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서

 

      두 번째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왔다. 격년제로 열리는 세계광고대회 참석차 2002년의 미국 주재 시절 짧은 휴가를 위하여 가족과 들른 이후에 업무 과년하여서는 처음으로 들렸다. 두 번째라는 얘기를 들으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명색이 미국의 수도이고, 나름대로 대도시인데 몇 차례는 방문했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투로 물어 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워싱턴D.C.의 브랜드 자체가 최소한 나에게는 정치색이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베이브 루드(Babe Ruth)의 전기를 통하여 말 그대로 '신이 나는(Hilarious)'하게 뉴욕을 접하게 된 데 반해서, 워싱턴D.C는 후에 국회 부의장과 주일대사를 지낸 원로 언론인인 조세형 기자의 저서인 <워싱턴 특파원>이란 책을 통하여 무겁게 와 닿았다. 미국 국무부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거의 항상 안개가 끼어 있는 듯한 포토맥(Potomac)강을 끼고 있고, 로비스트들이 모든 일에 개입하여 흑막을 만들고, 기자와 정치인 간의 그리고 같은 동류 집단들 간에도 정치적 암투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도시가 바로 워싱턴D.C.였다.

 

      90년대 초에 뉴욕에서 출발하여 미국 일주 여행을 할 때도 워싱턴은 뉴욕이란 대도시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에둘러 갔다. 가족들을 데리고 처음 방문했을 때도 숙제처럼 관광코스에 나와 있는 곳들만을 찍듯이 둘러 보곤 그마저도 별다른 감흥없이 떠났다. 그리고 이번 방문에서는 뉴욕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는 자체가 미국 출장이라고는 주로 직항 비행기로 뉴욕에 내려 일을 보곤 하던 내게 고역이었다. 마침 JFK공항이 공사중이라 짐을 끌고 공항순환기차를 타고 다시 짐을 부치니 소심한 성격에 짐이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런지 내내 염려스러웠다.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남아 예전에 썼던 원고들을 새로 낼 책을 위하여 손을 보는데, 냉전의 5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외교관인 덜레스(Dulles)에 관한 내용이 나온 글이 있었다. 그는 덜레스공항이라고 워싱턴D.C.의 관문에 자랑스런 이름을 남겼는데, 바로 그 공항으로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이번 방문을 위하여 비행기 표를 예약할 때까지 나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들렸던 바로 그 덜레스공항이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는 줄 몰랐다. 덜레스 공항이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공항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사 직원이 어느 공항으로 내릴 것이냐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덜레스 공항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호텔에서 보내 온 정보를 보니, 로널드 레이건 공항이 택시 요금으로 덜레스 공항에서부터의 1/3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안타까워만 했다. 둘 다 미국인들에게는 향수를 자아낼 지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의 대부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다.

 

      이번 세계광고대회의 주최측은 현 조지 부시 대통령이 특별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물론 보험 약관처럼 스쳐 지나갈 정도로 '현재 백악관과 협의 중'이란 부기를 하기는 했지만,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서야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수상과의 회담 때문에 부득이하게 참석할 수 없어서 유감의 뜻을 전했다며, 코네티컷의 하원의원을 기조연설자로 대신했다. 처음 소개할 때 제대로 듣지 못하여 공화당인지 민주당인지가 헷갈렸다.그가 핵심 키워드로 잡은 것은 앨 고어(Al Gore) 전부통령이 호나경에 대하여 얘기하며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한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이었다. 그는 이것을 환경 이외에 국내외 정치 관련 이슈를 얘기하면서 미국의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사용했다. 미국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비자(VISA) 정책과 입국수속을 거론했다가, 2천만이 넘는 불법이민자가 있는 데도 이렇게 관용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미국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유도하거나 요르단의 후세인 왕 같은 사람이 있으니 미국의 군사 정책이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한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수준을 넘어선 견강부회(牽强附會)였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옆 자리에 마침 요르단 사람으로 미국에서 석사를 하고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는 현재 요르단에서 광고 관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여성이 있어, 넌지시 오전의 하원의원 연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터무니 없는 소리야! 미국이란 브랜드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그녀의 말에 100% 동감을 표시했다.

 

      그 저녁 만찬은 '초상화 미술관(David Reynolds for American Art and Portraiture)'에서 열렸다. 그 만찬이 열린 홀 직전의 방은 소위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미국의 장군들의 초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2차대전까지의 소위 미국의 영웅들인데, 유감스럽게도 1950년 이후의 전시실은 개방이 되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지만 아마도 걸프전의 용사들의 그림이 분명히 걸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초상화 미술관 바로 건너 편에는 '스파이 박물관(Spy Museum)'이 있었다. 오전에 다른 일 때문에 잠깐 만난 뉴욕에서 들른 친구는 워싱턴 시내에서 제일 재미있는 곳이라며 스파이박물관을 꼭 들르라고 추천했다. 만찬 행사 중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잡지에서 30년 이상 유명 인사들, 특히 국제적인 정치인들의 캐리커추어를 주로 그려 온 카투니스트의 강연과 시범이 있었다. 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명 미국 정치인들을 희화화한 그림을 그려 보이던 그가 마지막 마무리를 다음과 같이 했다.

 

"나는 이렇게 우리 정치인들을 우습게 만들고 놀리지만, 세계 모든 국가의 70%는 나와 같이 할 자유가 없다. 바로 죽음을 맞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 가서 사라진다. 그런 카투니스트들의 자유를 위한 활동에 오래도록 종사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도 힘을 모아 달라!"

 

      옆의 요르단 여성 박사가 코웃음을 치면서 얘기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스파이 박물관이 필요한 거야." 9/11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 사례를 좀 잘 꾸미고 처리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I'm amazed. I just can't believe it, because I know how good we are. And we've got to do a better job of making our case)" 우리는 그 노력을 위한 무한대의 일방적인 노력을 보고 있다. 그리고 뉴욕은 피해자로서 자신을 브랜딩한 데 비해서, 워싱턴D.C.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그러진 노력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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