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봉(釵頭鳳)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슬픈 사랑을 그린 시사(詩詞) 중의 하나로 12세기 남송(南宋)시대에 육유(陸游)와 당완(唐琬)이 주고 받은 <차두봉(叉頭鳳)>이란 것이 있다. 예전에 고사(故事) 비슷하게 들어본 적은 있는데, 추석 전날 침대에 누워서 『중국역사오류사전』이란 책을 읽다 보니, 이 <차두봉> 시가와 함께 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꼭 오류라고 해서 실린 것이 아니라 육유와 당완 사이에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식의 글이었다. 어쨌든 <차두봉>이란 절세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사정은 다음과 같다.(위에서 언급한, 침대에서 누워서 읽고 있던 책에 실린 것을 위주로 정리하였다.)

 

      남송시대인 1114년 스무살의 나이로 부부의 연을 맺은 육유와 당완은 금슬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당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육유의 어머니는 새로운 며느리를 데리고 들어와 당완을 강제로 쫓아냈다. 당완은 친정 부모의 뜻에 따라 조사정(趙士程)이란 남자와 혼인하였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객지를 떠돌다 고향인 소흥(紹興)에 들른 육유는 우적사(禹迹寺) 남쪽에 있는 심원(沈園-심씨 가문의 정원)에 놀러 갔다가, 남편과 함께 그 곳에 나들이 나온 당완을 만나게 되었다. 제대로 말을 건넬 수도 없었던 애절한 심정을 심원 벽에 적어 나갔고, 당완도 나중에 그 시를 보고 그에 화답하는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음의 <차두봉>이었다.

 

釵頭鳳 (一) 陸游 作

 

紅酥手,黃滕酒,滿城春色宮牆柳。

東風惡,歡情薄。一懷愁緒,幾年離索。

錯!錯!錯!

 

春如舊,人空瘦,淚痕紅浥鮫綃透。

桃花落,閒池閣, 山盟雖在,錦書難托。

莫!莫!莫!

 

고운 손 살포시 들어 술잔을 권할 적에

성안에 봄빛이 무르익었고, 버들가지 담장에 드리웠었지. 

몹쓸 봄바람에 기쁜 정도 잠깐, 마음 가득 이 쓸쓸함 숨겨 온 지 몇 해였나?

틀렸어, 틀렸어, 틀려 버렸지,

 

봄빛은 예와 같은데 사람은 부질없이 여위어, 눈물 흔적 손수건에 배어났네.

복숭아꽃 지는 쓸쓸한 연못가 누각에서 태산 같은 굳은 약속 편지로 전할 수 없네.

생각말자, 생각 말자, 생각을 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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釵頭鳳 (一) 唐琬 作

 

世情薄,人情惡,雨送黃昏花易落。

曉風乾,淚痕殘。欲箋心事,獨語斜闌。

難!難!難!

 

人成各,今非昨,病魂曾似秋千索。

角聲寒,夜闌珊。怕人尋問,咽淚妝歡。

瞞!瞞!瞞!

 

세상도 야박하고 인정도 사나워서 황혼에 뿌린 빗방울 꽃잎을 떨어뜨렸지

밤새 흘린 눈물 흔적 새벽바람에 말리고, 내 마음 호소하려 난간에 기대었지.

어려워, 어려워, 너무너무 어려워.

 

우리는 헤어져 그 옛날은 멀어졌으나, 그리워하는 이 마음 그네 줄처럼 오락가락.

수졸戍卒들의 호각소리에 밤은 깊어 가는데, 내 마음 알려 질까봐 눈물을 삼키네.

속였어, 속였어, 내 마음까지 속였어.

 

지금 소흥의 심원에 가면 두 사람이 화답한 <차두봉>이 벽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의 시심은 죽어서나마 저렇게 함께 하고 있다. 위의 화답시를 짓고 나서 당완은 시름시름 앓다가 바로 세상을 떴다. 이후 40여년이 지나 육유가 75세가 되어 육유는 다시 우적사 누각에 올라 당완을 그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沈園(一)

 

夢斷香銷四十年,    꿈이 깨지고 향기마저 사라진 지 사십년

沈園柳老不飛棉.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솜도 날지 않네

此身行作稽上土,    이 몸 회계산의 흙이 되어

猶弔遺蹤一泫然.    그녀의 남은 자취 위로하겠네!

 

      애틋한 마음과 그를 표현한 시는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다. -해석은 몇몇 본들을 참조하여 멋대로 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읽고 있던 책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이 결정적으로 두 연인을 갈라 놓았다고 했는데, 어쨌든 이런 많은 경우에 그러하듯이 악역을 맡았던 육유의 어머니, 곧 당완의 시어머니 입장에서 변명이나 합리화를 시킨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육유는 '남송 사대가(四大家)'이자 중원 회복을 부르짖은 우국(憂國)시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86세(1125~1210)라는 천수를 누렸다. 혹시 그 어머니나 어머니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육유가 시인으로 대성하고, 천수를 누린 것이 자신이 당완이라는 여인이 끼칠 부정을 막아 주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최소한 나와 같은 후세의 독자들이 <차두봉>을 읽으며 느끼는 감동에 대해 자신에게 고마워하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소흥의 관광자원의 하나로 심원이 큰 역할을 한다며, 지역 수입 증대에도 기여했다고 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우스운 억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강변을 요즘도 자주 본다. 몇몇 전임 대통령들에 대하여 제대로 평가를 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찬미하며 강요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 대다수가 거의 그런 식이었다.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사는 것이 바로 그 위인들이 이끌어 주었기 때문에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현재의 문제점들은 모두 근래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역설하며, 더욱 더 그 위인들을 그리워한다.

 

      대선도 가까워지고 해서 갑자기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은 마케팅 활동을 하는 데도 이런 경우가 많다. 특히 광고라는 것이 어떤 슬로건을 썼기에, 배우 모델을 기용했기에 성공하고 엄청난 매출을 이끌었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광고했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었고, 광고가 대체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훨씬 많다. 소위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다양한 조사 결과치를 가지고 보면 제품 매출이나 기업의 이미지 형성에서 광고의 영향력은 2000년 이래 확실하게 계속 떨어지고 있다. 광고물의 질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양해지고 소비자들의 정보와 파워가 늘어나서 그렇다. 그런데도 광고시장이 위축되지 않는 것은 그래도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에 있는 것 중 광고만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황을 가지고 사람들을 몰아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광고하는 사람들도 현실을 직시하며 너무 심하게 오바하지는 말아야겠다. 사랑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건조해졌다.

 

      예전에 미국의 한 컷 짜리 만화에서 다음과 같이 광고주가 광고대행사 직원을 향해 선언(?)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실제 만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괄호 안에 나오는 말이 또한 숨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I make a decision, and you take a blame. (I take a pr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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