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上海)에서의 삶과 죽음

 

      해외 여행을 가며 짐을 꾸릴 때, 항상 마지막으로 챙기는 것이 책이다. 일을 할 때는 준비성이 철저하지 못하여 항상 뭔가를 빼먹고, 너무 여유를 부려 주위 사람들의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은데, 공항에는 상당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가는 편이어서, 공항에서의 긴 대기 시간과, 극히 제한적인 행동 밖에 할 수 없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것으로 짐 쌓는 것을 마친다. 가지고 갈 책을 선택하는 데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가 비행시간이다.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의 경우 한 권만을 붙잡고 있기가 힘들어 최소 서로 다른 성격의 책 세 권 정도를 기내용으로 가지고 비행기에 오른다. 약간 무겁거나 일과 관련이 있는 책 한 권에, 평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가벼운 역사 관련 서적을 두 권 정도 보태 한 시간 정도 마다 책을 교체하며 시간을 때운다. 장거리 비행일 경우 원래 집에 있던 책 가지고 가는 것에 보태서, 거의 매번 귀국편까지 감안하여 공항서점에 들러서 기내용 책들을 몇 권 산다. 둘째로는 목적지를 고려하여 책을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 2003년말 러시아 시장전략을 위한 출장길에 가지고 간, 당시 근 10년째 읽지도 않고 서가에 꽂아만 두었던 70년대말 미국 타임(Time) 잡지의 모스크바 특파원이 쓴 그 시절의 회고록을 비행기 안에서 읽다가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내처 호텔방에서 다 읽었는데,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개방이 되었어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러시아인들의 습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었다. 두번째 이유와 비슷하게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책이나 서류들을 가지고 비행기에서 읽기도 하는데, 보통 이런 경우는 초치기 식이다. 미리 준비를 해 두었어야 하는데, 미루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의 자료나 발표자료 준비를 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7순을 맞이하여 효도관광차 간 중국 상해, 소주(蘇州), 항주(杭州) 여행에는 두번째 기준에 충실하게 책을 집어 들고 갔다. 년전에 읽었던 중국계의 유명한 작가인 진순신(陳舜臣)이 쓴 『시와 사진이 있는 중국기행』과 90년대 초에 샀다가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첫 부분 좀 보다가, 책장에 꽂아만 두었던 니엔 쳉(Nien Cheng)의 『Life and Death in Shanghai』를 가방에 넣었다. 진순신의 책은 일찌감치 아버지께 드리고, 뒤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두 시간에 채 미치지 못하는 비행기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마 책의 현장으로 향한다는 분위기와 조금 더 배경에 대해 알게 되고, 저자의 나이에 더 근접하게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학부시절부터 막연히 60, 70년대 중국을 광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던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막연한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 관심이 학부 졸업 후에 소위 '상흔(傷痕)'문학이라고 불리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핍박받은 지식인들의 회고를 보는 것으로 옮아 갔는데, 그 첫번째 책으로 산 것이 바로 이 책이었던 것 같다. 저자인 니엔 쳉(鄭念)은 남편과 함께 영국 유학을 마친 자본가 계급 출신의 지식인으로, 중국혁명 후에 석유회사 쉘(Shell)의 중국 지사장을 맡은 남편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쉘의 자문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공산화된 중국 사회에서 어떻게 그런 생활이 가능했는지 몰라도, 그녀는 요리사, 하녀, 집사, 정원사를 두고 현재의 생활 기준으로 보아도 호사스럽기까지 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 생활 수준에 외국계 회사에 오래 근무를 한 자본가 계급 출신으로 당연히 홍위병(紅衛兵)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제국주의자의 간첩 노릇을 했음을 자백하라며 고문과 협박으로 점철되는 인간 이하의 수감 생활 동안 그녀는 강철같은 의지로 허위자백을 하지 않고 버티어 낸다.

