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사보 2009년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문 중의 AXE와 Ted맥주 광고 관련해서는 이 칼럼 7월초에 올린 <재미있는 광고> 시리즈 2편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재미있는 광고들도 계속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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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창조성에 불을 지를까?




        올해 칸느광고제의 슬로건은 “IGNITE your CREATIVITY", 번역을 하자면 ”창조성에 불을 질러라“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이런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금년 칸느광고제 출품작들의 창조성 측면에서의 평가는 대체로 박하다.



        10년 이상 칸느광고제를 참관하며 취재해 왔다는 필리핀 출신의 기자는 참관자 수에서는 비록 작년 대비 40% 이상 감소했으나, 그래도 칸느광고제 역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참관인 규모라며 올해 칸느광고제가 작년보다 훨씬 여유가 있고 진행이 매끄럽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창조성 부문에서는 역대 최악의 수준이라고 혹평을 가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출품작의 수부터 확 줄었다. 특히 인쇄와 필름 부문과 같이 전통광고의 간판격인 부문에서는 20~30% 이상 감소하였다. 필름 부문의 심사위원장도 수상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출품작의 감소와 전반적인 작품 수준을 묻는 질문에 ‘쇼트리스트가 줄어든 것은 그만큼 칸느의 권위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불경기에서 광고주의 예산도 삭감되고 해서 창의성을 발휘할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는 식으로 강변했지만 어쩔 수 없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당혹스러운 칸느 2009 필름 그랑프리





        칸느광고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필름 부문의 그랑프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나 시상식장에서 필립스의 그랑프리 작품이 상영될 때, 박수와 환호를 보낼 준비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정황들이 더욱 낯선 것 같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제품 자체가 편안하지 못하다. 작년의 초콜렛이나 재작년의 화장품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항상 함께 하는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구현시켜 사용하고 있지도 못하고, 그러니 당연히 제어하지도 못하는 디지털TV의 광고니 맘이 그리 편안하지 못하다. 수동적인 시청자에서 원하는 정보를 더욱 파고 들어가고 바로 TV를 통하여 유포도 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시청자로의 변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영화 속의 영화’라는 필립스 측의 얘기처럼 보여주는 광고의 배경 상황과 소재가 또한 아주 서구적이다. 서커스단의 어릿광대인 피에로 복장을 한 강도들이 인질을 잡고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카메라가 롱테이크(Long-take) 또는 현장탐사보도를 하듯이 360도 훑고 가는 것을 쫓아가는 식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하는 가면극, 탈춤, 광대놀이는 거의 모든 민족에게 다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말뚝이, 각시탈하는 식의 캐릭터들이 있는데, 피에로만큼 대중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피에로처럼 복합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피에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자세히 보면 슬픈 표정을 지니고 있고, 어린이들의 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서양 어린이들이 피에로를 무서워한다. 나의 아들은 어릴 때 맥도날드에서 피에로 로날드(Ronald)를 보고 놀라서 그 날 밤에 로날드에게 쫓기는 꿈을 꾼 후 지금까지도 피에로라면 질겁한다.


        피에로는 그런 이중적인 면모와 인식 때문에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번 필립스 광고처럼 강도단으로 등장한 것도 가까이는 작년 개봉한 <다크 나이트(Dark Knight)>부터 1990년에 나온 빌 머레이(Bill Murray) 주연의 <퀵 체인지(Quick Change)>처럼 많다. 아무리 그렇게 영화에 많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총을 휘두르는 피에로는 지극히 서구적인 이미지 심볼 중의 하나로 비서구인들에게는 어색하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실제 광고에서 그런 섬뜩함과 잔인함이 아주 잘 묘사되었다. 필름 심사위원장인 데이비드 루바(David Lubars)의 말처럼 완성도가 높은(very well-executed)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어떤 제품이든지 제품이야 주어진 것이고, 소재도 그네들이 먼저 서구시장을 목표로 삼았을 바에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나는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지나치게 완성도에 신경을 쓴 데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완성도를 전통 TV 광고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유지하면서 그 필름을 보는 사람은 기대감이 고조되다가 한계효용체감선을 지나게 되고, 그와 함께 긴장감도 역시 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반전(反轉) 효과를 노린 장치가 있었다면 아주 당혹스럽지는 않았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필립스 광고에서는 그 장치가 없었다. 반전이야말로 광고의 창조성이란 꽃 중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그랑프리 수상작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약 속에서 피어나는 창조성




        지난 1999년 미국 주재원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아, 할리데이비슨의 인쇄 광고를 보고 흥분하여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제일기획 선후배분들께 약간의 개인적인 평을 부친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페이지짜리 인쇄광고에서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고 얘기를 했다. 왜 굳이 인쇄광고에서 더욱 강하게 장인다운 손길이 느껴지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주 한정된 공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답을 내서 얘기했다. 전통적인 한 페이지 인쇄광고는 최대한의 압축과 절제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공간이다. ‘줄여서 키우는(Addition by Subtraction)'이라는 모순어법(Oxymoron)이 한 페이지의 인쇄광고에서처럼 잘 통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흔히 크리에이티브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것을 찾기 위하여 크리에이티브는 실제로는 버리고 줄여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고, 어떤 아이디어도 버리려면 안타깝겠지만 버려야 한다.


