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론자와  보존주의자

 

      작년 이맘때 사랑니를 뽑고-치과에서는 '발치(拔齒)'라는 용어를 고집했다-, 바로 이 지면에 그와 관련된 얘기를 쓴 적이 있다. 사랑니를 뽑은 치과의사는 예전 회사 동료의 남편이었는데, 사랑니가 깊이 누워서 박혀 있어 거의 두 시간에 걸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을 하여, 계속 입을 벌리고 있자니 입도 얼얼하기는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앞섰었다. 그런데 사랑니 뽑은 자리가 제대로 아물지가 않는 것 같아서, 원래 2주 정도 불편할 것이라고 했는데, 예정된 기간을 지나서도 약간씩 아리기도 하고 거북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어 시간을 내서, 총각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지낼 때까지의 미국 생활 내내 나와 우리 가족 전체의 치과주치의 역할을 하였던 고등학교 친구가 하는 치과를 찾아가서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그 친구가 마지막 환자를 보내고, 나를 치료의자에 앉히고는 "자, 네 차트와 엑스레이 찍은 것이 있을텐데, 그거나 한 번 보자"하면서,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비명과 웃음이 조합된 기묘한 소리를 외쳤다. "아니! 오 마이 갓(Oh, my God)! 이 사랑니를 뽑았단 말이야!! 말도 안돼!"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으키더니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누운 것을 어떻게....40이 넘은 애에게 왜 이런 일을...."하며 연신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중얼거렸다. 엑스레이를 뽑아 본 친구가 환성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 야, 정말 유능한 의사다! 아주 깨끗하게 뽑았어! 하하하!" 계속 엑스레이 사진을 뚫어질 듯이 보면서 웃음을 멈추지를 못하더니, 그 친구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는 얘기했다. "야, 유능은 하지만 아주 스튜피드(stupid)한 의사야." 그리고는 360도 엑스레이까지 찍어 보자고 손을 잡아 끌었다. 앞서 했던 대사들을 계속 랜덤으로 중간중간 털털거리는 웃음과 함께 뱉어 내던 친구가, 360도 사진을 뽑아 보면서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그 친구의 말인즉 엑스레이를 보고 자신의 등골이 오싹하고 섬뜩했단다. 신경줄이 그렇게 오가는데 친구 말을 빌리면 거의 천우신조로 피해서 부작용 없이 사랑니를 뽑았다고 한다. 친구가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엑스레이 사진들을 가지고 나갔는데, 술자리에서 만나 다른 뉴저지 일대에서 사랑니 잘 뽑기로 유명한 치과의사 친구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 친구가 보자마자 바로 "(입술 양 옆으로) 침 흘리지 않아요?" 할 정도로 그 사랑니는 뽑기에는 터무니없다시피 한 것이었다.

 

      사실 사랑니를 뽑을 때부터 좀 의아스럽기는 했다. 그 치과에서 봉한 부분이 깨져서 갔었는데, 깨진 부분을 보자마자 사랑니 때문에 밀려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고는 바로 발치를 하자고 했고, 당시에는 별 이의없이 순순히 따랐던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돌아와 깨진 부분을 다시 봉하고, 약간의 책망이 곁들인 주의를 주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그 치과에 갔다. 다른 출장이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다시 들를 시간이 없다고 하니, 임시로 이삼 개월 정도 버틸 수 있게 때워 주겠다며 예나 다름없이 꼼꼼하고 능숙하게 처리를 했다. 약간 어렵게 미국에 가서 치과의사 친구 만난 얘기를 꺼내며, 그 친구들이 아주 놀라더라고 서두를 내밀었다. 평소 무뚝뚝한 그 친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돌더니, "미국 치과 의사들은 그런 사랑니 못 뽑습니다. 대한민국 치과 의사들이 그런 힘든 것은 아주 잘해요"하며 무한정한 자긍심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신경이 무수히 지나고 있었다는데'하면서 방향을 틀려는데, 그 역시 "다 알고 뽑죠. 미국 의사들은 그렇게 못하죠"하면서 역시 자부심만 더 해주는 효과만 내고 말았다. 계속 얘기할수록 역효과만 일으킬 것 같아서, 허탈함을 감추며 함께 웃고는 나왔다.

