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광고대행사

 

      3월 20일부터 4일간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 40차 세계광고대회의 주제는 '변화에의 도전(Challenge of Change)'이었다. 회사나 행사의 구호나 모토로 남용되다시피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기는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그 의미가 행사 참가자들에게 남달랐다. 광고대행사에서 나온 연사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광고대행사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강조하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위기의식은 세션이 거듭될수록 고조되었다.

 

      우리 나라의 광고비야 2000년 이후 몇 년째 7조라는 마지노선을 넘지 못하고 그 언저리에서 정체 상태를 유지하다가 작년에야 겨우 턱걸이로 7조를 넘겼으니, 아홉수에 걸린 것과 같은 초조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었으나, 외국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인터넷을 비롯한 신규 매체들의 영역이 증가하면서 전체 광고산업의 규모도 크게 늘어나고 있고, 글로벌화와 함께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들이 역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나타나는데, 이들 역시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광고대행사가 처한 이 초유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거의 모든 세션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광고대행사 출신의 연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는 새로이 광고대행사에 들어오는 인력들의 수준이 예전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광고대행사에 올만한 인력들이 광고주 쪽으로 가게 되고, 그 결과로 광고주의 마케팅 수행능력이 개선되면서 광고대행사에 대한 의존도가 예전에 비하여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 외곽의 에반스턴(Evanston)에 자리한 노스웨스턴 대학(Northwestern University) 경영대학원인 켈로그 스쿨(Kellogg School of Business)의 리사 포티니 캠블(Lisa Fortini Campbell) 교수는 80년대초에 직장 생활을 광고대행사에서 시작을 했는데, 자신이 광고대행사를 다녔던 1980년대와 90년대 이후의 차이를 이렇게 얘기하곤 했었다. "1980년대에 나는 연차가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광고주에게 가면 주로 사장이나 마케팅 담당 임원을 만나서 얘기를 하고 바로 결정을 내리고 했는데, 90년대 이후에 얘기를 들어 보니까 광고대행사 사람들이 가면 마케팅 담당 임원은 고사하고, 결정을 내릴 만한 사람을 전혀 만나지를 못하더라. 단순히 아이디어를 전달해 주고, 나중에 어떤 연락이 오는지 기다리기만 하더라."

 

      광고대행사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소비자 인사이트(Consumer insight)로 유명한 캠블 교수가 직선적으로 지적을 했다. 그녀의 말인즉슨 광고대행사는 자신이 주창하기도 했지만, '소비자'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서, 소비자에 대한 철저하고 색다른 관찰과 조사를 통하여 얻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생존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녀가 얘기하는 인사이트라는 것은 바로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것을 유심하게 보는 것으로부터, 혹은 기존의 것을 뒤집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광고주의 고위 인사들과 바로 얘기할 수 있는 꺼리가 되기에는 거리가 있다. 최후의 보루로서 소비자, 그리고 그 보루를 지키는 첨병으로서 소비자 인사이트라는 데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그것이 밀리는 전세를 역전시킬 카드가 아니라 게릴라 거점이나 해방구로서의 의미 밖에 가지지 못할 것 같다는 데 고민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브랜드전략에 본격적으로 몰두하면서, 미국의 광고대행사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광고대행사는, 특히 광고대행사에서 전략 부분을 맡고 있는 우리는 맥켄지(McKinsey)나 보스톤컨설팅(Boston Consulting Group)과 같은 비지니스 컨설팅 회사와 경쟁을 해야 돼". 브랜드전략을 하다보면 내부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직 전체에 브랜드를 반영시키는 것이 중요한 데 그를 위해서는 이전에 광고대행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인사, 관리의 영역까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비지니스 컨설팅사 쪽에서는 인사나 관리 부문에서의 변화도 결국은 마케팅과 영업을 통하여 실적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거기까지 일관되게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업무 영역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비장하기까지 한 자세로 그들 비지니스 컨설팅 회사와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제대로 된 전투조차 없이 광고대행사는 일방적으로 오그라지고 말았다.

 

      한국에서의 경우 변명을 하자면, IMF 위기를 맞이하여, 인사와 관리 등에 있어서 '구조조정'과 '글로벌 스탠다드'가 절대절명의 화두로 등장을 하면서, 이를 주특기로 한다는 비지니스 컨설팅사들이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거의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신들이 하는 일의 실행 가닥의 하나로 브랜드 부문까지 자연스럽게 영역을 넓혔다. 반면 기업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위기의식만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졌던 그 시기에 광고대행사에서 얘기하는 브랜드는 너무나도 한가한 소리로만 들리며, 광고대행사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자신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버리는 잘못을 범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표현물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광고에서 나아가, 기업 경영 본연과 연계를 가지고 어떤 경우 그를 포함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세계를 광고대행사들이 만들어 내어, 저작권자로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 이 때가 대략적으로 본다면 90년대 초중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지니스 컨설팅 사들은 전혀 커뮤니케이션의 세계에 관심이 없이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의 광고대행사들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동들을 잇따라 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하였다. 첫째로 브랜드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브랜드 관리에 관한 모든 과정을, '과학(科學)'을 표방한 수치화(數値化)할 수 있는 모델로 치장하는데 경쟁적으로 열을 올렸다. 물론 그런 과정을 모델로 정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主)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광고대행사의 강점인 '유연하고 창의적인 생각'이란 수치화시키기 어려운 부분을 스스로 먼저 비하시켜 버리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축소시켰고, 비지니스 컨설팅 사들이 절대적인 강점을 지닌 곳에서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90년대말부터의 닷컴 붐의 조장자이자 편승자로서의 악명을 덮어 쓰면서, 전체 광고대행산업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을 꿈꾸는 닷컴기업들의 이미지를 심어 준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광고였던 것이다. 나는 위의 두 가지가 모두 광고대행사가 자신들의 근본적인 가치를 망각하면서 초래되었다고 생각한다. 곧 광고대행사의 브랜드가 어느 과정에서 모호해 진 것이다.

 

      며칠 전 한국의 다른 광고대행사에서 나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선배 분과 식사를 하는데, 내가 세계광고대회 갔다 온 말씀을 드리면서, 자연히 '광고대행사의 위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 분 말씀이 우리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특히 전략적인 부문 종사자들이 다른 산업과 브랜드에 대해서는 그렇게 열심히 분석하고 미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면서, 정작 우리 자신들과 우리가 속한 산업군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심하여서 위기를 자초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씀에 100%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를 떠나서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잡아 주거나, 참견을 하느라 정작 우리의 잘못은, 미래는 그대로 방치해 두며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세계의 광고인들에게 우리의 브랜드부터 함께 세워 보자고 격문이라도 날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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