 

      문화대혁명이라는 혼란기이기는 하지만, 상해 이 곳 저 곳의 풍경이 담겨져 있으리라, 그리고 그 곳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사실 이 책을 집어 들고 여행에 나섰으나, 상해 시가지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었다. 이전 1997년에 상해에 처음 왔을 때,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예전 조계(租界)지로서 유럽풍 건물들이 즐비한 외탄(外灘)으로 나가서 유유히 거닐다가, 어느 건물 앞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멈춰 서서 그 건물의 명패를 보니 '화평반점(和平飯店)', 영어로 'Peace Hotel'이었다. 그 때의 상해 방문 직전에, 니엔 쳉처럼 문혁 기간에 중국에서 외국인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흔치 않은 경험을 했던 앤소니 그레이(Anthony Grey)의 소설 『Peking』을 읽었는데, 그 첫 장면이 바로 주인공인 미국 전도사가 깡마른 중국 인력거꾼의 인력거를 대신 끌어 주다가 제대로 멈추지 못해 낭패를 당하게 되는데, 바로 인력거가 고꾸라진 곳이 바로 화평호텔 앞이었다. 주인공이 미끌어져 내려 왔을 비탈진 도로를 보면서 한참을 화평호텔 앞에 서 있었다.

 

      마침 그 다음 날 저녁 약속 장소가 화평호텔이었다. 근사한 저녁을 먹은 후 호텔 안의 재즈바에 들렀더니, 할아버지 5인조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재즈바 지배인의 얘기인즉슨 그 할아버지들은 해방 이전부터 화평호텔에서 연주를 했는데, 공산화 된 이후 흩어졌다가 근래에 다시 만나서 연주를 한단다. 할아버지들 연세를 생각하면 과장된 듯하나,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아 감탄을 하며 서툰 영어를 들어 주며, 대만 작가인 바이시엔융(白先勇)의 단편소설 '김(金)마담의 마지막 밤'에서 대북(臺北)의 카바레 야파려(夜巴黎)의 김마담이 혼자서 지배인인 동득회(童得懷)를 욕하면서 하던 말을 되씹고 있었다. 왕년 상해의 날리는 카바레 백악문(百樂門)을 주름 잡던 김마담이 백악문과 야파려를 비교하며 지배인 욕을 한다. "병신같은 새끼 세상이나 아나? 좀 창피한 말이지만 백악문의 변소만 해도 야파려의 홀보다 넓을 걸? 동득회 그 따위 쌍통으론 백악문의 똥치기마저 제대로 못 할 녀석이." 대북의 날리는 카바레보다 넓은 변소를 가졌다는 그런 카바레가 있었던 상해의 예전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본 느낌이었다..

 

      니엔 쳉의 책은 그런 예전 상해의 거리 모습이나 생활상보다는 문혁 시기 상해의 그 광기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시정부와 공산당까지 구세력으로 몰아 붙이며 기존 질서를 뒤엎으며, 문혁 2기의 열기를 극단적으로 고조시킨 출발점이 바로 상해였다. 니엔 쳉을 심문하던 시당(市黨)의 고위간부가 하루 밤새에 수감자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간수로 급전직하하는 장면까지 200 페이지 정도를 여행을 다니며 짬짬이 보았는데, 마지막 날 아침에 보니 감쪽같이 책이 없어졌다. 버스 안에도, 호텔의 다른 방에도 책은 없었다. 한창 재미있는 장면으로 치닫는 영화를 보다가 극장에서 쫓겨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 일정을 바꾸어 한국의 관광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상해박물관에 갔다. 중국 전도의 신념으로 똘똘 뭉친 미국 전도사들이 배에서 내리고, 여급들 수천명이 있었다는 카바레가 줄지어 있고, 니엔 쳉을 밤새 뜬 눈으로 지새게 한 홍위병들의 구호가 난무하는 행진이 펼쳐진 상해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청대(淸代)까지의 유물들만 얌전히 진열되어 있었다. 한 쪽에서는 생뚱맞게도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의 특별순회전으로 후기 인상파와 큐비즘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해에는 어느 정도 어울리는 풍경이다. 상해는 중국에서 나쁜 면이나 좋은 면이나 모두 가장 서구화된 도시, 극과 극이 한 공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도시이다. 두 차례의 방문을 통하여 공산화 이전까지는, 그리고 니엔 쳉의 책을 통하여 문화대혁명 1기까지는 대충 딴에 훑어 본 것으로 삼았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방문을 하게 된다면 그 때의 주제는 아마 니엔 쳉 책의 미처 읽지 못하고 상해에 두고 온 문화대혁명 2기부터 현재 포동(浦東)의 즐비한 최첨단 고층건물이 서기까지 상해가 겪은 엄청난 변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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