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품, 위대한 브랜드의 조건






“모든 위대한 작품들을 보면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기술적으로 뛰어나고요, 독특한 창의성이 발견됩니다. 무엇보다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죠.”






        칸느광고제에 참석했다가 귀국길에 10여년만에 들른 루부르박물관에서 우연히 미술사학을 전공했다는 한국인 가이드가 안내하는 집단과 마주쳤다. 슬그머니 그 그룹에 끼어들어 회화 부문의 설명을 들으면서 따라다녔는데, 위의 말은 그 안내인이 서양 회화를 정리하면서 한 것이다.






        첫 번째 기술적으로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기본을 갖추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의 기술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현혹시키는 임기응변식의 잔기술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기초를 일컫는다.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는 ‘생이지지(生而知之)’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나 한정되는 성어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이지지로 태어난 자들이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어떤 나락으로 빠지는 지 숱한 사례들을 보아 왔다.


        반대로 바로 눈앞의 승부에만 매달려서 잔기술에만 집중하였다가 결국 장래를 그르치는 사례도 어린이 축구나 야구에서 숱하게 보아 왔다. 우리에게는 자유중국이라고 불리었던 대만은 리틀야구를 주름잡았다. 그런데 그 리틀야구의 영웅들이 고등학교 때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맥을 추지 못했다. 신체적인 조건 등도 있지만, 잔기술에만 매달리다 보니 더 높은 수준의 야구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광고계 친구들 중에 평소에 교양서적 한 권 읽지 않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봤다. 물론 일부러 고등학교 때 괜히 불량기 든 것처럼 행동하듯이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친구들도 꽤 보았다. 소비자 연구를 한다면서 조사회사에서 온 표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숱하다. 그러면서 말장난, 그림장난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기본부터 잡고 볼 일이다.






        두 번째 창의성이야 예술가에게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가이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예로 들었다. 모나리자 이전의 초상화들이 모두 근엄하게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데 반해서, 모나리자는 약간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신들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를 그리는 새로운 시대를 모나리자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그렇게 위대한 예술품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70년대 말인가 모나리자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에서 소동처럼 벌인 일이 하나 생각났다. 일본에서 모나리자 초상화의 얼굴 모양을 분석하여 모나리자의 목소리를 재현했다면서 떠들썩했단다. 모나리자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유료전화번호를 따서, 사람들이 전화를 하면 일본말로 “나는 모나리자에요.....”어쩌고 하는 녹음메시지가 나왔단다. 상당한 창의력을 일본인들이 발휘했다 하겠다.


        광고계에서 표절시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별로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지만, ‘90년대 중반 연구소에서 브랜드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공식을 뚝딱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어떤 교수가 논문으로 발표한 것과 너무나 비슷했다. 너무 쉽게 누군가가 그런 논문이 있다고 해서 살펴보고 처음에는 억울했다. 그러나 결국 위에서 얘기한 기초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여 자초한 것이었다. 기초가 부족하면 결코 창의적이기도 힘들다.




        시대를 초월한 공감이 가는 가치에 대한 설명을 드라크로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 앞에서 했다. 바로 그 그림에 등장하는 가슴을 드러낸 자유를 상징하는 여인으로부터, 넘어뜨려야 할 압제와 동일시되는 죽어 쓰러진 군인들, 민중과 신사들의 협력 등의 모습까지 자유를 갈구하며 그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았기 때문에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 곧 IOC에서 마케팅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마이클 페인이란 친구는 우리말로 <올림픽 인사이드>라고 번역되었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과거 브랜드는 소유권의 의미였다. 그 후 브랜드는 품질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어떤 것은 그 이상을 의미했다. 올림픽 브랜드는 용맹과 정정당당의 의미이다. 동포애, 우정, 평화 그리고 인류 보편적 이해이기도 하다."






자꾸 브랜드 정의를 제품의 성능을 정의하는 것과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점유율이나 역사에서 월등한 브랜드까지도 같은 등급에서 아웅댄다. 압도적인 리더는 시장과 소비자, 인류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그리고 도전자는 자신의 차별점으로라도 그런 인류의 공통적 이해와 자신을 연결시키고 표방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며칠 전 어느 강의 자리에서 이 루브르박물관에서 들은 얘기를 해주면서,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 여쭈었다. “기본을 얼마나 잘 갖추고 계신지요? 나만의 독특한 창의성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눈앞의 이익을 떠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얼마나 알아주고 있나요?”






사실 내게 던진 질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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