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존이(求同存異)의 마케팅

 

      1955년 4월 인도네시아의 휴양도시인 반둥(Bandung)에서는 제 1회 아시아·아프리카회의가 열렸다. 식민지배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겨우 풀려 나왔다 싶자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대결구도를 만들며 양대 진영의 한 쪽으로 줄서기를 강요 또는 회유를 받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위 제 3세계 국가들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고 공동의 터전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열린 회의였다. 29개국이 회의에 참가를 했는데, 당연히 미국과 소련의 보이지 않는 외교전이 불을 뿜었다. 특히 자신들의 표현으로 '중동부 유럽을 잃고 중국마저도 빼앗겨' 위기의식이 한창 고조되어 있던 미국의 막후공작이 두드러졌고, 회의 초기에 몇몇 국가들이 미국을 위해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 선두주자로 나선 것이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컬하기 그지 없지만 이라크였다. 이라크 대표가 공산주의를 "낡은 식민주의"와 "유대 제국주의"에 이은 세 번째 위협이라고 선언하면서 회의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공산주의를 성토하는 장으로 변했다. 이어서 파키스탄 총리는 '해방운동'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를 조심해야 한다고 공산주의의 위협을 지칭했고, 필리핀 외무장관은 한술 더 떠서 '일부 몇몇 국가는 오직 한 정당이 지배하고 있는 어떤 대국(소련을 의미함)에 복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비난함과 아울러 미국의 선의(善意)를 노골적으로 칭찬했고 터키를 비롯한 친서방 대표들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변호하는 연설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태국의 왕자는 중국이 태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공산 진영의 대표격으로 중국을 향하여 서서히 좁혀 들어와 완전한 조준 사격이 시작된 셈으로, 중국 대표의 반응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당시 중국의 대표였던 저우 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대응하여 내놓은 것이 바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칙이다.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일단 놔두고, 서로 같은 점을 찾고 추구한다'는 뜻으로, 그는 연설을 통하여 그 원칙을 들고 나온 배경과 효과를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는 식민주의로 인해 불행과 고통의 역사를 겪었고 또 계속 겪고 있기 때문에 공통의 토대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만일 우리가 공통의 토대를 찾고, 식민주의에 의해 우리에게 덧씌워진 불행과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쉽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것이며, 서로에게 동정적이고 도움이 될 것이며, 서로를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서로에 대해 냉정하거나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저우 언라이가 얘기한 '구동존이'는 회의에 참가한 대부분 국가들의 지지를 얻었고, 반둥 회의를 정리하며 발표한 공동성명의 기초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 저우 언라이가 악수를 하려 내민 손을 뿌리칠 정도로 노골적이었던 중국을 왕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세계 외교 무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중국 외교의 근본 원칙으로 지금까지 구동존이가 언급되고 있는데, 원래의 의미에서 약간 변질되어 요즘은 '서로 이견이 있는 것은 가만 놔두고(뒤로 미루고), 합의가 되는 부분을 얘기하자'는 식의 회의진행을 위한 아주 전술적인 차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주위에서 폄훼한 경우도 있지만, 중국 외교관들 스스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남용하면서 큰 의미를 축소시킨 안타까운 사례이다.

 

      마케팅과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얘기하는 단어가 아마 '차별화(Differentiation)'라고 해도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것은 그대로 놔두고, 혹은 뒤로 미루어 두고, 같은 점을 찾아보자는 구동존이는 현대 마케팅과 브랜드에 반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같은 점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차별화할 다른 점들을 찾을 수 있다. 정말로 다른 것인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같은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그리고 같은 점을 부각해야 차별화할 점을 더욱 깊게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다.

 

      2003년 말에 러시아를 비롯한 CIS지역에 대한 마케팅전략을 짜러 모스크바에 간 적이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를 높이고, 긴 비행기 시간과 겨울철 별 오락거리가 없는 모스크바의 저녁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집의 서가에 몇 년 동안인지 모르지만 보일락말락 자리 잡고 있던 페이퍼백 하나를 가방에 넣고 나섰다. 『Russia-The People and the Power』(Robert G. Kaiser, Pocket Books, 1976)이 바로 그 책이었다. 책을 언제 샀는지 가물가물했고, 책을 살 때 그래도 대략 언제 나왔는지 어떤 내용인지는 확인을 하는데, 나는 이 책을 비행기에서 읽기 전까지 90년대 초에 나온 책으로 개방의 물결에 휩싸인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안내서로 발간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이전으로 훨씬 올라가서 1971년에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의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된 로버트 카이저가 자신이 주재했던 3년여의 경험을 회고하며 저널리스트다운 감각을 발휘하며 지은 책이었다.

 

      카이저는 처음 주재에 필요한 서류를 내면서 부딪히는 소련 특유의 지나친 보안의식과 관료주의, 모스크바 주재 초기에는 도저히 뚫고 들어 갈 수 없는 크레믈린의 벽 앞에서, 결국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과 제도에 절망하다시피 한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는가!'하는 심정이었다. 그의 러시아 여정이 실마리를 풀어 간 것은 일반 사람들의 생활의 근본은 미국인과, 바로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며 미국과 소련의 공통점을 찾아가면서였다. 챕터 구성 순서도 처음이 '러시아에서만 가능한 일'이란 의미로 러시아의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그린 'Only in Russia'이고, 그 뒤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미국인과 다를 바 없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을 'From Birth to Death: "We're Living Well"'라는 챕터 제목 아래 그리며, 그 바탕 위에서 다음 챕터인 'The System: USSR, Inc.'에서 전체의 시스템을 이해하게 된다.

 

      그 책이 20년 전에 지어진 것임을 알고, 러시아의 신흥 중상층 이상을 겨냥한 프리미움 마케팅에 어떤 도움이 될까 실망감이 들었지만, 특수한 시기와 장소를 다룬 회고록을 읽는 듯한 재미로 쭉 단번에 읽어 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과거의 소련과 단절된 새로운 유형만이 강조되던 러시아 중상층에게서 그 책에 그려진 70년대 소련인들의 모습과 성격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친 김에 1차 조사 후 귀국하여 집에 있는 러시아에 관련된 몇 안 되는 책들을 훑어 보았는데, 앙리 트로아(Henry Troyat)란 프랑스 사람이 쓴 피터 대제의 전기의 영문판인 "Peter The Great"(Hamish Hamilton, 1988)를 보니, 공산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수 백년 전부터 변하지 않은 러시아인의 속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성이 현재 러시아인을 파악하는 첫 번째 열쇠가 될 수 있었다.

 

      현상과 다른 새로운 것을 얘기하는 '트렌드'에서도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 출발점이 된다. 트렌드 전문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trendwatching.com의 트렌드 연구는 '사람들, 소비자들은 확 한꺼번에 변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욕구는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단지 그 감춰진 모습을 드러내거나 새로운 형태로 펼쳐질 뿐이다(Human beings, and thus consumers, don't change that much: their deep needs remain the same, yet can be unlocked or newly serviced.)'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다른 것만을 강조하는 'Or'보다는, 달라 보이는 가운데 같은 것을 찾는 'And'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구이(求異)', 'Or'의 마케팅은 경쟁 상대를 배제하고 눌러 버리는 데, 대상이 소비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색다른 면에만 주목하는 데 비해, '구동(求同)', 'And'는 함께 하고 , 포용하는 데 중점을 둔다. 어떤 마케팅이 오래 갈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한 편으로 '구동'의 경우에  '이(異)'의 존재를 'And'의 경우에도 'And'의 바탕 위에 그럼 어떻게 'Or'를 만들어 낼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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