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狂氣)와 아우성

 

      지난 2월 중순 아주 가까운 친구 하나가 5개월 여에 걸친 병마와의 싸움 끝에 눈을 감았다. 화장장(火葬場)으로 가기 전에 그의 가족들이 다니는 성당에서 영결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꼭 들어 올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함께 간 친구들은 그 시간을 이용하여 요기를 하러 가고 혼자 성당 휴게실에서 폐쇄회로 TV를 통하여 중계되는 미사를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재미로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시피 한 화면을 보는 것도 심심해져서 은행 대기석에나 어울릴 잡지꽂이에 있는 천주교 관련 책들 표지를 보다가, 종교적 성향이 덜 해 보이는 소책자 한 권을 꺼내 들고 자리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어느 신부님의 6·25 체험기를 담은, 필사본을 그대로 떠다가 제본만 한 것 같은, 예전 80년대 지하 운동권 서적과 같은 형태의 책이었다. 성당 한 쪽의 공사 때문에 문을 열어 놓아 찬바람이 쌩쌩 불어 닥치는 성당 휴게실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책을 읽는데, 어느 새 추위도 잊고 내용에 빠져 들었다. 별다른 과장이나 자화자찬 없이 진솔하게 평소 쓰는 어투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것이, 마치 바로 옆에서 신부님께서 얘기를 해 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뜸뜸이 내 상식을 넘어서는 기술들이 있어서, 등줄기에 전율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독서에 빠져 약 1/3 정도를 읽었는데, 식사를 하러 갔던 친구들이 돌아오고, 또 바로 미사가 끝났다. 화장장으로 떠나야 하는데, 책을 어떻게 할까 잠깐 궁리를 했다. 그냥 가지고 갈까 하니 바로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친 '장 발장'이 생각났다. 잡지꽂이 뒤의 매점에서 근무하시는 분께 책을 빌려 달라고 사정을 할까 했는데, 유족들 앞에서 할 짓이 아니었다. 그냥 화장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고, 한 줌 재로 친구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그 책을 찾기 시작했는데, 내용에 워낙 빠져 들어서인지, 책 제목이 가물가물했다. 신부님 성(姓)이 임(林)씨이고, 세례명이 '파티마' 비슷했고, 제목에 '6·25'가 들어갔다는 것 이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럭저럭 조합을 맞추어 검색조건을 걸다가 실패를 하고, 역대 천주교 신부 명단까지 훑었지만, 그 책을 쓴 신부님을 딱 집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성당에 다니는 친구에게 그 책 얘기를 해주며, 그 친구가 다니는 성당의 도서실을 찾아 보라고 부탁까지 했으나, 그 친구도 찾는데 실패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 영결미사가 열렸던 성당에 직접 찾아 가야 하나 생각을 하는데, 가 버린 친구의 부인에게 의논할 일이 있어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친구의 집 바로 앞에 있는 성당인지라 염치불구하고, 여차저차한 설명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올 때 성당에 들러 그 책을 빌려 오십사 부탁을 했다. 친구의 와병 이후 처음 그 부인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책을 건네 받으며, 그저 숙연해지기만 했을지도 모를 자리가 덕분에 여유가 있어졌다.

 

      문제의 책 제목은『-林忠信 마티아 신부가 겪은 - 六·二五 동란 피난기』였다. 위에서 쓴 대로 신부님의 담담한 기술도 여느 자서전보다 내용이 착착 감겨 왔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지만, 우리의 부모들이 살았던 그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내세운 전쟁이라는 '광기(狂氣)의 시대'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종교인이나 민간인의 육성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 부분들이 충격적이었다.

