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였습니다.

볼 일이 있어 잠깐 외출했는데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저희 회사 빌딩(한경 빌딩) 로비에 있는 미니책방에서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를 산 분이 저자 사인을 받고자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들어왔지요.

누가 제 책을 산다는 것보다 더 반갑고 고마운 일은 없으니까요.

 

책에는 '첫출근하는 딸에게 아빠가'라는 쪽지와 함께

딸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 건물에 입주해 있는 회사의 어느 분이 사신 다음

기왕이면 저자의 사인을 받아주겠다며 놓고 가셨다는 얘기였지요.

 

평소 하던 대로 사인을 했던 저는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사무실로 올라와 새 책을 들고 다시 내려갔습니다.

뭐라고 쓰는 게 가장 좋을까 궁리하는 동안 

제 가슴은 뭉클하고 콧등은 시큰해졌습니다.

 

결코 간단하지 않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책을 사주는 아빠의 사려깊은 마음이 저를 울린 것이지요. 

그런 아빠를 둔 딸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구요.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한, 공주처럼 키운 딸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를 사주는 아빠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시대에 취직한 딸이 얼마나 대견스러울지,

그러면서 또 얼마나 걱정스러울지....

잘해낼까, 힘들진 않을까, 뜻같지 않은 직장생활에 놀라면 어쩌나...

실제 그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인 앞에 뭐라고 쓰면 좋을까,

궁리하고 또 궁리했습니다.

 

'열심히, 씩씩하게!' 라고 쓸까,

"꿈꾸고, 실천하고, 포기하지 마세요' 라고 쓸까.

'세상은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라고 쓸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냥 받는 이의 이름과 날짜를 쓰고 사인만 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아빠가 쓰시도록 여백을 두기로 한 것이지요.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난다지요.

저는

'첫출근하는 딸에게 아빠가'라는 쪽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공주를...'의 내용은 실로 아픈 것들입니다.

저 스스로 실천하기는커녕 오랫동안 거부하고 외면해온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에 내놓은 건,

현실이란 결코 장미빛으로 이뤄져 있지 않고, 따라서 그걸 헤쳐가려면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그 속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공주로 키운 딸에게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를 사주는

아빠의 마음도 그런 것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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