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2위의 뒤집기 전략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거의 모든 선생님이 별명 하나는 가지고 있었고, 학생들은 지네들끼리는 별명으로 선생님들을 호칭했던 것 같다. 별명이 어느 정도로 활발하게 쓰이냐가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의 인기도는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관심도는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주요 지표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별명 중 모두가 공인하는 최고 히트작은 당시 교련 선생님께 부쳐진 '이코노'였다. 중고등학교를 같은 계열로 다녔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교련은 수업 과목도 아니었지만, 한 친구의 귀띔으로 그 선생님의 별명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선생님께 직접 교련수업을 2년이나 받기도 했는데, 죄송스럽게도 지금 성함은 전혀 기억에 없고, '이코노'라는 별명만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 학부모가 조용히 교무실로 찾아와서 심각한 얼굴로 "이코노 선생님 자리가 어디인가요?"하고 어느 선생님께 물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돌아 다니곤 했다.

 

      그 선생님의 별명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코노TV의 초창기 시절 광고에 나온 부엉이와 그 선생님의 용모 특징이 비슷하여 그런 별명이 붙여졌는데, 이코노TV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 선생님의 별명까지도 최고의 히트작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당시에 부엉이를 영어로 '이코노'로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친구들도 꽤 되었다. 어쨌든 '이코노'라는 단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도 상당히 친숙하게 당시의 소비자들의 가슴 속에 각인된 것은 사실이다. 잠깐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 봤더니 30대들은 '이코노'라는 단어를 거의 TV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고, '이코노TV'도 낯설어 했다. 그러니 당연히 이코노와 부엉이를 연계시키지 못했는데, 이는 부엉이 캐릭터를 초창기에만 모델로 썼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어쨌든 삼성은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 이코노TV를 들고 나왔던 1975년에 그 전 해의 9만대 남짓한 매출을 18만대로 배로 만들었고, 3년 후인 1978년에는 1975년의 네 배가 넘는 75만대의 매출로 국내 시장 점유율 41%로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금성사를 누르고 국내 TV시장 1위에 등극하게 된다. 물론 이코노TV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순간예열이란 신기술로 무장하고, 오일쇼크 직후라는 시기적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진,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서 그런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세번째로 순간예열 기술을 장착해 다른 TV에서 20초 이상 걸리는 수상(受像) 시간을 5초 이내로 줄인 획기적인-삼성TV의 신제품'으로 얘기하는 것과 위와 같이 얘기하고 싶은 내용을 '이코노'라는 단어, 바로 새로운 서브브랜드(Sub-brand)에 압축시켜, 기술력을 '미네르바'의, 사실 그보다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TV프로그램인 '부리부리박사'를 연상시키는 부엉이를 내세워 임팩트 있게 보여 준 것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삼성TV의 신제품'이라고만 해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여러 정황을 보건대 나 자신의 추측은 워낙 소비자들에게 TV에서는 금성이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이 되었기에, 그 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삼성보다는 '이코노'와 같은 서브브랜드를 앞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다른 사례들이 많이 있기에, 그럴 듯하게 먹혀 들어가기도 한다.

 

      이제는 살아 있는 신화가 되어 버린 애니콜을 보자. 지금 생각하면 휴대폰의 초창기이기는 하지만, 93~4년까지 모토롤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가 넘었다. 말이 나온 김에 당시의 조사 자료를 보면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휴대폰이 필요할 것이다', '휴대폰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 '휴대폰을 구매하겠다' 등등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휴대폰을 들고 다닐 힘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소유하다시피 하는 현실을 그런 조사 결과를 가지고는 절대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93~4년 이런 조사 결과들이 나올 때 누군가가 휴대폰의 미래에 대해서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에서 3천만 명 이상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가 있을까? 한다고 해서 입증 자료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약간 말이 새지만,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당한다. 의미없는 수요 예측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차치하고, '한국 지형에 잘 통하는 새로 나온 삼성 휴대폰'이라면 어느 정도 당시 막 대중화의 단계로 접어 들었던 시기의 거의 브랜드에 민감한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먹혔을까? 브랜딩이라는 측면에서만 본 결론으로는 당시까지의 휴대폰 브랜드로서 기존의 삼성 브랜드 때문에 그 새로움이 '애니콜'이라는 새로운 서브브랜드를 가지고 나온 것 만큼은 먹히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대형 투 도어(Two door) 냉장고 시장에서 '삼성' 냉장고는 소비자들의 고려 대상에 들어 있지도 않았고, 외재로 차 있는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면 길고 힘든 과정을 겪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펠'이란 브랜드가 그 상당 부분의 노력을 감해 주었다.

