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결정한다

 

      이 칼럼에서 이미 한 번 얘기한 적도 있지만, 예전에 "사랑방 중계"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서 '세대차이'를 주제로 다룬 적이 있었는데, 어느 중학교인지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대차이를 정의하는 메모를 받아 평가를 했다. 어느 학생의 '세대차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주(主)패널이었던 영화평론가, 검은 뿔테 안경에 '주말의 명화' 예고편에서 해설을 맡아서 낯이 익었던 정영일 선생께서 '오늘의 장원'이라며 박수를 치셔서 더욱 기억에 선명하다.

 

      '세대차이란 내가 계량컵 가지고 쌀과 물 맞추고, 시계 가지고 끓는 시간 맞추어 가며 지은 삼층밥과, 어머니께서 바가지로 푹푹 떠서 지으신 맛있는 밥.' 

 

      비록 실패가 거의 없는 매뉴얼을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삼층밥을 짓기는 했지만, 그 친구의 경우 매뉴얼을 넘어선 효력을 발휘하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며, 오래지 않아 어머니와 같은 경지에 올라 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친구가 계속 계량컵과 시계에만 의존하고 있었어도 아마 어느 정도 수준의 밥은 지었을 것이나, 어머니가 지으신 것과 같은 맛있는 밥은 결코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과 연결된 냉장고 얘기를 많이 했었던 적이 있다. 우유가 떨어지면 냉장고가 알아서 주문을 넣고, 다른 식품들도 마찬가지로 사람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항상 알맞게 차 있는 냉장고에서 꺼내 먹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얘기는 사람들의 아주 기본적인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먹거나 냉장고에 집어 넣을 우유를 직접 고르기를 원하지, 아무리 좋은 우유라도 냉장고가 선택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 기계에 의한, 기계적인 계산에 의한 결정의 산물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는 다른 품목의 경우에도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대형서점들은 정기적이다시피 '저자(著者)와의 만남', '저자 사인회'와 같은 행사를 갖는다. 그런 행사의 목적이나 효과는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더 많은 책들을 파는 이상이다. 제품 자체에 나아가서 매장에, 매장 전체 브랜드에 인간다운 호흡을 불어 넣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개인비서 혹은 집사와 같은 역할로 쇼핑이나 예약과 같은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해주는 'Personal Concierge Service' 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매장으로 끌어 들여서 일종의 VIP 마케팅의 일환으로 카트를 대신 끌기도 하고, 쇼핑 품목 결정에 관한 의견도 제시하는 수행원을 제공하는 유통점들이 있다.

 

      가구나 인테리어 품목과 같은 경우 전문가를 소개, 연결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 소비자가 요청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소비자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 주말 가구점 거리에 갔는데, 유난히도 붐비었던 어느 매장의 경우 구색이나 규모와 같은 요인도 있었겠지만, 다른 매장 대비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코디네이터'라 부르는 방의 크기, 색깔, 분위기와 맞는 가구를 추천하는 전문가들의 존재였다.

 

      인터넷이나 책을 통하여 전문가들이 주는 정보는 더욱 쉽게 습득할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들 특히 현대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들은 그런 인간의 냄새가 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제공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홈쇼핑이나 온라인쇼핑몰이 아무리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오프라인 매장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성격 자체가 명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장 내에서의 진열 기법 역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정교화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다 인간적인 체취를 담아 내게 될 것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니먼(Daniel Kahneman)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소비자들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들이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The central characteristic of consumer is not that they reason poorly but that they often act intuitively)."

 

      결국 유통의 변함 없는 큰 흐름, 트렌드는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인간의 직관이 발휘될 수 있고, 서로 오감을 통하여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간으로서 매장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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