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말 칸느광고제 세미나에서 발표를 한 후, 귀국길에 비행기를 파리에서 갈아타게 되었다. 오후 한나절 시간이 남아 루브르 박물관에 들렀다. 세미나 일을 함께 했던 친구들 2명과 어울려 다니는데, 우연히 가이드까지 대동한 역시 칸느광고제 참관을 했던 선배 분들을 만났다. 흡사 대학 때 도강하는 기분으로 그들 일행을 따라가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그 일행도 별로 시간이 없는지라 가이드 나름 핵심적인 그림 몇 개를 소개했다.  

우리는 회화 부문만 쫓아다녔는데, 우리가 따라 다니는 동안에는 네 가지 그림을 설명했다.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외젠느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장 그로의 <자파의 페스트 환자 수용소를 방문한 나폴레옹>이 바로 그 가이드가 뽑은 가장 핵심적인 그림들이었다.  

가장 먼저 들른 <모나리자>는 지난 ‘91년에 들러서 보았을 때와 또 다른 형태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가장 많이 북적대는 것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모나리자 그림보다 바닥에 문자 그대로 퍼질러 앉아서 카드놀이판을 벌이고 있는 어린이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다섯 살이나 될까 싶은 그들에게 루브르는 얼마나 지겹고 힘겨웠을까! 비슷한 나이 때 느슨하게 뉴욕 맨하탄의 박물관 순례를 시작했던 우리 아이들이 서울에 돌아와서 박물관을 가자니까 “뉴욕에서 그만큼 갔으면 됐잖아요. 한국에서까지, 왜 또!”라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사람들 헤치고 모나리자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아예 시도도 않고 아이들 뒤에서 포케몬 카드놀이하는 것만 구경했다.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 모나리자 얘기를 하면 루브르의 모나리자 전시장 앞바닥에서 포케몬 카드놀이를 하던 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이어서 조금 덜 붐비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결 편안하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림의 구도나 제목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의 주인공은 나폴레옹과 그의 부인인 죠세핀이다. 가까이에서 설명을 듣기 위하여 그림의 오른쪽 편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면서 그림 오른쪽 끝 부분에 있는 예식을 도와주는 복사 어린이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모두 전면으로 보이는 어린이는 지루함을 달래려 아마도 접근제한선으로 설치한 장식물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그 옆의 얼굴이 반쪽만 보이는 어린이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졸고 있다. 교황을 한 쪽으로 밀치고 죠세핀에게 관을 쒸워 줌으로써 자신의 확고한 종교권력을 앞서는 세속의 권력자 황제로서의 위치를 보여 주었다는 식의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그 예식이 얼마나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미안스럽게도 웃음이 나왔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들라크루와의 그림이 그 살벌하던 유신시대의 미술책에 실려 있었던 것이 신기하다. 물론 그림에 담긴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이 없는 상태의 그림 감상 교육이었지만 말이다. 들라크루와의 그림에서도 가슴을 드러낸 ‘여신’보다는 여신의 왼쪽에 있는 소년에게 더욱 눈이 갔다. 어릴 때부터 미술교과서나 그림도록에서 보았던 다른 프랑스 소년들과, 흡사 중국 국공내전 시절의 소홍귀(少紅鬼)를 연상시키는 그림 속의 작은 혁명열사가 구분 없이 하나로 섞여져 인식되곤 했다. 예를 들면 들라크루와 혁명소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정적(靜的)이지만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과 세잔느의 <빨간 조끼 입은 소년>과 자연스럽게 그 이미지가 이어지곤 했다. 어느 기록을 보면 그 소년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역시 손에 총을 들고 시가전에 참가하고 거기서 쓰러지는 소년 가브로슈의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격동의 프랑스 19세기의 여러 모습을 담은 ‘19세기 프랑스 역사와 함께 한 소년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마지막으로 가이드가 일행에게 소개한 그림은 나폴레옹의 중동

지역 원정 때의

















기록화라고 할 수 있는 장 그로의 작품이었다. 작가가 종군화가였고, 그래서 나폴레옹 미화(美化) 이벤트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기획된 작품이라고 작품 자체의 예술성과 역사성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환자들의 참상에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혹시 페스트가 전염될까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장교를 통하여 영웅 나폴레옹의 면모를 한껏 대조시키며 나타내고 있다. 나폴레옹에 초점을 맞춘 리포터로서의 역할을 다른 소재를 끌어들여 훌륭하게 극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주인공을 높이거나 빛나게 하고 싶을 때, 주변의 소재나 사람들을 조정함으로써 주인공을 건드리지 않고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과도하게 주인공만 부각시켜서는 괜한 반발 심리만 자극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부에서 이야기 꺼리가 나온다. 주인공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다루어지기 때문에 식상하기 쉽다.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도 주변부, 조연과 엑스트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여야 한다. 한국 영화계가 현재 정도나마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조연 전문 배우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한국 영화 성공의 결과일 수도 있다.

 

광고를 하다보면 제품이나 기업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들에 대해서만 여러 가지 자랑스러운 속성을 나열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결재라인을 따라 올라가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원래의 기획안에 첨가되다 보니 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광고에서도 어떻게 잘 팔리는 조연이나 주변부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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