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마케팅 2010년 1월호 게재원고입니다.)
-------------------------------------------------------------------------
법정 분쟁과 기업 브랜드

‘Any'의 소유권은 어디에 있나?

  '애니셀' 상표권 분쟁 마무리, 경영 정상화 나서

삼성전자가 광주지역의 유망 중소기업인 (주)애니셀(Anycell)의 상표가 자사의 휴대폰 브랜드인 애니콜(Anycall)과 유사하다며 국내에 이어 유럽에서 진행하던 상표권 소송을 최근 취하했다.

리튬전지 생산업체인 애니셀은 5일 최근 유럽의 상표권 소송 대리인이 삼성전자가 지난해 6월 유럽공동체(CTM) 상표청에 제기한 이의신청을 취하함에 따라 Anycell 상표가 등록 결정됐다는 사실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또 삼성전자는 앞으로 Anycell의 상표에 대해 어떠한 법적 분쟁이나 소송도 더 이상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애니셀측에 통보했다.

애니셀은 지난해 9월 25일 대법원에서 상표권과 관련, 삼성전자에 최종 승소한 데 이어 최근 유럽에서의 상표권 분쟁마저 철회됨에 따라 그동안 삼성전자와 겪어온 상표권 분쟁을 모두 마무리했다.이에 따라 애니셀은 감자 및 채무조정 절차를 거쳐 유상증자,생산 설비 정상화 등을 진행하는 등 경영 정상화에 나설 계획이다.

이 회사 대표 임영우 사장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소송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멈추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지만 최근 상표권 분쟁이 모두 마무리됨에 따라 애니셀의 불확실성이 완전 해소됐다"며"이달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 한 뒤 오는 3월부터 인력 및 원자재 수급을 통해 공장을 정상화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애니셀의 상표인 애니셀(Anycell)이 자사의 휴대폰 브랜드인 애니콜(Anycall)과 유사하다며 국내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한 뒤 유럽상표청에도 같은 소송을 제기해 애니셀의 반발을 샀었다. (뉴시스, 2004년 2월 5일 기사 중에서) 

한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며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브랜드 관련 소송 사례 기사이다. 이 소송은 애초 ‘애니셀’이라는 중소 전지업체의 제품브랜드와 ‘애니콜’이라는 거대 제품브랜드가 ‘Anycall'과 'Anycell'이 알파벳 하나 틀린 것 밖에 없어 혼동될 우려가 있다며, 애니콜 측에서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소송을 제기한 애니콜 담당자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었고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먼저 소송이 제기되는 순간부터 이 싸움은 ‘Any'라는 단어를 공유를 제품 브랜드의 싸움이 아닌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 ’삼성전자‘와 어쩌다가 ’애니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광주라는 지방도시의 유망 중소기업과의 비정상적인 대결로 사람들에게 비추어졌다. 재판이 여론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정 밖에서의 이미지 대결은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고 할 수 있다. 소송을 결심한 애니콜 측에서 그들의 행동 하나가 애니콜이라는 핸드폰을 넘어서 기업브랜드 삼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둘째, 영어로 쓰면 스펠 하나만 달라 비슷하게 보인다고 애니콜 측에서 주장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 소송은 ‘Any'라는 일반적인 단어에 대하여 특정기업이 배타적인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판례들은 명확하다. 특정 업종 내에서는 권리를 가질 수 있으나 업종의 범위를 아주 제한적으로 좁혀서 정의한다. 핸드폰과 리튬전지는 법리적인 해석에서는 서로 부딪힐 염려가 전혀 없는 분야들이다. 어느 한 제약업체는 ’애니셀뱅크(Anycell Bank)'라고 면역세포 보관은행을 설립하면서 ‘애니셀’을 그대로 스펠까지도 함께 쓰고 있다.  

범람하는 ‘Any~' 브랜드들 

실제로 찾아보면 ‘Any'가 들어간 브랜드는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거의 부지기수에 이를 정도로 많다. 대표적인 것은 같은 삼성그룹 내의 삼성화재에서 2002년 4월 자동차보험 전문 브랜드로 발표한 ’애니카‘이다. 이후 애니카의 서비스 부문의 서브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애니카랜드‘, 특정 부문을 담당하는 자회사로 ’애니카자동차손해사정서비스‘ 등으로 확장을 시켜나가고 있다. 여기서의 ’애니‘는 차종과 장소를 불문하고 차에 관한 모든 것을 서비스하겠다는 의미로 쓰였다.

애니셀과의 법정소송으로 ‘애니’를 정말 어떤 제품에든, 기업에든 쓸 수 있다는 물꼬가 트여서인지 애니셀과 거의 같은 업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전지 부문에서도 바로 애니를 붙인 ‘애니파워’란 제품브랜드를 만들었던 기업에 2007년에 기업 이름을 아예 ‘애니파워’로 변경했다. 유무선공유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애니게이트’도 큰 범위의 IT 분야에 속해 있다. ‘애니게이트’의 ‘애니’야 당연히 유무선을 가리지 않고 연결시켜준다는 의미이다. ‘애니파워’는 비슷한데 파워가 필요한 어떤 곳에서도 ‘애니파워’ ‘하나면 된다’는 자신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전기와 IT 분야를 넘어서 일상개인용품에서도 애니는 위세를 떨치고 있다. 코텍스(Kotex)에서 나온 ‘애니데이(Anydays)’는 생리대이다. 어떤 경우든지 쓸 수 있다는 것에 의미는 잘 맞아 떨어지지만, 생리대의 아주 기본적인 속성을 얘기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 같다. 기저귀 브랜드인 ‘애니원(ANYONE)’은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 애를 썼다. 홈페이지의 브랜드 의미 설명에 따르면, ‘Anybody + Anytime + Only One'을 합친 것이란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아주 소중한 한 사람을 위하여‘라는 뜻이란다. 부모를 말하는 듯한 앞의 ’애니바디‘와 아기를 지칭하는 뒤의 ’온리 원‘이 ’애니원‘으로 합일되지 않는 느낌이다. 어쨌든 이제 ’애니(Any)'는 어느 한 기업의 소유가 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은 확실하다.

