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이여, 어디로 가는가?

 

      2주전에 한 기자가 아이폰(i-Phone)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다. 그런 질문은 사실 애플(Apple)에서 아이폰을 개발하여 발매하겠다고 운을 띄운 직후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브랜드나 광고업계의 외국 친구들도 대화의 소재로 아이폰을 많이 끄집어 내었다. 내게는 삼성전자의 휴대폰에 미칠 영향을 주로 듣고 싶어 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해외에서는 주로 다기능, 패션의 프리미움으로 주로 포지셔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아이폰과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힐 브랜드로 삼성을 지목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이폰으로 인하여 삼성 휴대폰이 과연 얼마나 타격을 입을 것인가, 그에 대해서 삼성은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을 하여야 하는가가 주관심사였다.

 

      내게 질문을 하면서 기자는 국내 굴지의 휴대폰 메이커와 이동통신사의 경영진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모두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목소리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 기자에게 물었다. "어떤 점이 충격이었다는 것이지요?" 소비자들이 보인 구매 열기가 무엇보다도 그 분들에게 놀라웠다고 한다. 터치스크린을 비롯한 아이폰이 새로이 선보였다고 하는 기능들은 당연히 예상했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기능적인 부분을 뒷받침하는 기술력에 대해서는 내가 평가를 내릴 수 없고, 브랜드적인 측면에서 그 정도 수준의 아이폰 구매 열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 아마도 통신업계와 휴대폰 제조 부문에 종사하는 분들이 브랜드로서 컬트(Cult)의 수준에 오른 애플의 힘과 영향력, 그리고 소위 '애플 매니어(Apple mania)'들의 성향과 행태에 대해서 잘 모르셨기 때문에 이번 아이폰 론칭(Launching)을 둘러 싼 열기가 충격적이었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1991년 뉴욕대(New York University) 경영대학원에 진학을 했을 때,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하기에 앞서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벌어졌다. 학사 일정, 시설물 이용 등에 관한 소개와 함께 각종 동아리 소개가 이어졌다. 대학원 과정에서 무슨 역동적인 동아리가 존재할 리는 없고, 얼마나 활발하게 학구적으로 활동하는 지는 몰라도 '일본경제연구회', '기업가치평가회' 등의 학술모임들이 대다수였다. 뚜렷이 신규 회원들을 모집하겠다는 의욕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그에 따라 소개도 아주 건조하게 시간만 때우듯이 이어졌다. 그런 따분하고 판에 박혀 흘러 가던 분위기를 깨뜨린 동아리가 나왔다. '매킨토시 사용자 모임(Mac Users' Club)'이었다. '매킨토시 사용자 모임' 소개가 있겠다는 안내가 나오자마자 '와'하는 함성이 나왔고, 대표자가 연단으로 나가는 내내 그 함성은 몇몇 멤버들이 당시 인기있었던 '아스니오 홀 쇼(Arsenio Hall Show)'에서 호스트인 아스니오 홀이 등장할 때처럼 주먹 쥔 손으로 머리 위에 그리는 원과 함께 이어졌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대는 무리들에는 갓 들어온 신입생들도 이미 여럿 끼어 있었다.

 

      뉴욕대의 맥 사용자 모임이 보여 준 것과 같은 놀라운 결집력과 흡인력이 바로 애플 브랜드의 힘이었다. 90년대 중반 주춤하긴 했으나, 애플의 아이콘과 다름 없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재등장과 함께 iMac으로 시작되어 iBook으로 연결되고 iTune과 iPod에서 만개한 i-시리즈 형제들의 행진은 애플 매니어들을 양산해 내면서 제품 하나가 나올 때마다 그 열기를 더욱 뜨겁게 그러면서 더욱 넓게 증폭시켜 나갔다. 이번 아이폰은 애플의 제품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을 두고 애플이 심하다 할 정도로 그 열기를 조성시켜 왔다. 그리고 아이폰은 꾸준히 iPod이 업그레이드되기는 했지만, 애플로서는 2001년 1세대 iPod 이후 최초로 내놓는 i-시리즈의 신제품이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사실 개인적으로 아이폰 도입시의 열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시장 도입이 잘 기획되고, 치밀하게 수행되었지만 무언가 애플다운 것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1997년 함께 일하던 팀들과 애플의 브랜드를 한 단어로 얘기할 때 '(Radical) Ease (of use)'로 정의했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보통 애플의 브랜드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고 하면 'Cool'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다. 그런데 과격할 정도로 '쉽다'든지, '쿨하다'와 같은 단어를 포용하며 애플을 탄생시키고 이후 그를 지탱하고 있는 뿌리는 '반항(Rebellion)'의 정신이다. 애플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나는 출처는 확실하지 않으나- 내 자신의 상상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이브(Eve)가 먹은 선악과 설에 표를 던진다. 조물주가 창조한 완벽한 세계에의 반항정신. 선과 악의 문제를 떠나 절대적인 권위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하는 것이 바로 애플의 정신인 것이다. 이 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광고가 바로 IBM을 획일적인 전제주의 국가의 '대형(Big brother)로 묘사한 그 유명한, 미국 역대 슈퍼보울 광고 중 최고의 명작으로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 '1984'이다. 그리고 약간 톤이 누그러지기는 하였지만 무하마드 알리, 알버트 아인슈타인처럼 기존의 권위와 지식, 관념에 저항 했던 인물들을 그린 'Think Different' 캠페인으로 그 정신은 면면히 이어졌다.

 

      반항자(Rebel)들은 항상 소수이다. 불이익을 받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하며, 배척 받고, 심하게는 탄압받는다. 뉴욕대의 맥사용자들만 하더라도 사용자 수에 비하면 넉넉하게 맥킨토시 컴퓨터가 학교 컴퓨터실에 갖추어져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항상 불만과 피해의식에 가득 찬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끼리 똘똘 뭉치는 엄청난 결집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충성도의 단계를 넘어서 자기 자신의 아이덴터티(Identity)를 브랜드를 통하여 찾는 매니어, 컬트 집단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iPod은 MP3 플레이어를 넘어서 개인용 오디오기기의 메이저, 주류(Mainstream)이 되어 버렸다. iPod에 열광을 하기는 하지만 예전의 소수의 반항자로서의 그것과 같은 흥분을 자아내기에 iPod은 너무나 성공해 버렸다. 개인적인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이폰에 대한 열광은 아마 다시금 소수 반항자로서 애플의 정신을 느끼고자 했던 애플 매니어들의 열망이 반영된 소산일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바로 브랜드적인 측면에서 아이폰 광고와 기능적 측면들에 대한 소비자들과 언론들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서 애플이 대응하고 있는 방법은 유감스럽다. 애플의 반항정신은 찾아 볼 수 없이 기능들만이 나열되고 있고, 엔지니어의 강변과 측면지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불협화음을 이루며 영업 담당자의 장미빛 매출 목표만이 나부끼고 있다. 현재까지는 소니(Sony)의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아 가고 있다. 지난 주 미국 출장에서 접하고, 그 쪽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판단컨대 기술적으로 아이폰은 애플의 이전 연대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제품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반역적인 요소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애플의 근본 정신과 어울리는 점이 있다. 그 점을 찾아서 아이폰의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잡아야 할텐데, iPod의 성공의 덫에 스스로도 매몰되어 있는 그들에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지켜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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