        가끔 강연 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대부분의 광고주 측면에서는 정말 절박한 질문이다. 그렇지만 대답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그래도 ‘아주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라는 전제를 깔고 ‘말이 적은 광고가 대체로 좋은 광고이고, 그런 광고를 하는 브랜드들이 대체로 강력한 브랜드이다’라고 대답을 한다. 말이 많아진, 카피가 길어진 광고들의 그 연유를 보면 광고주와 대행사 모두 창조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자기방어에 치중한 경우가 많다. 혹시 빠졌다가 혼날만한 것들을 그냥 다 광고 안에 쑤셔 넣듯이 한 것이다.


         TV광고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 보통의 경우 30초 이내에 극적인 반전이나 임팩트가 있는 스토리를 채워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칸느 필름 부문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전통 TV광고를 위하여 만들어진 필름이 아닌, 웹사이트 용으로 만든 2~3분 짜리 필름들이 계속 3년째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시간은 더 이상 제약조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실제 이번 필립스 작품은 런닝타임으로  3분이 넘어 앞선 2년 동안의 그랑프리 작품들보다도 더욱 길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인쇄광고는 공간, TV광고는 시간의 제약을 넘는 데서 창조성을 발휘한다고까지 얘기할 수 있다. 그런 제약이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현재에서 과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창조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중국학자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제약이 많던 시기에 중국인들의 창조성이 가장 크게 구현되었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면 중국 철학의 근간을 만든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제후국들끼리 나누어져 전쟁이 한창이던 춘추전국시대에 출현했다. 20세기 들어서 항일전쟁 시기, 그 넓은 중국의 많은 부분을 내어주고, 충칭(重慶)을 중심으로 한 골짜기로 몰려서 복작거리면서 근대 중국인문학의 주옥같은 성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로 치면 한국전 당시의 부산 피난지에서 인문학이 활짝 꽃핀 셈이었다.


        피난살이에 예전 정상적인 생활에서처럼 자료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있는 자료를 곱씹고 곱씹어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게 만들어야 했다. 종이를 비롯한 물자들이 달려서 함부로 생각을 종이 위에 옮겨서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충분히 확신이 들고 앞뒤의 맥락이 완성이 된 연후에야 문자로 기록을 했다. 이런 제약들이 오히려 약처럼 작용하며 근대 중국의 가장 찬란한 창조성의 산물들을 낳은 것이다.




새로운 매체를 개발하고 통합하는 창조성




        역설적으로 창조성을 자극하여 키우던 제약조건들이 사라져 가면서, 창조성은 다른 부문에서 그 존재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활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광고 공간과 시간을 찾고 만드는 것에 대한 창조성이 필요했다. 곧 창조성의 그 의미 자체가 조금 변화되었다. 이번 칸느의 슬로건에서의 창조성도 정말로 그렇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를 포함한 근래 몇 년간의 심사 결과 등만을 놓고 본다면 이 새롭고 넓은 의미에서의 창조성을 얘기한 것 같다.


        딱 20년 전에 한 친구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면서 “이 세상은 공기와 물,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졌다”고 얘기한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20년 전만 해도 광고 매체, 곧 공간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도 순진한 시절이었다. DMB, 인터넷이나 모바일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인하여 등장한 광고 매체는 별개로 치더라도, 굳이 저명한 문화평론가인 모리스 버만(Maurice Burman)가 개탄한 것처럼 우리 주위에 상업적이지 않은, 곧 광고 메시지가 들어서지 않은 공간을 찾기는 힘들다.


        칸느에서도 출품작들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부문이 바로 옥외를 중심으로 한 신규 매체 부문이다. 그러면서 2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상 분야들이 나타나 새로운 광고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Ambient', 'Titanium'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사실 그런 용어들은 정의도 모호하고, 그들 간의 구분도 불명확하다. 실제 집행하는 부분에서는 여러 부문에서의 통합적인 집행이 당연시되면서 어느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그것을 옥외광고의 아이디어라고 해야 할지, TV광고의 아이디어라고 해야 할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칸느광고제로 보면 어느 한 캠페인에 많은 상이 쏠려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사실 올해 PR을 비롯해 사이버 등에서 초반에 호주 퀸즈랜드의 “The Best Job in the World(세계 최고의 일자리)"가 무서운 기세로 대상을 휩쓸면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는가 싶었다. 후반기에 발표된 부문들에서 다행스럽게(?) 퀸즈랜드의 캠페인이 상을 받지 못하면서 우려에 그치고 말았지만, 한편에서는 그런 싹쓸이 현상을 막으려고 일부러 배제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가벼운 음모론까지 제기되었다.


