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도의 자부

 

      얼마 전 동양사학과 조교라면서 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우리 주례를 서주시기도 했던 이성규 선생님께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35년사(1969-2004)]라는 책을 발간하셔서, 졸업생들에게 보내 드리라 해서 주소를 확인하고 있단다. 우리 나라 대학 조교들의 노고야 예전에 눈으로도 직접 확인했고, 애들 엄마를 통해서 얘기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역시 조교는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동양사학과의 학생 수가 적다고 해도 그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다 전화해서 확인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130 페이지 남짓한 흡사 예전 운동권에서 조악하게 만든 것과 같은 소책자가 배달이 되었다. 아주 두꺼운 '삼성그룹 60년사' 따위의 사사(社史)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고급 양장본의 두터운 사사와 비교할 수 없는 선생님의 학과와 제자들에 대한 사랑에서 우려 나온 노고가 담겨 있었다. 교수님들, 석박사 과정을 거쳐 간 분들의 논문 경향의 변화를 분석하고, 과의 공식적인 행정 체계의 변화 등 공적인 부분이야 기록들이 충실하게 남아 있고 당연히 정리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의 이야기까지 증언을 채집하시고, 과 사무실 구석에 놓여져 있곤 하던 학생들의 공통 메모장 등을 뒤져서, 학생들의 교실 밖에서의, 특히 80년대 학생들의 고뇌까지 되살리려 노력하신 데 가슴이 뭉클했다. 아는 사람 얘기도 많이 나오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술술 읽어 대는데, 마지막 장의 각계로 진출한 동문들 얘기 중에서도 끝 부분에 내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우리 동기 놈들 얘기는 별로 안 나오네'하면서 마지막 두 페이지 남겼던 차였다. 학계, 언론계, 관계에 이어 <금융, 기업계, 기타>에 다음과 같이 나왔다.(밑줄 친 부분)

 

(前略)왕년의 '투사'가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예도, 미국에서 MBA 과정을 마친 졸업생도 적지 않다. 졸업 후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광고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박재항(82)은 2번째의 광고학 저술을 내면서 자신의 전문 직업과 학부 시절의 전공을 모두 다음과 같이 자부하였다. 그 역시 '운동'과 취직의 기로에서 '고민'한 시절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더 이상 그 상흔은 찾아볼 수 없는 건강한 모습이다.

 

'인간 세상의 근본 원리 및 진리의 발견과 깨달음이라는 인문학의 본연의 목적을 광고쟁이로 있으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그 밑바탕을 만들어준 동양사학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생애의 가장 잘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브랜드 마인드", 2004, 저자 소개)

 

삼성 이병철 회장이 손자 이재용(87)에게 경영자 수업의 한 과정으로 본과 입학을 강력히 권하였을 때 염두에 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앞에서 소개한 김용석 경향신문 기자가 후배에 당부한 다음과 같은 말도 박재항의 '깨달음'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전공 공부에 소홀히 했던 것이 큰 후회로 남는다. '동양사학과'라는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다. ...기회 있을 때 공부 열심히 하기를. 삶에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용화신문" 18호)

 

그러나 '공적 교육 밖의 학습'에 너무 편중되었던 학생 생활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거친 것이 아니었다면, 김 기자의 후회와 당부는 초등학교 교사의 상투적인 훈화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 "용화신문"은 동양사학과 학생들이 과 내에서 발행하던 비공식적 신문

 

 

      과분한 말씀에 얼굴이 후끈거리며, 선생님께 부끄럽고 고맙고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근래 부서를 바꾸며 정말 유래 없이 혼자서 끙끙대며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허덕대는데,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마음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역시 동양사학을 전공으로 잘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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