 

      위에서 든 것과 같은 예는 무수히 많다. 사실 누군가가 '제 3차 소주전쟁'이라고 일컫는 근래의 '처음처럼'과 '참이슬 프레쉬'의 싸움에서 예전의 사례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처음처럼'의 현재까지의 성공은 '이코노TV'와 '애니콜'과 비슷한 면이 많다. 같은 주류로 치면, 지금부터 잘만 하면 '하이트' 맥주의 신화를 재현할 잠재적 환경까지 조성했다고 본다. '처음처럼'이 잘한 면도 있지만, 그 대응으로서 '참이슬 프레쉬'가 안타까운 면도 있다. 예산과 사내 분위기 등의 문제도 있다고 보지만, 상대가 문자 그대로 처음처럼 완전히 새롭게 치장을 하고 달려 드는데, 기존의 '참이슬'의 그늘로 그런 거센 공격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이트 맥주가 나왔을 때 OB의 방어-자신들은 반격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가 'OB 아이스(Ice)'라는 OB의 우산 아래에서 진행되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 지를 상기하면, 꼭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번 '참이슬 프레쉬'의 미래가 어느 정도 예측되지 않는가?

 

      물론 브랜드 하나 잘 쓴다고 바로 시장의 판세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제품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소비자들의 요구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포함한 사회의 트렌드와 맞물려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80년대 후반 삼성전자에는 4개 부문이 있었는데, 가장 골치가 컴퓨터 부문이었다. 국내시장에서 삼보컴퓨터의 점유율 70%의 아성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삼보의 아성을 깨기 위하여, 선봉장으로 들고 나온 것이 '알라딘' 컴퓨터였다. 당시로는 선도적으로 알라딘을 중심으로 여러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알라딘 자체가 삼보 컴퓨터에 비하여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특성이 없었다. 아마 찾으면 커뮤니케이션 상으로는 찾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이 드나, 모든 얘기가 민담의 주인공 '알라딘'에 있었지, 삼성의 새로운 컴퓨터에 있지 않았다. 삼성 컴퓨터가 삼보를 넘어서는 계기는 결국 '그린 컴퓨터'까지 기다려야 했고, '매직 스테이션'으로 완벽한 결실을 보았다. '그린 컴퓨터'는 작게는 '절전형', 크게는 '환경친화'의 메시지와 함께 당시까지 컴퓨터 업계의 광고에서 볼 수 없었던 톱스타 채시라, 이어 한석규까지 동원한 충격적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 매직스테이션도 멀티미디어로 한 발 앞서 간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서브브랜드-브랜드 관련하여 용어상의 혼란이 많은데, 기업 브랜드와 어느 정도의 연계를 지니면서 새로운 특성 혹은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성격의 브랜드라고, 앞의 예들을 담는 브랜드라고 쉽게 규정하자-는 새로운 제품의 물리적 혹은 감성적 특성을 강하게 인식시킬 때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1위가 매우 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상황의 타개를 위한 충격효과가 필요할 경우에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확고한 커뮤니케이션 포인트와 강력한 신념에 기초한 밀어 붙이기가 뒤를 받쳐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가장 강력하게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인데, 그 강력한 1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혹은 태만한 대응이 있으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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