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절벽 끝에서 완성되지만/ 모든 정열에는 눈이 없어서/ 사람 뒤의 바다를 보지 못하고/ 출렁이는 푸른 숨결 속에 제 육신을 눕힌다.’ <이세룡 작 ‘페드라’>

 

  '서양문학사는 혼외정사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얘기에 금지된 사랑이 자리하기 때문이겠지요. 영상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영화 속 금지된 사랑의 대상은 따로 없습니다.

 

  유부녀 유부남의 외간 남녀와의 사랑은 물론, 계모가 의붓아들을 사랑하기도 하고(페드라), 아버지가 아들의 연인에게 정신을 잃기도 하지요(데미지). 남자의 외도를 다룬 게 대부분이지만 ‘언페이스풀(Unfaithful)’처럼 우연히 만난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유부녀의 일탈을 다룬 것도 있습니다. 

 

  21세기초 한국의 TV드라마 역시 금지된 사랑으로 넘칩니다. 친구의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와 남편을 빼앗기고 방황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유부남(위기의 남자), 중년남자의 젊은 여자에 대한 집착(푸른 안개), 형부와 처제의 사랑(눈사람) 등 다루는 소재도 갖가지입니다.

 

  남아있는 건 유부녀의 외도 정도지요. 사회 통념상 금기시돼 있어서인지 떠도는 온갖 소문(수많은 아줌마들에게 애인이 있다는)에도 불구하고 주부의 외도 문제는 TV드라마라는 수면 위로 쉽사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결혼 8년차 주부들의 금지된 사랑을 다뤘던 ‘앞집 여자’의 경우도 ‘마지막 선’은 넘지 않고 결국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공자님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껄끄러운 주제지만 분명 사회적으로 존재하고 따라서 충분히 주목을 끌만한 제재라고 생각했을까요. ‘앞집 여자’가 일으켰던 크나 큰 반향에 고무된 것일까요. 공중파 방송이 집과 살림밖에 모르던 전업주부의 일탈에 다시 TV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얼마 전 끝난 MBC 수목드라마 ‘12월의 열대야’가 그것이지요. 그래도 조심스럽고 눈치보이는 건지 우연히 부딪치는 순간 열정적 사랑에 빠져드는 서양영화와 달리 국내 드라마 속 아줌마의 일탈엔 이유가 많습니다. 주인공 오영심(엄정화 분)의 외로운 처지가 그것이지요.

 

 영심은 부잣집 맏며느리에 의사의 아내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하지만 번듯한 외관과 달리 실상은 엉망입니다. 시골의 가난한 집 출신으로 결혼은 임신하는 바람에 억지로 이뤄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남편은 친구라는 이름의 옛애인과 수시로 만나면서 집엔 잠이나 자러 들어오고, 시어머니는 수준이 안맞는다며 걸핏하면 야단치고, 손아래 시누이는 대놓고 무시하고, 심지어  어린 아들까지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라며 닦아세웁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지만 서른도 안된 젊은 아낙네는 괜찮은 듯 씩씩하게 지내지만 아무도 거들떠 봐주지 않는 자신이 서럽지요. 이런 그에게 우연히 만난 같은 고향 태생의 젊은 남자가 다정하고 포근하게 다가섭니다. 영심은 남편과 달리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박정우(김남진 분)에게 그대로 빠져들구요. 시댁식구와 남편의 옛애인에게까지 무시당하던 영심은 정우의 의례적 친절에도 몸살을 앓지만 정우는 실은 손아래 동서의 옛애인입니다.

 

  이래저래 금지된 사랑의 대상인 셈이지요.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본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법. 다가서면 안되는 줄 뻔히 알고, 동서가 버린 남자인 걸 알아도 이미 싹터버린 사랑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합니다.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떠오르는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안되지 안되지”하면서 남자의 근처에서 어른거립니다. 급기야 죽음을 앞둔 남자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떠나지요. 

 

영심이 딴 남자에게 정신을 잃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밤중에 아프다고 전화한 옛애인의 집으로 달려가 앞치마를 두르고 스프를 끓이는 남편, 자신의 말에 두 마디 이상 대꾸하지 않는 남편과 달리 이건 이렇고 저런 저렇다고 가르쳐주고, 화랑과 카페에 데려가고, 운전면허 시험공부를 시켜주고, 배 고프지 않으냐며 빵을 내미는 남자에게 빠져든 것이지요.

 

 한밤중에 여자 전화를 받고 나간 남편을 찾아 그 여자의 집에 죽을 가져갔던 영심은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묻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소울메이트’ 만들어도 돼? 소울메이트 만들어서 당신과 못해본 일들, 영화보고 차 마시고 그런 일들 해도 돼?” 하고.

 

  그리고 자신에게 갑자기 키스를 퍼붓고, “영화보다 당신 얼굴 보는 게 더 좋다”라고 말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행복해 하는 겁니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시어머니아 시누이의 잔소리나 비아냥에 아랑 곳없이 남자를 만나러 나가고, 자다가 일어나 생일축하카드를 쓰지요.

 

뿐이랴. “형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이용하는 거에요. 나한테 복수하려고”라는 동서의 말에 “미안하지만 그런 말 하지마. 그사람이 아니고 내가 좋아했어. 내가 좋아해서 찾아다닌 거야”라며 울먹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남자가 “미안하다”고 말하자 “말하지 말지. 그러지 말지. 그럼 나중에 내가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게 없잖아” 라고 대꾸하구요.

  

 드라마는 정우의 삶을 3개월 시한부 인생으로 설정함으로써 영심의 사랑이 한때의 가슴앓이로 끝날 것을, 어쩌면 갑자기 아내를 사랑하게 된 남편에게 돌아올 수 있을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현실에서도 남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용서하고 기다리겠다고 할까요.

 

  많은 남편들이 ‘12월의 열대야’를 보면서 “저런 저런, 에이그” “저게 무슨 말도 안되는”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쯧쯧”하며 채널을 돌리기 전에 아내와 하루 몇 분이나 얘기하는지, 아내가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본 지가 언제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른지요.

 

 TV드라마는 허구고 따라서 터무니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현실에서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일을 다루진 않습니다. 사회 현상과 관계없이 태어나는 대중문화는 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혹은 엄마가 뭘 알아”라고 얘기하는 남편과 아이들 틈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여자들은 어느 날 누군가가 한사람의 여자, 인격체로 친절하게 대해주고 보살펴줄 때 그대로 눈이 멀어 바로 뒤의 낭떠러지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앞집 여자’에 이어 ‘12월의 열대야’같은 드라마가 나오는 건 외로워서, 아주 작은 친절에도 넘어갈 위태로운 아줌마들이 많다는 증거는 아닐른지요. “먹고 살기도 힘드는데 무슨 한가한 수작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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