        칸느광고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아마 현재 11개 부문으로 되어 있는 칸느광고제의 시상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혹은 근본적으로 심사 규정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매체 중심으로 나누어진 현재의 구조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다. 앞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전통적인 창조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현재 칸느광고제에서의 심사는 실행에 초점을 맞추어, 매체를 통한 차별화와 효율적인 집행과 통합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창조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리고 매체 자체가 차별화의 요소로 쓰이고 있다.


        이번 칸느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비전통적인 방법을 쓴 두 가지 광고가 있었다. 하나는 호주의 테드(Ted)라는 맥주가 신제품을 내면서 벌인 광고였다. 대용량의 696ml짜리 맥주를 내놓았는데, 이미 그만한 크기의 맥주들은 나와 있고, 딱히 힘주어 얘기할만한 장점도 없다. 이들은 새로운 매체를 개발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삼았는데, 바로 포장지였다. 포장지라기보다는 ‘맥주 가리개’라는 게 더욱 적확한 표현이기는 하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맥주병을 생으로 들고 다닐 수 없어, 종이로 싸서 가지고 다녀야 하는 호주에서, 이들은 그 포장지를 광고매체로 활용했다.


        또 하나는 덴마크에서 열린 유럽 최대의 여성 마라톤대회를 활용한 데오더란트 제품인 액스(Axe)이다. 출발 총소리와 함께 어느 남성이 관객석에서 뛰어 나와 출발선 앞에서 연막탄 터뜨리듯이 액스를 잔뜩 뿌리고 바로 앞장서 달려 나간다. 출발 신호가 울렸으니 당연히 참가한 여성들이 달려 나가는데, 흡사 액스 광고에서처럼 그것을 뿌린 남성을 쫓아서 달리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뿌리기만 하면 여자들이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꼬이게 된다는 액스의 일관된 브랜드 성격을 이벤트에 잘 활용했다.


        2000년 3월 새롭게 삼성전자 해외 마케팅 부문을 맡게 된 인사가 뉴저지에 있던 삼성빌딩에 처음으로 들렀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전략에 대한 보고를 들은 그가 매체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냐고 물으면서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잡지를 펼쳐 보였다. “Star turn”이라는 제목으로 광고대행사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으면서, TV프로그램이나 신문 지면을 사는데 역할이 고정되어 있던 매체 담당자들이 꽁지머리를 한 제작부서 사람들을 제치고 새롭게 광고대행사의 간판스타로 부각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당시는 직접적으로 비용, 곧 ROI와 관련이 되고, 그를 위하여 소비자 연구 등의 중심도 매체 쪽에서 담당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매체 자체가 차별화의 핵심이자 창조성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대두된 것이다. 여기에서의 창조성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새로운 매체, 즉 접점을 개발하는 측면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기존의 접점이나 새롭게 개발한 다양한 접점들을 창조적으로 통합하는 방향에서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창조성이란?

        

        칸느광고제 중에 열린 제일기획 주최의 세미나에서 모바일 마케팅을 예로 들어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마케팅 도구들을 개발하는 데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우선 사람들이 왜, 어떻게 모바일 기기와 관계를 맺고 있고 그런 관계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과 욕구는 무엇인지 소위 ‘모바일 코드’라고 명명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칸느의 슬로건과 연결하여 보면, 불을 붙여야 하는 창조성이 너무 새로운 방식의 개발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대하여 나름대로 작지만 경고의 메시지를 발한 셈도 된다.


       테드696 맥주가 포장지를 매체로 삼아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접점 개발의 훌륭한 사례이다. 액스 데오더란트는 여성마라톤대회를 새로운 접점뿐만 아니라 기존의 브랜드와도 잘 연결시켜 통합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액스는 ‘여성들을 미치게 한다’는 근본적인 창조성이 발휘된 브랜드 성격에서부터, 수많은 여성들이 액스를 뿌린 남성을 쫓아가는 장면을 만들어냈던 전통적인 광고에서의 창조성을 새로운 접점 부문과 접목하는 창조성으로까지 연결시켰다. 요는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제대로 창조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내년의 칸느가 이 다양한 창조성의 면면들이 빛을 발하는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 중심부에 우리의 창조성이 구현된 작품이 자리를 잡도록 또한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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