 

      임시로 봉한 이를 제대로 치료받기 위해서 다시 그 치과를 갈 마음이 동하지도 않고, 거리도 좀 멀고 해서 집 식구들이 치료를 받았던 동네의 치과를 갔다. 봉한 것을 걷어 내고, 크라운을 하든지 할 줄 알았는데, 동네의 치과의원은 엑스레이를 찍고 툭툭 건드려 보더니, 굳이 손 볼 필요가 없이 잘되어 있으니 그냥 가란다. 전의 치과의원이 임시로 해 놓았다면서 꼭 제대로 봉해야 한다고 약간 과장을 섞어 호소를 했지만, 그는 웃는 얼굴로 "아주 튼튼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영구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하며 안심을 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성의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치료 받은 얘기를 하니, 처의 말인즉슨 그 치과의원은 원래 웬만 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참으라고 하거나 손을 대는 것도 최소한으로 한단다.

 

      며칠 전 그 반영구적이라는 평가를 동네의 치과의원이 내렸지만, 역시 임시라는 원 치료자의 의견이 맞는 것인지 그 이의 일부가 깨졌다. 게다가 또 며칠 안으로 출장 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 전에 빨리 치료를 받기 위하여 동네 치과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야 말로 임시로 한 것을 떼어 내고, 금으로 씌우든 큰 공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꽉 차 있는 예약시간을 비집고 들어갔고, 자주 올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여 한 번 치과 나들이를 하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해서 얼마나 오래 그 치과의원이 붙잡고 치료를 해줄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의원은 이를 보자마자 웃으면서 "아주 간단하네요. 몇 분 걸리지도 않습니다"하면서 약을 살짝살짝 뿌리는가 싶더니, 주위를 파내고 할 것도 없이 임시방편으로도 너무 하다 싶게 벽 갈라진데 바르듯이 균열이 생긴 곳을 메우더니 끝났다고 한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전에 했던 것과 같은 얘기를 하면서, 또 굳이 그렇게 크게 공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을 시키려 노력한다. 어쨌든 예상했던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어서, 그리고 그렇게 설렁설렁 한 것 같은데도 아무 이상이 없어서 좋았다.

 

      사랑니를 뺐던 치과의원은 개발론자와 같은 유형이다. 뭔가 공사를 벌이고, 액션이 취해지고, 달라진 모습이 나타나야 안심을 하게 된다. 반면 후자 동네 치과의원은 보존 옹호자와 같다. 될 수 있으면 일을 벌이지 않고, 최소한의 개입만 하려 한다. 전에 양의(洋醫) 한 분께서 양의는 기본적으로 병균을 없애면서 병과 싸워서 이기려 하고, 한의(韓醫)는 병과 함께도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제일 큰 차이가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양의의 경우도 경력이 오래 될수록 약 쓰는 것을 자제한다고 덧붙였다.

 

      광고에서도 유파가 비슷하게 나뉘어진다. 계속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니면 철마다 새로운 광고를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처럼 하는 부류가 있고, 될 수 있는 한 효과가 나올 때까지 아니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진득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갈수록 유감스럽게도 광고주나 광고대행사 내부에서나 전자의 부류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어느 회사 사장이 '몇 년째 똑같은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데 내가 왜 광고대행사에 몇 백만불의 돈을 지불해야 하나?'라고 푸념을 하자, 해당 광고대행사의 대표가 '그렇게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대가로 우리는 돈을 받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얘기가 정말 전설로만 전해지는 실정이다.

 

      특히 소비자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광고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소비자들을 꼭 집어 낼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뭔가 새로운 거리를 가지고 목표 소비자에게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붓는다. 그런데 소비자들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기업을 자신들이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스피드가 기업 활동에서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괜히 소비자를 넘겨 짚어 엉뚱한 방향으로 먼저 가는 것은 올바른 스피드가 아니다. 소비자의 욕구가 분출되는 시점에서 그 욕구의 핵심을 얼마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용인할 수 있고, 알맞다고 생각하는 시간 내에 맞추어 주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런 욕구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가만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광고주에게 광고대행사는 어쩌면 광고주가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덧붙여 기다리는 시간을 함께 해주는 대가로 보수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고하는 사람들이 먼저 인내심과 겸양지덕을 키워야만 할 것 같다.성질 급하다는 것과 자기의 지식의 양을 자랑하는 것이 타고난 광고인의 미덕이라고 치부하는 그런 속성은 이제 떨쳐 버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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