주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했다. 넓게 펼쳐진 강당은 연단에 서보니, 객석이 한눈에 들어와 언젠가 제대로 강연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찌는 듯한 한여름 시기와 어울리지 않게 <백색의 봄>이란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아주 좋았다. 봄은 잘 모르겠는데, ‘백색’의 아름다움과 묘한 매력이 한 곳에 모아놓으니 이상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한 작품의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대학원 학생이나 됨직한 아르바이트 직원 친구가 바로 나타나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고 한다. “왜 안 되죠?”했더니 역시 예상했던 답이 온다. “못 찍게 되어 있어요.” 그냥 규칙이다. 그럼 그 규칙은 왜 생겼을까?

 

예전에는 국내외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실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플래쉬를 터뜨려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관람에 방해를 준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후 많은 미술관들이 플래쉬만 쓰지 않으면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관성적으로 예전의 규칙을 바꾸지 않고 고수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팜플렛을 사도록 하기 위하여 작품의 촬영을 금지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근래 대학들이 돈벌이 시장에 열심히 나서고, 그에 따라 평가도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서울대 미술관에서 그렇게까지 세심한 영업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예술품을 어찌 사진기 기계로 담아갈 수 있느냐는 일종의 권위의식 같은 것도 촬영금지 규정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 직원을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나에게 한 것과 같이 사진 찍는 것을 막는 것 이외에는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할 일이 없었다. 작품에 혹시 손을 대거나 위해를 가할 사람이 없게 감시도 해야 하지만, 서울대 미술관의 위치나 거기까지 찾아올 사람들의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그럴 일은 거의 없을 터이니, 이런 사진촬영금지 규정이나마 있어야 거기서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게 한 것일까? 그러나 이것도 학생 신분을 기본으로 조교나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에 대한 기존의 관행과 태도를 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일하라고 사람을 뽑아 놓았으니 어쨌든 일거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은 했을 확률이 크다.

 

위의 얘기를 트위터에서 가볍게 언급을 했다. 그랬더니 어느 친구가 미술관은 외국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건축과 친구들이 공부를 위하여 들어갔는데도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 불만이 많았다는 얘기를 했다. 금지 규정이 아주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상 거의 모든 이가 핸드폰에 붙은 것이라도 카메라 한 대씩은 가지고 다니고, 그 중 많은 이들은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하는 이 시대에!

 

회사 빌딩 지하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의 목욕탕에는 운동복수거함이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한 박스에는 윗도리를 그 옆의 박스에 반바지와 양말을 넣으라는 안내문이 박스들 위에 붙어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휙 운동복과 양말을 한 박스에 한꺼번에 던져 넣었다가, 뒤늦게 안내문을 보고 ‘아차’하면서 안내문에 따라 제대로 상의와 하의를 구분하여 넣으려 했다. 그런데 분리수거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 와서 힘들고 대부분 시간에 쫓긴 사람들은 후다닥 운동복을 벗어 어느 쪽 수거함인지 따지지도 않고 박스에 휙 옷을 던져 놓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리고 목욕탕의 직원이 바퀴가 달린 큰 수거바구니 같은 것을 가지고 오더니 박스에 상관없이 한꺼번에 그 바구니에 털어 넣는 것을 보았다.

 

직원에게 안내문을 떼라고 권유했다. 지켜지지도 않고, 지킬 필요도 없는 규정 안내문이었다. 확실하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상의와 하의의 색깔이 달라서 세탁을 따로 하였던 것 같다. 그랬는데 이제 상의와 하의 모두 여러 가지 색상으로 나와서 함께 세탁을 하니 분리하여 수거할 필요가 없는데 아무도 예전의 규정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지키지 않고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괜히 그런 사문화된 규정으로 사람들, 특히 초기의 나같이 처음 온 사람들 움찔하게 하고 죄의식 들게 할 필요가 없다.

 

괜히 사람들 혼내는 구실이 되거나, 군기를 잡는 꼬투리가 되고 심각하게는 약점을 잡는데 그런 사문화된 규정, 특히 행동을 제약하는 금지 조항이 악용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지승호 선생의 인터뷰를 모은 책 중의 하나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68혁명기 독일의 학생운동이 한창 불붙었을 때의 구호 중의 하나인 ‘금지를 금지하라(Es ist verboten zu verbieten)’의 외침은 지금의 한국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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