브랜드를 하면서 특정한 ‘단어를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사랑’하면 LG가, ‘OK'하면 SK가 떠오르는 식이다. 두 기업 모두 자신들의 이미지광고를 통해 알린 슬로건에서 직접적으로 ’사랑‘과 'OK'의 두 단어를 썼다. 아주 성공적인 캠페인들이다. 이들이 만약 그 단어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했다면 캠페인 자체도 그렇게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배타적인 브랜드 소유권 주장의 역효과 

커뮤니티 포털 디시인사이드는 미국 인텔사가 디시인사이드의 상표권을 취소해달라고 특허청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고 20일 밝혔다. 디시인사이드 관계자는 "인텔은 인사이드라는 브랜드 전략을 사용하는데도 디시인사이드가 PC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대해 문제를 삼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인텔은 지난 2006년부터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을 버리고 '인텔 립 어헤드'라는 새 슬로건으로 마케팅 전략도 수정했다"면서 "브랜드 이미지 혼동을 이유로 인텔이 냈던 상표 등록의 이의 신청도 기각됐는데 5년 만에 다시 상표 취소를 요구해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그는 또 "지난 10년간 디시인사이드는 전자펜, 카메라 가방, 삼각대, 티셔츠 등 다양한 상품들을 생산, 판매해 왔다"면서 "디시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 자체가 상품인데 상표에 등록된 일부 상품에 대한 사용권이 없다며 상표 자체를 취소하라는 것은 황당한 요구"라고 덧붙였다.인텔은 지난 2002년 5월 디시인사이드가 관련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하자 '인사이드'는 인텔만의 독점적인 상표라며 특허청에 사용 중지를 요청하는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나 기각당했다.

(연합뉴스 2009년 8월 21일)

  위의 기사에 나온 것처럼 인텔은 2002년에 “지난 10년 동안 집중 선전·광고해온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표장이 이미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상표”이고, 이와 유사한 상표·도메인 이름을 디시인사이드가 무단으로 사용해 혼동을 초래하고 인텔의 신용과 고객흡입력을 실추 또는 희석해 영업상 손실을 가져오게 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하며 특허청에 이의신청을 했다가 우리나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표적으로 인텔의 주장대로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 또는 ‘마이크로~’ 역시 상표권에 걸려 사용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사실 소비자들이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들지만, 인텔 칩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고 AMD사의 칩이 들어간 제품을 쓰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인텔의 그야말로 10년 노력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져 버릴 징조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실제 결과적으로 ‘인텔 인사이드’는 2000년 초 이래 계속 그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

인텔의 경우 골치 아픈 속사정은 있으나, 선택한 비즈니스 전략 자체에 우선 문제가 있었다. 인텔은 9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 관련한 완제품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의 성공이 완제품 쪽으로 진출하는 데 오히려 덫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아웃사이드의 인텔 완제품에 대해서 인식상의 장애를 느꼈다. 완제품에서의 계속되는 실패와 ‘인사이드’ 캠페인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그 시점에 ‘인사이드’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고, 트허를 가지고 소송을 가장 많이 거는 기업으로 인텔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인지도 모르겠지만 인텔이라는 기업브랜드의 성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소니(Sony) 얘기를 하면서 소비자들이 보고 느끼는 것은 이고, 법적인 소송이나 주주총회와 같은 법인으로서 필요할 때 보이는 것이 ‘Sony Corporation'이란 기업명이라고 힘주어 강조한 적이 있다. 브랜드 로고와 어울려 ’make. believe'라는 브랜드 슬로건이 담은 의미를 전하고 싶은데, 다른 기업에서 두 단어를 어떤 용도로든지 쓰고 있다고 해서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면 그 순간에 외부인들의 눈에 보이는 주체는 '브랜드 소니‘에서 ’기업 소니주식회사‘로 이동하게 된다. 소비자들은 소송 관련하여 기업 소식을 접할 때는 브랜드가 담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보다는 기업 전체로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린다. 기업의 덩치가 클수록 이는 불리한 게임이 된다.  

대기업일수록 업무 분야를 잘게 나누다 보니까 기업브랜드라는 큰 우산으로 영향이 미치는 것을 잘 보지 못하는 종사원들이 많다. 자신의 업무 영역이라는 동굴에 갇혀 일을 벌이기가 쉽다. 당연히 그런 분자와 같은 임직원들의 노력이 모여서 기업의 발전을 이루겠지만, 그것이 배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기업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면밀히 검토하여 결정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기업은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제품브랜드 차원에서건 기업브랜드 차원에서건 일반적인 단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개방’과 ‘공유’라는 웹 2.0 시대의 키워드가 기업브랜드에서도, 특히 대기업일수록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 꼭 실천해야만 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