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검은 피부가 아름다워!

 

      20년전 미국의 어느 마을. 너다섯 살 된 흑인과 백인 여자아이들 둘이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아이는 각기 자신의 피부색과 같은 색의 인형을 가지고 왔다. 백인아이는 흑인인형을 "못난이(Ugly)"라고 부르며, 자기 인형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흑인아이와 "못난이" 인형이 꼭 닮았다고 흑인아이를 놀려댔다. 울면서 집에 돌아온 흑인아이에게 어머니는 흑인들을 위한 잡지인 "Ebony"를 보여 주고, 화장실에 "Black is Beautiful"이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I'm Black and I'm Proud"와 같은 선상의 60, 70년대 흑인들의 대표적인 구호가 써진 포스터를 욕실에 붙였다고 한다. 그 흑인아이가 지금 세계 최대의 생활용품 기업 P&G의 'Multicultural Marketing Director'란 직함을 가지고 "My Black is Beautiful"이란 마케팅 캠페인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Multicultural marketing'이란 말이 주는 어감이 묘하다. 아니 쓴웃음을 짓게 한다. 주류(Mainstream) 백인들을 제외한 소위 유색인종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이란 의미인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Politically correct) 표현한다고 하다보니, 마치 모든 인종의 모든 문화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실상은 시장을 더욱 잘게 나누고, 잘게 나누어진 각각의 시장에서의 소비를 최대한도로 유도하는 마케팅 행위를 일컬을 뿐이다.

 

      실제로 미용용품 시장에서 흑인들은 매우 크고 매력적인 시장이다. P&G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흑인 여성은 미디어에서 자신들이 그려지는 모습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고 느끼는 비율이 70%에 이르고, 인당 미용용품 소비가 전체 여성 평균의 3배 이상이라고 한다. 기업에서 볼 때는 그런 피해의식과 컴플렉스를 다독이며, 자존심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을 P&G 미용용품에 대한 소비 증대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전체적으로 높이는 목적에서 고안하여 나온 것이 바로 "My Black is Beautiful"이란 캠페인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상으로 볼 때 전통의 익숙한 문구로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복고풍의 트렌드도 타면서, 'My'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며 현대적인 버전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P&G의 개별 브랜드들의 슬로건인 올레이(Olay)의 "Love the Skin You're In", 팬틴(Pantene)의 "Shine", CoverGirl의 "Every Woman Is a Queen"과 같은 흐름에서 힘을 불어 넣어 주며,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장치를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P&G는 전통적으로 개별 브랜드체제의 대명사로 브랜드매니지먼트의 개념을 제대로 정착시켜, 브랜드 매니저(BM:Brand Manager)들이 P&G를 나와서도 다른 기업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마케팅 사관학교'로 불렸었다. 그런데 현재 P&G 마케팅의 힘은 개별 브랜드가 아닌 중앙의 통제와 조율(Control & Coordination)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번의 예에서 보듯, '개인의 자부심'과 같은 개별 브랜드들이 공통으로 추구할 개념을 중앙에서 던져 줘서 반영시키고, 다시 그것들을 묶어서 새로운 표적고객에게 보여 주는 것을 만들어 내는 형식이다. 아직도 브랜드 포트폴리오(Portfolio) 혹은 브랜드 아키텍츄어(Architecture)에 관하여 사례를 들 때, 개별 브랜드 체제의 대표로 누구나 P&G를 거론하는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이 그럴 뿐 실제 운영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P&G의 이번 슬로건을 보는 순간 도브(Dove)의 "진정한 아름다움(Real Beauty)" 캠페인이 연상되었다. 왜곡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물리치고 개개인 속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서 개인의 자존을 불러 일으킨 도브 캠페인과 비교할 때, 이번 P&G의 시도는 'Multicultural'이란 용어 아래, 흑인 여성을 겨냥한 한정판의 느낌을 주는 것을 캠페인을 고안한 당사자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목표고객이 더욱 명확하고 좁혀져 있기에, 훨씬 빠르게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서는 'Multicultural Marketing Director'의 바램대로 흑인여성시장에서 거둔 성공의 여세를 몰아서 히스패닉시장으로까지 같은 소재로 확장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약간의 변용을 거쳐서 다른 유색인종에게도 세밀하게 접근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성공 이상의 인류 공통의 가치를 담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부분은 이미 도브가 먼저 차지하고 있고, 그를 떠나서도 마케팅 비용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P&G로서는 그 수준으로까지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경쟁자보다 먼저 담아내고, 그것을 과학으로 포장한 효율성을 넘어서 전파하고 자신의 브랜드와 합치시키는 노력이 바로 과학적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의 시대를 연 P&G가 진정으로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 경주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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