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브랜드




        지난 31일 초등학교 다니는 둘째 애의 손을 잡고 시청 앞에 나갔다. 사안과 정치적 지지 여부를 떠나서 역사적인 광경을 애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2004년 봄에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큰 애를 데리고 광화문에 나갔었다. 그런 사람들이 많겠지만 1987년에도 시청 앞에 왔었다. 이한열 군의 장례식 날 문자 그대로 인산인해의 마지막 대열에 아주 작은 티끌처럼 들어가 있었다. 노제 이후 대열을 나와서 당시 성지처럼 일컬어지며 실제 그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에 갔었다. 그 6월의 흔적을 내 몸에 새기고, 그 역사의 냄새를 깊숙이 받아들여 언제까지라도 간직하려 심호흡 크게 하며 구석구석을, 먹이 찾는 심심한 동네 개와 공명심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초보 고고학자가 혼합된 듯한 모습으로 돌아 다녔다.




        몇몇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1987년과 지금의 시청 앞의 풍경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외형적으로는 참가자들의 나이나 구성을 비롯한 다양한 면면이었다. 그리고 한 꺼풀 더 들어가면 오늘의 시청 앞에는 예전에 광장을 가득 메웠던 ‘비장(悲壯)’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타고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예전처럼 흘렀다. 그러나 오늘의 광장에는 그 멜로디와 가사를 따라 갈 수 있는 참가자들이 많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몇몇이 예전의 비장함을 불러내려 따라 하지만 이내 가정용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을 5천원에 판다는 몇몇 장사꾼의 절실함을 담은 목소리에 묻혀 버린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참가자 일부는 이미 행진을 시작하여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주최측이 전했고, 광장에 모인 인파들이 서서히 소공로쪽으로 장강(長江)의 물줄기와 같은 대형을 만들며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차도를 가득 메우고 가는 그 인파에 끼지는 않고 이따금 기분에 따라 동영상과 스틸사진을 번갈아 찍으며, 바로 옆의 보도로 거의 속도를 맞추면서 따라 걸었다. 토요일 저녁에 서울 시내는 해방구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던 서울 시내 한복판 광화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이 물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자신의 예언이 맞았다며 좋아하고 있을까, 경찰이 막은 세종로를 보면서 답답해하고 있을까?




        을지로입구역 사거리와 조계사 앞길로 이어지는 명동 큰길에 들어서자 보도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놀러 나온 남녀들과 청소년들이 보도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생각난 듯 대열에 끼어서 구호 함께 외쳤다가 쑥스러워하면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몇몇은 대열 속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느낀 듯 그 물결과 함께 흘러갔다. “쟤네들은 지금 노는 거야!” 고량주 냄새 약간 풍기며 큰길가 중국음식점에서 친구들과 나오던 아저씨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자 머쓱해져 문 옆에 떨어져 있던 호외처럼 생긴 유인물 하나 집어 든다.  




         길가에 외국인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냥 신기하고 그래서 즐거운 표정이었다. 디즈니월드의 퍼레이드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의 전승기념 퍼레이드를 볼 때의 중간 정도의 표정들을 하고 있다. 디즈니와 같은 환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며 걸어가고 있다. 총칼과 우중충충한 군복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연히 맞춰진 꽉 짜여진 절도와 그래서 상대를 압도하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없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는 외국인들을 보며 거리의 촛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의 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지금 거리의 촛불은 위험한 짐승과 같을 것이다.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기존의 ‘권위’에 감히 저항하는, 무리지은 ‘대중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촛불이란 혼돈의 브랜드로 느껴지겠다.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다. 그런 혼돈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혼돈은 무질서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자유를 의미할 수 있고, 창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의 대표를 두 달 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통시대에는 ‘Herd(무리)’이론으로 군중을 보았는데, 디지털 시대에는 ‘Swarm(떼)’이론이 적합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Herd'와 ’Swarm'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확실한 지도자의 존재 여부이다. 1980년 당시의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을 힘 있는 놈을 무조건 따라가는 ‘들쥐(Lemming)’와 같다고 비하조로 얘기했는데, ‘Herd'의 특성을 명확하게 얘기한 것이다. 촛불을 든 한국인들은 전형적인 ’Swarm'의 형태를 띄고 있다. 지도자 없이 자신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며 이합집산한다. 그렇지만 큰 틀 안에서 그들은 한 방향으로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자발적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웹상에 올리며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촛불이야말로 디지털 IT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과 다이내믹한 이 시대 한국인들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02년 베네주엘라로 출장을 갔던 미국 친구 하나는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에 반대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결국 그에 고무된 차베스를 지지하는 군인들이 다시 역(逆)쿠데타를 성공시켜 차베스 대통령을 복귀시키는 현장의 본의 아닌 증인이 되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가 말했다. “사흘 동안 두 번의 혁명을 본다는 것이 베네주엘라말고 어디에서 가능하겠는가?”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거리로 나서는 정의로운 국민들의 전통은 100년의 세월을 두고 면면이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전통이 ‘한국은 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다’라는 말처럼 디지털 시대와 어울리며 판에 박힌 휴대폰 보유율이나 세계시장 점유율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디지털 한국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촛불에서 한국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이 국가브랜드를 위한 새롭고 강력하게 차별되는 접근이 아닐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