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이'와 절제

 

      충동적으로 여름 휴가를 내고, 아내와 아이들 둘과 사이판(Saipan)에 다녀 왔다. 관광지로서의 사이판보다는 내게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로 사이판은 강하게 인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인식은 해안 절벽에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을 데리고 방황하는 일본인 부부의 모습을 그린 연속사진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일본인 부부는 한 시간여에 걸쳐 바닷물이 찰싹찰싹 때리는 절벽의 그래도 좀 편평한 바위 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집단자살을 하여야 하는지, 부부들만 혹은 가장인 남자만 죽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어떤 고민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암벽 동굴에 몸을 숨기고 이 광경을 지켜 보았을 일본인 저격병이 부부를 쏘아 쓰러트려 버려 그의 고민을 문자 그대로 잠재워 주었다. 이런 것을 진정한 'friendly fire'라고 얘기해야 할까?

 

      다시 한 번 같은 표현을 쓰면, 문자 그대로 벼랑 끝에서 고민하던 가장의 예기된 듯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 온 죽음은 남은 어린이들을 극한의 패닉(Panic) 상태로 몰아 넣었지만, 동굴로 피해 있던 몇몇 일본인들이 용감히 뛰어 나와 남은 가족들을 동굴로 데리고 들어 갔다. 그 남은 아이들은 집단 자살의 광기 속에서도 동굴에서 살아 남아 미군에게 포로 신분으로 인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을 제한적이나마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휴가에서 그 격전지들을 돌아 보고 반추하며, 일본인들을 세계대전으로 몰아 넣었던 그 집단광기의 마지막 불꽃의 일단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7월에서 8월로 이어지며 부러 골라 본 것도 아닌데 태평양전쟁에 관한 프로그램들을 잇달아 보게 되었다. 7월에 크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를 비행기 기내 영화로 보았다. 원래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잔잔하게 사실에 입각하여 심리 상태를 그려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1949년 2차 대전 종전 직후에 제작된 존 웨인(John Wayne) 주연의 "유황도의 모래(Sands of Iwo Jima)"에 나오는 미국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본군이라면 철저하게 일본 무사도로 무장하여 가미가제 식으로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돌진하는 그런 무리들이라는 관념을 깨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천황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일본 군국주의에 완전히 접수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생존을 위한 욕망이나 가족애가 남아 있는 일본군 개인개인의 마음을 엿보고자 하였다. 일본 내 누구보다도 미국의 힘을 잘 알고 있고, 그와 대조되는 일본군의 열악한 보급 상황과 전황 가운데 자신이 사지(死地)에 몰려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구리바야시 타다미치(栗林忠道) 장군의 가족, 국가, 부하들이 그의 마음 속에서 엮어 내는 갈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천황' 대신 '어머니'를 부르며 죽었을 2만여 일본군 병사들의 모습과 딱히 획일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일본군 내부에서의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모습들이 깊이 각인되었다.

 

      영화 속 일본군들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일본 우익분자들의 냄새가 물씬 배여 있는 위령비들이나 반대로 미국의 2차대전의 향수가 어려 있는 전적지들보다 오바 사카에(大場 榮) 대위라는 인물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는 미군이 사이판의 완전 점령을 선언한 1944년 7월초 이후에도 줄기차게 사이판의 밀림지대를 무대로 게릴라전 활동을 1945년 12월까지 18개월에 걸쳐 펼쳤다. 그나마 그가 제발로 걸어 나와 항복하게 된 것은 그의 상관이었던 인물이 현장에까지 와서 그에게 정식항복을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1974년 필리핀 정글에서의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까지 일본 황군(皇軍)의 낙오병들은 심심치 않게 아시아의 정글이나 섬에서 나타나곤 했다. 그런데 조직적인 저항은 오바 대위가 마지막이었다고 얘기한다. 오바 대위는 46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실제로 미군 기지를 습격하는 등의 게릴라전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1/3 크기 밖에 되지 않는 섬에서, 아무리 정글 속에 있다고 해도 세상이 어떻게 바꾸이었는지 뻔히 알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4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항의 나날을 이어 가도록 만든 힘은 무엇일까? 현재 오바 대위가 사이판 주둔 미군 해병대의 일원이었던 돈 존스(Don Jones)라는 인물과 함께 지은 "Oba, The Last Samurai"란 책을 기다리고 있다. 책이 오면 더욱 자세한 정황을 알겠지만, 대충 알아본 사실들을 기반으로 생각할 때 아마 가장 큰 힘은 바로 오바의 지도력(Leadership)이었던 것 같다. 그 리더쉽은 일본군의 전형적인 '옥쇄(玉碎)'정신 따위와는 거리가 한참 먼 교육적 감화에 기초를 둔 것이었을 확률이 높다. 오바 자신이 군에 입대하기 전에 고등학교 지리 선생을 지냈다고 하니, 선생님으로서의 인격적인 훈화에, 글쎄 지리 지식까지 조금은 그렇게 오래 버티는 데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에 의존한 추론이기는 하지만, 유황도나 사이판과 같은 격전지에서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일본군의 당시 입장에서 적들인 미군까지도 감탄시킨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은 합리적인 판단에 기초한 조용한 리더쉽이었다.

 

      적의 기관총구가 기다리고 있는 고지 위의 적진지로 '반자이'를 외치며 돌진하고, 사꾸라꽃처럼 지는 일본군식의 화려함을 자신의 마케팅 활동에서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생각보다 많다. 자신의 옛 영광에 젖어, 기반을 새롭게, 즉 새로운 시대와 소비자 트렌드에 맞는 방향을 잡고 다져야 할 때 흘러간 무기를 가지고 화려하게 빚잔치 한 번 벌이는 브랜드들이 있다. 빚잔치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 번씩 벌이는 화려한 잔치에 도취되어 그 잔치의 화려함을 브랜드의 파워로 착각하는 브랜드들이 많이 있다. 요즘 많이 쓰는 말대로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차라리 조용함, 절제이다.

 

      ※ 2차 대전의 명장으로 꼽히는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L. Montgomery) 장군의 경우 연패의 수렁에 빠진 북아프리카의 영국 8군의 지휘를 맡게 되면서, 승리할 때까지 계속 독일군과 붙자는 성격 급한 참모들을 달래어 전열을 정비하면서 결국 화려한 롬멜(Erwin Rommel)의 독일군을 몰아내면서 연합군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화려한 일격을 기대하며 펼쳤던 '머나 먼 다리(Bridge Too Far)'를 비롯하여 수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마켓 가든(Market Garden)' 작전으로는 그의 군대 생활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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