 

      어느 촌 동네 앞을 지나는데 동네 사람 5·6명이 나와 손을 들어 우리 차를 세우더니-

「어제 밤에 우리 동네 잠복한 인민군 다섯명을 잡아 광속에 가두었으니 차에 싣고 가시오.」

「이 차는 보급차로 서울로 가는 길인데 그놈들을 태울 자리가 없으니 당신들이 그놈들의 총을 빼앗아 총살하시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요?」

「못죽이겠으면 다음 오는 군대 차에 부탁하시오.」하고 운전수는 차를 몰고 달아났다.(P4)

 

      머리에 매맞은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으나 이제는 거의 다 났다고 한다. 그 당시 광경을 회상하면서 말하기를 「그때 우리 수녀들에게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조금도 무서운 생각이 없었고 몽둥이를 가지고 우리 수녀들도 빨갱이들을 막 때려 죽였어요」한다. (P22)

 

      '빨갱이'이기 때문에 귀찮으면 죽여 버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수녀들이 몽둥이를 가지고 때려 죽이기도 했던 그런 시대였다. 한국전에 미군 해병대 신임장교로 참전했던 어느 미국의 작가가 쓴 한국전 회고록 -나는 이런 식의 평범한 미국인들의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문가들의 그럴싸한 얘기보다 훨씬 재미가 있어 기회 닿는 한 그런 책들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그런 책들이 꽤 눈에 띈다. 그 책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그들이 '한국 이야기'라고 쓰는데 '한국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지리적인 한국은 있어도 인간으로서의 한국인은 없다. -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고지전이 한창일 때, 미군과 한국군 해병대가 함께 어느 고지를 점령했는데, 한국 해병 한 명을 여러 사람들이 에워싸고 뭐라 얘기를 한참 하더니 무릎을 꿇게 하고는 총으로 쏘아 죽이더란다. 통역을 통해 알아보니 총살당한 사람이 고지를 향하여 돌격할 때 뒤쳐진 것이 이유란다.

 

      이런 식의 책에서 보거나 어른들에게 들은 '사람이 사람답지 않게', '죽음이 한 없이 가볍고 흔했던 광기(狂氣)의 시대' 얘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농담을 넘어서 '한국 사람들 대단했다니까'하면서 자긍심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를 있게 한, 보다 나은 현재를 만들 수 있었던 수많은 경로가 있는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되었다'고 강변하는데, 그 바탕은 본인들은 부정하지만, 현재의 자신에 대한 지극한 만족과 자부심이다. 그것을 제대로 알아서 모셔 주지 않으니,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현재에 대한 불평이 나오고,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지난 시대를 치열하게 살지 못한 데 대한 자괴심이 그런 식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반전(反戰) 활동가의 효시라고 할, 그러면서도 1차대전이 나자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참전하려 애를 썼던 영국의 언론인 몬태규(Charles Edward Montague)의 '전쟁은 비전투원들에게서 가장 강렬한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는 말처럼.

 

      크리에이터로 유명한 어느 여자 선배가 '제작물 리뷰'라는 명목으로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상사들에게 해당 제품을 가지고 밤새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당차게 엄포를 놓았던 모습을 기억한다. 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순순히 따라 주던 상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거기서 상사들이 계급의 권위를 내세우면 바로 '광기'가 발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많이 알고 생각하고 고민을 많이 할수록 말은 적어진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편지가 길어졌습니다'라는 어느 여인이 멀리 떨어진 부군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처럼, 정리를 못하면 말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브랜드의 성격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한 제품일수록 광고 카피가 길어지고, 괜시리 화면이 화려해지고, 특수효과가 난무한다. 그러면서 광고는 어느새 '설득의 예술'에서 '상업적 소음'으로 넘어 간다.

 

      가끔 분당에 들러 '대한민국은 간판공화국'이라는 말을 증명하듯이, 간판들이 경쟁적으로 빼곡하게 빌딩을 덮어 씌운 광경을 보면, 나는 뭉크(Edvard Munch)의 그림, '절규(Scream)'의 주인공처럼 귀를 막고 비명을 질러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든다. 그런데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 비명을 질러도 가위 눌린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이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이라도 빽빽하게 공중에 달려 있으면 아우성을 치는 것 같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도 계속 질러 대면 시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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