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친구들과 술 마시는 법




        소주잔으로 1/3잔 정도의 소주에 맥주컵 반 정도의 맥주를 섞어 마시는 약한 폭탄주를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분이 계셨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90년대 후반부터 그 ‘쏘폭’을 즐겨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맥주와 양주를 섞는 일반적인 폭탄주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좋았다. 예전 주재원 시절에 어쩌다보면 며칠 연속으로 술자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첫잔으로 쏘폭을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제일기획 바깥에서는 쏘폭과 마주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골프장 근처에서는 쏘폭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골프를 전혀 치지 않으니 확인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관찰 결과이기는 하지만 쏘폭이 기존의 폭탄주를 대체한 것은 물론이고, 원래 폭탄주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제조되어 상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굳이 시기를 따지면 4~5년전부터 쏘폭을 직접 제조하고 권하는 광고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울타리를 넘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쏘폭은 예전 폭탄주보다는 덜 위협적이고 부드러워 폭넓은 층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술꾼으로 자처하는 친구들 빼놓고는 예전의 폭탄주는 권한 적이 거의 없는데, 쏘폭은 큰 부담 없이 권하곤 했다. 마신 친구들도 제조할 때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어우러진 눈빛으로 보다가, 일단 맛을 본 연후에는 대체로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작년 제일기획 구주법인 영국의 BMB라는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로 유명한 광고회사의 지분을 49% 인수했다. 그 BMB 친구들이 서울에 와서 쏘폭을 몇 순배 돌리고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는지, 아니면 그것을 한국인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 런던으로 가서 자신들끼리 한국식당을 찾아 가서 쏘폭을 돌리면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런던의 한국식당은 비싸기로 유명한데, 글쎄 투자 대비 제대로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면 이런저런 인연이나 일로 외국 친구들과 다양하고 심심치 않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술자리들이 있다.




        1997년 2개월 안에 삼성의 브랜드 작업을 한다고 Peter Kim과 함께 했던 “그 미쳐서 보낸 여름(That crazy summer)"의 시작은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여 녹초가 된 첫날 저녁의 카미카제 칵테일이었다. 렉싱턴애브뉴(Lexington Avenue)와 63가(?)가 만나는 지점의 바에서 처음 피터와 내가 둘이 카미카제를 마시기 시작했고, 계속 다른 친구들이 들러서 합류하여 나중에는 카미카제 열 몇 잔이 한꺼번에 서빙되기도 했다.




        아무리 미친 듯이 일했던 그 여름이었지만 가끔 밤늦게 함께 술을 하기도 했고, 그 여름 이후에도 몇 차례 술자리를 하는 기회가 있었지만 카미카제를 마신 기억은 없다. 첫날의 카미카제는 우리가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강렬한 신맛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자, 카미카제처럼 프로젝트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몸을 던지자는 의미와 함께 삼성 브랜드를 전 세계에 떨치게 해줄 ‘신이 내려주는 바람’인 문자 그대로의 ‘카미카제-신풍(神風)’을 간구하면서 그리 열 순배를 넘게 돌린 것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Cape Town)의 와인 산지로서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발을 땅에 딛고, 햇빛을 맞으며, 바다와 포도농장을 함께 보니 와인을 즐겨 하지는 않지만 그 곳의 와인을 다양하게 시도하고픈 욕망이 자연스레 일어났다. 그들의 술 마시는 태가 그런 나의 욕망과 딱 맞아 떨어졌다. 점심이건 저녁이건 가리지 않고 와인을 반주로 하는데, 거의 제각기 한 병씩 시키다시피 했다. 반주로서는 아주 과하고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와중에 한 친구는 자신은 위스키파라면서 위스키를 주문해 마신다.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늘어선 늘씬하게 빠진 형태의 다양한 와인 병들 가운데의 위스키 병은 굵은 하체를 뽐내며 당당하고 안정되게 서 있는, 세월과 바다 햇빛에 그을린 노련한 선원을 연상시킨다.




        일본 광고회사의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때는 처음에는 옛날식 곱창집에 데리고 갔다.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지는 고급 고기집과 같은 분위기의 곱창집이 아니라, 드럼통 같은 화덕에 구워 먹는 그런 집이다. 내가 보기에 20세기 낭만형과 지식인형 술꾼의 대표격인 남재희 선생은 드럼통이 아니라 술집에서는 ‘도라무통’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역시 도라무통 위에서 소금구이 하는 집에 갔다. 두 차례 모두 일본 친구들이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광고를 만들자’며 일본인 답지 않은 호기를 부리고, 함께 의기투합하던 자리였다.




        작년 말 체코 최대의 가전회사의 대표이사가 잠깐 한국에 들렀었다. 체코에 브랜드 회사를 낸 친구의 가장 중요한 고객사인데, 중국에 출장을 온다고 하니까 귀국길에 한국에 들르라고 권유를 해서 처음 한국에 왔다고 했다. 신라호텔에 묶는다고 해서 호텔 바로 앞의 족발집으로 인도했다. 그는 원래 이태리 사람이었다. 전문경영인으로 스카우트가 된 것이었다. 이태리인답게 먹는데 거침이 없었다. 족발을 아주 잘 발라 먹었고, 2차는 굳이 자신이 낸다고 해서 신라호텔 로비 라운지로 끌고 갔다. 와인과 같은 약한 술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하면서 몰트위스키 샘플러를 시켜 주었다. 샘플러 값이 족발값의 두 배는 족히 되었다.




        술자리 호스트를 하는 기회는 될 수 있는 한 공평하게 가져가야 한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배려하겠다는 마음으로 전혀 호스트를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접대만 하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술자리 자체가 호스트에게는 자신의 브랜드를 보여 주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술자리에서의 대화와 행동은 호스트나 게스트의 여부를 떠나서 모두에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펼치는 무대가 된다. 일방적인 술자리는 생대방의 브랜드를 이해하는 자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식이다.




        한국인들끼리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쌓고 다른 식으로는 풀지 못하는 문제들을 풀어내는데, 외국 친구들과도 마찬가지이다. 비즈니스의 영역으로만 한정되었던 관계가 개인 퍼스널(Personal)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자리가 술자리이다. 너무 꼿꼿하고 술자리에서까지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기도 하고 능력도 인정받지만 술자리에서는 별로 환영 받지 못한다. 외국 애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비즈니스적으로 관리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시간 때우는 효과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을 약간 비워주거나 살짝 무너뜨리며 빈틈을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외국인들과의 술자리가 한국인들과 갖는 술자리와 특별히 다를 필요가 없다. 단지 쓰이는 언어가 다를 뿐인데, 막 술을 마시고 잔을 마주치다 보면 그냥 말은 통하게 된다. 어쨌든 못 알아듣고 할 말이 없어도 술이라도 권하면 그것으로 마음은 전달이 된다. 술을 마실수록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몇몇 한국인들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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