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에서 발행하던 잡지 중에 제호가 몇 차례 바뀌기는 했지만 마지막으로 <브랜드 포럼>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커버스토리처럼 마케팅의 어느 한 주제나 영역을 시의성 있게 심층적, 다각적으로 다루는데 당연히 주제 잡기가 힘들었다. 주제를 잡으면 일은 반 이상 한 것만 같았다. 대략 토의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의견을 내고 어느 정도 합의가 된다 싶으면 수용하곤 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볼 때 심하다 싶게 저항을 한 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뇌과학’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시의적절하다고 했는데, 나는 비판적인 시각이 들어가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자세로 나아갔다. 결국 뇌과학을 주제로 발행하기는 했는데, 워낙 완강하게 초기에 내가 반발을 해서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 애를 먹었다. 내가 반대한 가장 심각한 이유는 당시 2008년 하반기의 소위 ‘뇌과학 열풍’에 괜히 우리까지 부화뇌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면 뇌과학의 한계까지 정확하고 명확하게 짚어주어야 하는데, 당시 업무 부하를 감안하면 뇌과학 찬양 일변도의 저자들 글로만 채워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도 뇌과학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광고 부문에서 뇌과학의 쓰임새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작았다. 우선 뇌과학으로 무엇을 창조할 수는 없다. 현재의 단계로는 여러 가지 대안들에 대한 반응의 차이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반응이란 것도 순간적인 것만을 포착할 뿐이다. 처음 광고물에 노출된 이후 사람들의 머리속에 언뜻 언뜻 떠오르면서 더욱 좋아지거나 싫어지는 감정이 배양되는 것을 예측할 방도가 없다. 물론 그것은 현재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조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재의 조사들은 광고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광고종사자들이 한계에 대해서 대부분 알고 있다. 뇌과학처럼 신봉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 뇌과학이 인간의 감정 상태를 일방적으로 규정할뿐더러, 개인을 넘어서 여러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이루어지는 집단적인 감정의 변화나 생성은 포착할 수가 없다. 장영재 박사의 <경영학 콘서트>(비지니스북스, 2010)에 노벨상을 수상한 수학의 천재들이 이론상으로는 돈을 잃을 수 없는 투자 모델을 만들어 3~4년 경이적인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공식에 빠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장의 두려움과 패닉이었다. 금융시장의 주체는 사람이다. 사고 팔기를 거듭하는 금융시장의 주체인 사람이 늘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아니 오히려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이 공식에 사람의 감성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P 350) 

2008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퀀트들이 수학으로 주택 담보부 증권이란 상품을 고안할 때 ‘인간의 탐욕’을 빼놓은 결과다. (P351) 

소비자조사의 모든 숫자는 사실 그 자체로 의미는 별로 없다. 경험과 그에 따른 해석이 들어가야만 한다. 물론 경영학 콘서트 책에 나온 숱한 수학의 천재들에 기대어 문제를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경영현안들이 많다. 그러나 광고에서 특히 창조를 하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예측하는 부분에서 그러한 과학이라는 이름을 단 조사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란 솔직히 그리 크지 않다. 극히 일부분만을 담당할 따름이다. 내가 수학이나 뇌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효용성을 지나치게 주장하다보니 만병통치약처럼 수학과 뇌과학을 들이대는 사람들과 그에 박자를 맞추어 새로운 방식이라고 무조건 그들 방법만을 써야 뭔가 앞서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은지 역시 한 방법만을 우기는 사람들이 걱정스럽고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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