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와 텐트 속에서 하룻밤을 같이 자며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줄 것을 간청하는 바람에 1890년 드디어 국립공원으로 태동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미국의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을 만든 존 무이어라는 사람의 얘기로 어느 재미교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내용이다. 그런데 1890년에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이 된 것은 맞지만, 당시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당시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그는 노스다코다 주에 큰 목장과 수렵지를 가지고 역동적으로 등산과 수렵을 즐기는 것으로 또한 유명했다.




실제로 루즈벨트는 동부의 귀족적인 대부호 집안 출신이나 노스다코다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서부 개척자, 자연보호자, 카우보이와 같은 이미지를 내세우며 정치권에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동부의 세련됨과 서부의 거칠고 강인한 이미지가 한 몸에 융화되면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흡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 당선 후 그는 전국적으로 ‘국립공원(National Park)’를 정비하며 미국 역대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서의 활력 있는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국립공원을 적절히 이용하였다. 많은 미국인들이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국립공원 제도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 어린이들의 대표적인 인형 장난감 중의 하나인 ‘테디 베어’도 그가 미주리 주에서 사냥을 하던 일화에서 나와, 친근함을 더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즈벨트는 결과적인 가치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강대국으로서 세계지도에 미국을 올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통령으로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죠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과 함께 러쉬모어산에 거대 석상이 새겨진 네 명의 역대 대통령 중의 하나로 아마도 미디어를 제대로 이용했고 대중적인 인기 스타와 같은 브랜드를 구축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중적인 인기에서 자연과 결부된 특히 국립공원이라는 도처에 지정된 특수지역들이 큰 역할을 발휘했다.




JFK공항에서 맨하탄 쪽으로 퀸즈를 거쳐서 달리다 보면 이스트허드슨 강을 만나기 직전에 주로 국내선들이 많이 이용하는 라과디아 공항이 보인다. 라과디아 공항은 1934년에서 1945년까지 세 번에 걸쳐 뉴욕 시장을 역임한 Fiorello La Guardia를 기리기 위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150cm 대의 단신으로 '작은 꽃‘이란 뜻의 그의 이름에 걸맞은 별명으로 자주 불려지며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가 뉴욕에서 판사로 재직할 때의 다음과 같은 훈훈한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는 시장으로 재직하기 직전 그곳의 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1930년 어느 날.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절도혐의로 기소된 노인을 재판할 때 일이었습니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왜 훔쳤습니까?" "예,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난 뒤에 곧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방청석에서는 판사가 노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관대하게 선처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단호한 판결에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논고를 계속했습니다.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 모두에게 각각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았습니다.

"경관, 당장 모두에게 벌금을 거두시오."

판사는 모자를 모든 방청객들에게 돌리게 했습니다. 아무도 판사의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두어진 돈이 모두 57달러 50센트였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습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습니다.




라과디아가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역점을 둔 사업 중의 하나가 할렘의 대규모 공공 아파트단지 조성이었다. 할렘은 당시 주로 남부에서 밀려든 흑인들로 극심한 주택난을 겪고 있었다. 1928년 록펠러의 후원에 힘입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공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35년에 ‘할렘리버하우스(Harlem River Houses)'가 세워졌다. 이후 할렘은 약간의 부침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개발, 재건축이 이어지고 있다. 할렘을 상징하는 모습 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이다.




실제 라과디아 시장 시절에 지어진 건물들은 그리 많지가 않고, 할렘리버하우스도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지어진 것인데, 사람들은 그런 대규모 단지들을 라과디아의 작품으로 생각한다. 이는 우의 판결 사례에서도 보듯 사회적 약가들을 위하여 살아온 그의 삶과 이스트 할렘 출신이라는 그의 배경, 땅달막한 체구로 할렘을 누비며 연설하고 다녔던 그의 행동 궤적에서 그런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국립공원과 라과디아 시장의 대규모 공공주택단지의 연계가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제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의명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루즈벨트의 자연보호, 스포츠맨쉽, 미국인을 위한 레저가 배경이 되고 있다. 그리고  라과디아는 사회적 약자 보호, 인간 기본권 보장과 바로 연결된다. 둘째로는 가시적, 정기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루즈벨트는 생을 마칠 때까지 사냥, 등산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관련된 언급을 즐겨 했고, 라과디아는 할렘의 흑인, 이태리 이민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요컨대 명분과 실상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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