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와 잡지를 합쳐라

 

      옥외광고를 하는 선배 한 분이 친구 하나와 함께 회사로 찾아 왔다. 좀 두꺼운 듯한 탁상달력 같은 것을 내밀며 보라 했다. 잡지를 창간했다는 데, 다이어리 기능과 잡지 기능을 하나로 통합했다고, 잡지 이름을 다이어리와 매거진의 합성어인‘다진’이라고 지었고 월간으로 발행할 예정이란다. 너무 엉뚱한 짓을 했다고 연신 쑥스러워 하며 말씀을 하는데,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닐 수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 선배는 옥외광고 중에서도 고속도로나 큰 빌딩 위에 서 있는 우리가 보통 빌보드(Billboard)라고 부르는 대형 옥외광고판이나 화면 선명도와 크기 경쟁을 벌이며 언론사와 손잡고 뉴스를 전하는 그런 고투자형의 광고가 아닌, 틈새시장과 같은 새로운 분야를 개발하고 그에 맞게 직접 광고물들을 제작까지 하는 사업을 하셨다. 우리 주변의 모습을 10년 전으로 돌려 기억을 되살려 보면, 얼마나 많은 새로운 형태의 광고들이 생겨 났는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선배가 주특기로 삼았던 지하철 주변으로 가보자.

 

      나는 핸드폰에 끈으로 매단 T-머니로 지하철 요금을 낸 지가 꽤 되었다. 년전에 모 대형서점에서 판촉용으로 나누어 준 T-머니를 받아서 충전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어쨌든 지하철 요금기에 댈 때마다 거기에 새겨진 그 서점의 광고를 보고 있다. 플랫폼으로 내려 가면 철로들 중간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뉴스와 광고를 번갈아 내보내고 있다. 철로로의 투신방지용 겹문이 있는 곳에는 거기까지 안내문구에 대구를 맞춘 '멜라닌에서 멀어지세요'와 같은 광고가 씌어져 있다. 지하철을 타면 손잡이에 모형 음료수 캔이 붙어 있고, 중간중간 천장에 달린 TV에서 역시 뉴스나 오락프로와 함께 중간중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역입니다'하는 안내방송에 이어, 'X번 출구로 나오시면 □□어학원이 있습니다'와 같은 광고가 흘러 나온다. 이 모두가 1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광고의 순결지대, 광고로 보아서는 미답(未踏)의 영역이었다.

 

      아직 우리 나라에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곧 아래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진을 지하철 구간에 잇달아 영화필름처럼 달아놓고 달리는 지하철로 영사기의 효과를 얻어 광고를 보여 주는 것도 곧 실현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지하철에서 어느 곳에 눈을 두더라도, 설사 눈을 감고 있더라고 광고에 노출될 수 밖에 없고, 더 이상 광고를 위하여 남아 있는 공간이 있을까 싶겠지만 아마도 계속 숨어 있는 공간을 찾아 낼 것이다. 지하철에서 좀 구석구석 장황해졌는데, 그런 새로운 형태의 광고 매체 혹은 공간을 찾아내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본분에 충실하며, 그 선배는 기존 잡지가 광고매체로서 갖고 있는 한계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대부분의 잡지가 '소비되는' 실태를 보자. 행정기관의 민원실, 병원, 은행, 미용실 등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비치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잡지가 한 번 읽히고 버려진다. 그런데 비치된 것들도 같은 사람에게 반복해서 읽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요즘 잡지는 '읽힌다'기 보다는 '소비된다'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잡지는 해당 월의 각 날짜의 주요한 역사적 사실과 읽을거리, 각종 문화정보와 축제 등 여행 정보를 비롯하여, 각자의 일정 및 소감을 적을 수 있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잡지를 보고 한 달 동안 가 볼 곳이나 할 일 등의 계획을 잡을 수 있고, 실제로 갈 때는 이 잡지를 안내서로 삼아서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잡지는 이상적인 경우는 한 달 내내 반복적인 노출이 가능한 것이다. GRP(Gross Rating Point)라고 하여 총도달율, 연도달율, 총노출량과 같이 번역되는 용어를 광고에서 많이 쓴다. 아주 쉽게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보였는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잡지의 경우 반복노출에 의한 긍정·부정의 효과를 무시하고 단순하게 계산하면 한 사람이 평균 10번 정도를 본다고 할 때, GRP에 있어서는 열 배 정도의 독자를 가진 잡지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바로 위에서의 광고효과를 떠나서, 나는 이 잡지의 의의를 두 가지 관점에서 찾고 싶다. 첫째, 생각의 틀을 깨면서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어 냈다. 기존의 잡지들은 정보의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누가 더 좋은 정보를 보기 좋게 읽기 좋게 만들어 빨리 시간 맞추어 전달하느냐가 잡지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잡지는 전달과 함께 한 걸음 더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까지 나아갔다. 이렇게 나아갈 수 있었던 까닭은 잡지를 만든 분들이 잡지 전문가가 아니고, 광고전문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보 전달'이라는 기존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광고매체로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둘째는 소비자 즉 독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신을 맞추었다는 점이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레저 생활을 즐기는 소비자들을 쫓아갔다. 거기에 어떻게 붙어서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여, 새로운 형태의 잡지를 고안하고 실현시킬 수 있었다. 아마 이 역시 소비자가 가는 곳, 눈이 있는 곳이면 설치한다는 광고인 특유의 감각과 근성이 발동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브랜드 갭(Brand Gap)』의 저자로 유명한 마티 뉴마이어(Marty Neumeier)는 최근작인 『ZAG』-한국에서는 6월 중순 발간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에서 브랜드의 성공요인으로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두 가지 원칙을 얘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야구에서 타격을 잘할 수 있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답한 "야수들이 없는 빈 곳으로 공을 보내라",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을 리드할 지 모르겠다는 말에 어머니가 준 충고인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 줄 맨 앞으로 가서 서라"는 식상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빈 곳', 블루 오션'을 만들고, 트렌드와 함께 하며 그 앞에서 가는 것의 두 가지를 이 잡지가 충실히 반영했다고 하면 이제 겨우 2호를 낸 잡지에는 지나친 칭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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