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가 놀아라

 

      내가 사는 아파트 뒤쪽으로는 옆 건물과 담으로 둘러싸인 잔디밭이 제법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담 있는 곳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아파트 두 채가 막고 있어서 주차장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해서, 동네 사람들의 정원 역할을 했다. 애들과 함께 나와서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애들의 극성이었는지 여름에는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바베큐를 즐기는 사람도 꽤 있었다. 주재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굳이 야외 바베큐 그릴을 가지고 온 것도 날씨 좋은 날이면 틈틈이 그 잔디밭에서 즐기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풀밭은 그 자리에 변치 않고 있었지만, 취사행위가 철저히 금지되었다는 경비 아저씨의 말씀에 바베큐 그릴은 애꿎게 베란다 한 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배드민턴도 치고, 야구 놀이도 하는 장소로 그 잔디밭은 손색이 없었다.

 

      요 며칠 봄 기운이 완연하며, 우리 집 아이들은 두터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둘이 어울려 축구를 한다. 그런데 겨우내 움츠려 들었을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우리 애들만 이렇게 나와 논다. 연초 간만에 소담스럽게 눈이 내렸던 날, 한국은 다 좋은데 눈이 오지 않아서 싫다는 불평을 겨울만 되면 늘어놓던 우리 아이들은 몇 시간을 밖에 나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놀았다는데, 그 때도 다른 아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 말대로 학원에 가야만 애들을 볼 수 있는 것인지?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서 길을 나서면, 바쁘게 등교하거나 등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는데, 주말의 놀이터도 항상 한산하기만 하다.

      학원도 학원이지만,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고 붙어 지내는 친구는 컴퓨터나 게임기라고 한다. 이는 컴퓨터와 게임기가 어느 정도 이상 보급된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2월 중순 '사찌 앤드 사찌(Saatchi & Saatchi)'라는 광고회사에서 어린이들에게 야외로 나가서 놀라는 광고를 내놓았다. '질병치료/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라는 기관을 위해 만든 광고인데, 캠페인명이 재미있다. "Verb. It's what you do." 재미없게 직역을 하면, '동사(動詞). 이

게 바로 너희들이 해야 할 거야'로 되겠는데, 한 마디로 뛰어 놀라는 얘기이다. 'Verb(동사)'라는 단어를 가지고 살짝 그럴듯한 장난을 쳐서 카피의 맛을 살렸다. TV광고는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아이들이 캠프장 같은 곳에서 야광공 같은 것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노는 모습을 그렸고, 인쇄광고에서는 직접적으로 비디오 게임을 겨냥한 카피를 썼다. "Give your thumbs a rest." '(따다다닥 쉴 새 없이 버튼을 눌러 대느라 피곤한)엄지 손가락을 좀 쉬게 하라.' 사실 엄지 손가락 뿐만 아니라, 키보드 두드리느라 바쁜 다른 손가락들도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애들이 밖에 나가서 뛰어 놀지 않는 것이 꼭 컴퓨터나 게임기 때문일까? '요즘 애들'이란 말로, 약간 다르게 '디지털 시대의 애들(Digital Kid)'란 용어를 쓰며 빠르게 애들을 유혹하는 새로운 성능을 갖추고 나오는 기기(機器)들과 소프트웨어에, 약간 더 거시적으로는 디지털 기술이란 시대 환경에,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직접적으로 질병을 거론하지 않고 에둘러 아이들로 하여금 밖에 나가서 뛰어 노는 것이 건강하고 씩씩해 지는 길이란 이야기를 한 것은 좋았지만, 과연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 중간의 장애물은 모른 척 비켜 지나간 것만 같은 느낌이라, '와'하고 반갑게 본 광고의 끝맛은 약간 씁쓰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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