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주인공 팝니다

 

      2005년 8월에 공포소설의 스테판 킹(Stephen King), 변호사 출신의 존 그리샴(John Grisham), 로맨틱 소설의 노라 로버츠(Nora Roberts), 아시아계를 대표하는 에이미 탠(Amy Tan) 등 다양한 소설 장르를 아우르는 미국을 대표하는 16명의 소설가들이 곧 발간될 자신들의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을 경매에 내놓았다. 언론자유를 상징하는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 1조를 수호하고 널리 알리는 프로젝트의 기금 모금 활동의 일환으로 이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경매에 붙이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대표격인 스테판 킹의 올해 발간된 소설, 『Cell: A Novel』에 나오는 '레이 후이젠가(Ray Huizenga)'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무려 2만$ 이상의 돈을 내고 자신의 이름을 소설 속에 심었다고 한다.

 

      스테판 킹의 경우 워낙 작가로서의 스타일이 확실하여 경매 참가자들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의 분위기와 성격을 대충 미리 짐작을 할 만도 한데, 친절한(?) 작가 자신이 대략 언질을 주었다. "(이 소설은)폭력성이 두드러지고, 핸드폰 시그널 때문에 망가지는 사람들을 그릴 예정이다. 싸구려 위스키처럼 맛이나 뒤끝은 고약해도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와 함께 공포 소설의 대부답게 '소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역할을 원한다면, 여성 이름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로 번역된 『Lemony Snicket's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시리즈에서 작가는 세 명의 불쌍한 고아의 막내인 '말 잘하는(an utterance)' 애기의 이름을 구한다 했고, 존 그리샴은 자신의 다음 소설에서 '선한 역할(in a good light)'을 맡을 것이라고 간단하게나마 언급을 했으나, 에이미 탠이나 노라 로버츠는 인물이나 소설의 성격에 관해서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경매품으로 내놓았다. 그런데도 에이미 탠이나 노라 로버츠의 소설에 자기의 이름을 쓸 수 있는 권리도 모두 2천$ 이상에 팔렸다고 한다.

 

      브랜드 이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꽤 진행을 했고 지금도 몇몇 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이 개인적으로 이런 프로젝트는 피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 우선 제품이나 서비스에 담고자 하는 뜻이 명확하지도 않은데, 이름부터 내놓으라, 또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아서 피하고 싶다. 제대로 된 작명가(作名家)라면 아이의 이름을 질 때 사주팔자(四柱八字), 돌림자, 부모의 바램 등을 고려하여, 적합한 조합의 이름을 내놓는다. 그런데 제품의 특성, 목표 시장, 향후의 계획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이름부터 만들어 내놓으라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만든다. 물론 이런 기업들을 노리고, 좌판 벌이듯이 자신들이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이름들을 나열해 놓고 골라 가십시오 하는 브랜드 이름 짓는 회사들도 꽤 있기는 하다.

 

      한편으로는 이름을 결정할 시점에서 보통 2~3개의 최종 후보를 내놓게 되는데, 그 이름들을 추천하게 된 배경은 보지 않고, 이름자만을 놓고 왈가왈부하게 되는 경우를 무척 자주 겪게 된다. 브랜드 이름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선 제품에서 이름을 통하여 내세우고자 하는 방향을 잡는다. 예전의 아이 이름을 짓는 방식에서 보면, 아기가 나중에 장군이, 학자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을 담는 것과 비슷하다. 그 방향을 합의하고, 실제 이름이 가지게 될 분위기를 결정한다. 가볍게, 활기 차게, 침착하게, 감성적으로 등등이 되겠다. 역시 이에 대한 합의를 거쳐서 두 세 가지를 최종적으로 내놓게 되는데, 실제 이름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때 앞에서 한 합의는 까맣게 잊거나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이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두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것들로 가지고 오라 우기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그리고 제품 판매 등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맘대로 둘러대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이름만큼 핑계대기 좋은 것도 없다.

 

      이번 소설 속의 이름 경매는 이름만을 작가들에게 주고, 처할 상황과 인물의 성격은 작가들에게 전적으로 맡긴 셈이다. 작가들에게 얼마나 그 이름을 어느 정도의 빈도와 비중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구속력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이름들을 해석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낼 만한 여지는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정래 선생이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 이름을 작명하며 겪었던 고민에는 한참 모자란 상태에서 타협이 이루어져서, 인물에게 이름이 붙여질 것 같다. 많은 명작 소설들에서 특정 이름을 가진 인물을 위하여 소설이 쓰여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고심하여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무론 워낙 유명하여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그 소설 속의 이름들에 익숙해진 후천적인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고민의 바탕이 없이는 그런 후천적인 결과도 따라올 수 없다. 지난 주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영화를 잠깐 옛 기억을 되살리며 보았는데, 거기서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는 그 누구도 아닌 스칼렛 오하라이어야 하고, '렛 버틀러(Rhett Butler)'도 그 어떤 다른 이름이 대신 할 수 없다. 그 누가 수백만$을 낸다고 해서 다른 이름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 속 이름에 대한 권리를 팔기 전에, 영화나 드라마에 자신의 제품을 노출시키는 소위 PPL(Product Placement) 기법을 소설에까지 적용시키는 것이 2~3년전부터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 소수의 소위 명품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유명 작가에게 미리 돈을 내고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그들의 작품 중에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화되다 보니 제목에 브랜드 이름이 들어 가면 얼마, 주인공의 입에서 브랜드를 호명하면 얼마하는 식으로 가격이 매겨지게 되었단다. 그러니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경매에 붙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문학의 세계를 떠나서도 사실 예전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것들이 경매에 부쳐져 팔리고 있다. 2005년 미국 남부의 애틀란타 동물원은 갓 태어난 고릴라의 이름을 메이시(Macy) 백화점에 팔았다. 그 고릴라의 이름이 고릴라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메이시 베이비(Macy Baby)'가 된 연유이다. 역시 미국 남부의 텍사스(Texas)에 있는 인구 125명의 작은 마을인 '클락(Clark)'은 위성접시(Satellite Dish)로 방영되는 TV를 10년 동안 무료로 보는 대가로 마을 이름을 'DISH'로 고쳤단다.

 

      "우리 문화에서는 이미 상업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은 빈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미국 문화의 몰락(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의 저자인 모리스 버만(Morris Berman)의 경고성 문구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사족(蛇足)>

      우리 나라 TV프로그램에서 옷이나 가구 등에 붙은 브랜드 딱지를 모자이크 처리하여 가리는 것을 보면, 작품성 따위는 희생되어도 좋다는 '원천봉쇄' 식의 발상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오로지 한 길로, 표피적으로 치닫는다는 데서 위에서 본 지나친 상업화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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