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상의 세 가지 핵심과 광고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 받다』(휴머니스트, 2001)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서양철학자 김용석 선생과 동양철학자 이승환 선생의 대화록 형식의 책에서, 서양사상의 핵심개념을 세 가지로 정리해 달라는 아주 거친, 도전적인 질문에 김용석 선생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총대를 매겠다'는 표현을 쓰면서 핵심이라기 보다는 서양철학의 특징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애지(愛知)', 제대로 앎과 아는 것 자체에 대한 성찰.

      둘째, 형이상학적 상상력과 과학의 발전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

      셋째, 일반적인 상식에 거역하고,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어 엎는 패러독스(Paradox).

 

      위의 세 가지가 정말 서양사상을 규정 짓는 핵심적인 개념인지, 서양사상만의 고유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로 서양사상에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많은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광고를 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하는 사람은 우선 당연히 자신이 광고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대상 제품을 개발하거나 파는 사람만큼 자세하게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 제품에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어떤 특성이 소비자들에게 가장 잘 작용할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소비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제품과 소비자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연구만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품과 그 제품을 쓸 소비자에 대해서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또 여기에서의 애정은 다른 경쟁사들의 제품을 무조건 배격하는 배타적인 애정이어서는 곤란하다. 경쟁제품들을 포용하고 한층 더 높은 단계로 이끈다는 여유가 뒷받침된 경지여야 한다. 소비자들도 데이터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체화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김용석 선생은 형이상학의 특징으로 전체를 조망하고 그에 따른 '종합지향적인 사고'와 '비가시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두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전체를 지향하지만 실현의 실패가 항상 따라 다닌다는 태생적인 비극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숫자나 그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공식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소비자들의 잠재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인사이트(Insight)를 뽑는 공식이나 제품의 컨셉트로부터 광고의 컨셉트를 결정짓는 모델 등이 나와 있으나 내가 아는 어느 누구도 그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 광고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 없는데, 광고주 측에서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델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묻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따라 컨셉트의 그리고 그 컨셉트에 따른 제작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 또 광고를 했는데, 스포츠 대회를 후원했는데 그 효과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그런 활동이 시작된 이래로부터 앞으로도 영원히 확실한 정답이 없는 숙제로 존속할 것이다. 그런데 설사 정답을 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논리가, 증거가 미약하다고 비난을 받더라도 전체를 보고, 최선의 해답을 지향하는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에 의한 공간이 없다면, 우리의 소위 과학이란 것은 발전할 수 없다.

 

      광고에서 현재라는 틀,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공식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이 없이는 정말 세상을 놀라게 할 광고를 만들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순수자연과학은 차치하더라도 인문학 전공자를 선발하자는 건의를 자주 하곤 했는데, 그렇게 뽑힌 수도 미약할 뿐더러, 유감스럽게도 뽑힌 인원들도 - 사실 근래의 대학에서의 인문학 전공자들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 인문학적인 사고와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배출된 것 같았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 지, 학생들 자신의 문제인지, 교수의 문제인지, 이 사회 전반적인 문제라고 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직관(Intuition) 혹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사이트를 찾는 형이상학적 상상력이 특히나 광고계를 벗어나서도 우리 사회에서 홀대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이란 것은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거나, 상상력이 제시한 것에 대한 타당성을 부분적으로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어떻다는 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통하여 보여 주면,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부문에서의 결과물들이나 사유를 통하여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패러독스는 우리가 광고를 만들고 평가하면서 긍정적인 의미에서 '희뜩하다', '깬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런 정도에 도달하기 위하여서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패러독스적인 생각과 표현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존의 상식을 깨기에 패러독스가 구현된 아이디어들은 팔기 힘든 경우가 많다. 형이상학적인 상상력과 비슷한 경우에 부딪힌다. 팔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패러독스에는 형이상학적인 상상력과 기초가 필수적이다. 형이상학이 뒷받침되지 않은 패러독스란 광고로 치면 그저 말장난이나 유치함을 강변하는 치기(稚氣)에 그칠 뿐이다. 형이상학적 상상력을 통하여 내놓은 것을 다시 한 번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뒤집어 엎어 보는 것이 바로 진정한 패러독스일 것이다.

 

      광고의 과정이란 것도 요약하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알고 있는 사실을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롭게 정의하고 필요에 따라 과학적 검증 과정도 부분적으로 거치면서, 그것을 다시 한 번 뒤집어 엎어서 보는 '정반합(正反合)'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너무나도 1980년대 인문학도다운 생각인가?

 

 

-사족(蛇足)-      

      대담 중에 동양철학을 전공한 이승환 선생도 그런 특성이 서양철학에만 있는 것이냐 오해를 하셨는데, 당연히 서양철학만의 배타적인 특성이 아니고, 동양철학도 비슷한 특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승환 선생도 지적을 했지만, 패러독스의 측면에서는 정말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를 따라 갈 수가 없다. 혹시나 서양철학만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강변하는 것이 아닌가, 오해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우(杞憂)에서 사족(蛇足)으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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